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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 이야기 59-K, G, W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by 안나

<H마트에서 울다>라는 낯선 제목의 책은 우연히 제게로 왔어요.

H마트는 `한아름마트`라는 상호네요. 특정 상표이기보다는 한인 슈퍼 전체를 상징한다고 느껴져요.

저는 `한아름마트`라는 단어를 보면서 북경의 `내고향마트`가 생각났어요.


책을 쓴 이는 미셀 자우너 Michelle Zauner, 밴드 뮤지션으로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예요.

아버지는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인. 두 나라의 피를 반반씩 가지고 태어났어요. 25살 때 어머니를 췌장암으로 잃게 되어요. 어머니의 병을 알게 되고 투병 과정을 함께 하면서 어머니를 떠나보네요. 그 과정을 자세히 솔직하게 기록했어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움, 이해와 거부 그리고 그리움..


<H마트에서 울다>는 반은 저의 이야기이고 반은 우리들의 이야기예요.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갈등을 겪고 의견 충돌과 반항, 싸움, 미움이라는 고통을 겪어요.

미셀은 미국에서 성장하지만 방학 때마다 한국에 가서 한국어도 배우면서 조금씩 한국적 생활 방식과 사고를 하게 되어요. 미국에서 생활할 때는 엄마와 같이 H마트에서 가서 한국 물건도 구입하고 떡볶이, 짬뽕 같은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성장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혼자 H마트에 가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리워해요.


`엄마가 없는 나는 한국인이기는 할까…`

참기름은 몇 cc 대신 고소한 맛이 날 때까지 넣으라는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기 좋아하는 한국인...


미셀은 성장 과정에서 정체성에서 혼란을 느껴요.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그런 혼란 속에서 H마트에 가서 엄마와 짬뽕을 먹고 군만두를 먹으면서 한국인의 감성을 느껴요. H마트는 단순히 물건과 음식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가기 위해 1시간이 넘게 차를 운전해서라도 가고 싶은 한국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치유하는 공간이에요.


해외에서 살면 한인마트는 꼭 필요해요.

상해 홍췐루에는 K마트, G마트, W마트가 한인마트 3대장이에요.

한국 식품과 물건을 구입할 수 있죠.

늘 사 먹는 라면, 참치캔 같이 익숙한 식품도 있고 청정원 고추장, 간장, 된장 같은 양념도 사고 한국에서 새로 출시한 신상품을 보면 신기해요. 대부분 슈퍼에서 음식과 반찬도 같이 만들어 팔아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장바구니 들고 가는 한인 마트가 누구에게는 추억과 그리움의 공간이네요. 미셀 자우너는 한인마트에서 쌓여있는 과자 포장, 식품코너에서 만들어 파는 떡볶이, 김밥에서 나는 참기름 냄새에서도 그리움과 추억을 느껴요.



미셀에게 H마트가 추억과 그리움의 공간이었다면 제게는 북경 왕징의 `내고향마트`가 그래요.

꽁꽁 얼은 냉동이지만 한국 부산 어묵도 사고 낙원 식품에서 만들어 파는 떡과 김밥도 사 먹고 겨울이면 붕어빵도 구워서 팔아요. MSG 듬뿍 들어간 빨간 떡볶이 국물은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영양제 같고 참기름 발라 돌돌 만 까만 김밥 안의 인공 색소로 물들인 노란 단무지는 비타민처럼 상큼한 신맛이에요.

한국 쿠쿠밥솥도 팔고 한국 화장품도 팔아요. 멸균우유이지만 서울우유, 남양우유도 사 먹고 얼었다가 녹았다가 다시 얼린 한국 아이스크림도 있어요. 한국보다는 비싸지만 웬만한 물건을 다 구해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였어요.


상해에서는 징팅다샤井亭大夏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예전에 `갤러리아`라는 쇼핑센터가 있었대요. 교민들은 지금도 `갤러리아`라고 불러요. 저는 갤러리아 쇼핑센터가 없어진 후에 상해에 왔는데요, 사람들이 갤러리아에서 보자고 해도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이 건물에 상해 희망 도서관도 있고 북코리아라는 한국 서점도 있어요.

전설의 짬뽕이라는 불리는 도도원도 있고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는 무봉리 순대도 있어요.

옷 수선집도 있고 모닝 글로리도 있고요.


상해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도 징팅다샤에 있는 마트를 가고 학원을 다니고 도서관을 가고 도도원 짬뽕과 부산어묵의 떡볶이와 어묵을 먹으면서 추억이 생기고 있을 거예요.

매일 갤러리아를 드나들면서 조금씩 우리의 추억이 묻고 있을 거예요.

이곳에서 성장했던 아이들도 한국에 가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여기 상해를 생각하면서 한인마트와 여러 가게가 있었던 갤러리아가 생각날 거예요. 해외 사는 우리는 한인마트에 가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지불하고 빨간 고추장 가득 들어간 떡볶이와 고소한 냄새 폴폴 나는 김밥으로 보상받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도 언젠가는 상해를 떠나서 더 이상 한인마트가 필요 없어지겠죠.

나중에 K마트, G마트, W마트에 와서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을 그리워하면서


눈물 지을까요?

미소 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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