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n 29. 2024

시험 없는 공부 없고 마감 없는 플젝 없다

 < 전쟁과 평화> 빡독여행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정도, 운동이나 산책을 한 시간 빼고 계속 읽었어요.

아침 먹으면서 읽고 애프터눈티 먹으면서 읽고 저녁에 해피아워 때 와인 마시면서 음주 독서했어요. 연기자들이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 실제 그 역할로 사는 것처럼 몰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제가 마치 전쟁과 평화의 배경이 된 1805년부터 1812년까지  그 시대에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톨스토이 입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3,000쪽이라는 분량과 손에 들고 다니기로 힘든 무거운 이 책 읽기는 미움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났어요.


독서모임이 아니었으면 퇴직 후에나 읽었을 책이에요.

언젠가 하겠지 하는 일은 결국 평생 안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강제적으로 하게 되네요.

지난주 금요일, 독서모임에서 1박 2일로 상하이 푸동 디즈니 근처에 있는 별장으로 빡독여행 다녀왔어요.

저와 독서모임 같이 하는 분들과 같이요. 처음으로 이런 모임 가봤는데 재미있었어요. 내년 3월에 다른 고전으로 빡독여행 하기로 했어요.

전쟁과 평화는 세계사 구슬꿰기예요. 나폴레옹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표토르 1세, 류리크왕조(바이킹 민족) 등등


1805~1812년 간 이야기를 다르고 에필로그에서 8년 후 1,820년 이야기가 나와요.  

생각보다 문학적(감성적, 예쁜) 표현이 많지 않았어요. 불어, 독일어, 영어, 러시아어 등 사용한 언어가 다양해 자칫하면 어떤 말로 말하는지 놓칠 수 있더라고요. 등장인물이 겪은 전쟁은 서로 질량, 무게, 농도가 다르지만 전쟁이 준 큰 고통과 변화 속에서 주변 인물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 성장해요.

톨스토이가 <5월의 세바스찬>에서 이렇게 말했대요.


나의 주인공은 진실이다.

시인은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것을 떼어 내어 작품 속에 넣는다.  


소설이라기보다 논픽션이나 역사평설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어렸을 때, 세계문학전집과 위인전 전집이 집에 있었어요. 하드커버로 된 시리즈 책들..  30권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위인전에 톨스토이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 읽은 책은 글자였다면 지금은 글을 읽을 수 있어요. 남들이 골라놓은 기준으로 선정된 위인과 스토리였지만 비판 없이 의심 없이 읽었죠


이제 제 의지로 책을 선택하고 읽은 나이가 되어 전쟁과 평화를 읽고 톨스토이에 대해 알게 되니 위인 맞네요. 러시아 국민의 1%라는 귀족으로 태어나 귀족으로 살았으며 그저 그런 사람이었을 거예요.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신분제를 타파하고 나누려고 했고 개혁하려 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일어났던 일을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비판의 눈으로 보려 했던 톨스토이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처럼 문학적 표현이 많거나 서사적이지 않아요.

담담하게 흐르는 강물 같아요. 전쟁과 평화는 다르지 않아요전쟁 속에서도 평화로운 일상이 있고 일상 속에서도 팽팽한 전쟁 기운을 느낄 수 있어요.


러시아에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는 나폴레옹의 일방적 침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폴레옹도 왕정이 무너진 프랑스를 겨냥해 다른 나라들이 침략해오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전쟁을 하지 않았을 수 있죠. 프랑스 왕정 무너졌다고 주변 유럽 왕정 국가들이 프랑스를 침략해도 되냐는 아닌 거죠.


전쟁은 전체 민중의 의지가 아닌 한 개인(혹은 특정집단)의 욕망과 탐욕으로 일어나는 거고 그 과정에 원하지 않았던 대다수 선량한 민중이 휩쓸리며 상처와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네요.


톨스토이는 불세출의 영웅이라는 나폴레옹을 위대하게 그리지 않아요. 그도 어쩌면 코감기나 걸리는 지질한 남자죠.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누구 한 사람만을 위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휩쓸리고 희생하는 전쟁을 비판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559명이라는 등장인물과 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을 거예요.


톨스토이는 이 책에서 안드레이와 피에르에게 자신을 반영시켜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종교, 농지개혁, 러시아 사회와 유럽사회에 대한 비판과 방향을 투영하죠. 소설이기보다는 역사평설에 가깝고 시사 논설에 가까운 서술이지만 저는 불편하지 않았어요. 제가 바라보는 시각하고 방향이 같아서 그렇네요.


책을 읽는 내내 톨스토이와 러시아 사회에 몰입된 기분이었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전쟁과 평화도, 삶과 죽음도 이분법으로 딱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명확하게 금 그어지지 않아도 나눠지지 않아도 우리 삶이니까요. 그렇게 사는 거죠.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 삶의 목적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품위는 멋진 옷 입고 비싼 음식 먹고 좋은 탈 것 타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존엄과 가치에 고민하며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톨스토이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쓴소설을  

나중에 AI 보고 각자의 입장에서 전쟁과 평화를 써보라고 하고 싶어요.

피에르의 입장에서, 나탸샤의 입장에서, 나폴레옹의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요.


톨스토이는 에필로그와 작품해설까지 덧붙이면서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요. 소설이라는 기존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야 하는데 톨스토이가 화자가 되었죠. 연기는 배우가 해야 하는데 감독이 연기한 느낌이에요.




탈 것에 따라 나눠지는 신문들도 흥미로웠고 러시아의 장식, 음식, 음악, 인물에 관한 다양한 용어와 관습, 수많은 등장인물과 이야기, 3000쪽을 2박 3일 동안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인상적인 구절

1부

21 사람들은 따님이 낮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23 그 가엾은 딸은 돌처럼 불행하답니다. 낮, 돌이라는 명사를 형용사처럼 사용

31 인텔리겐치아

77 바퀴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바퀴에 기름을 쳐야 하듯 가장 다정하고 가장 허물없는 최고의 관계에서도 아첨이나 칭찬은 반드시 필요하다.

107 저 젊은이들의 비밀이라는 것은 하얀 실로 꿰맨 자국처럼 환하게 보이는군요!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말

249 보나파르트는  ` 루바시카`를 입고 태어났다. – 나폴레옹이 운이 좋다는 표현

261 안뜰에 어두운 가을밤이 내려앉았다.

452 전투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신적 동요는 분명 공포 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

606* 어느 순간이 오면 지렛대가 걸리고 바퀴가 운동에 순종하여 삐걱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하고, 스스로 그 결과와 목적을 헤아릴 수 없는 하나의 운동으로 합쳐진다. 시계에서 무수히 많은 각양각색의 바퀴들과 도르래들이 복잡하게 움직인 결과가 그저 시간을 가리키는 느리고 규칙적인 시곗바늘의 운동에 불과하듯 이 16만 명의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이 만드는 인간의 모든 복잡한 움직임들, 즉 이 사람들의 모든 열정과 열망과 후회와 모욕과 고통과 자존심의 폭발과 공포화 희열의 결과는 이른바 ` 세 황제의 전투`라 불리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패배, 다시 말해 인류 역사의 숫자판 위에서 세계사의 시곗바늘이 느리게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나폴레옹, 알렉산드르 1세, 프란츠 1세

682 여기 아름다운 죽음이 있군


2부

36 바그라치온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를 발명해야 했을 거야 -볼테르의 말 `만일 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신을 발명해야 했을 거야 `

37 사티로스 -디오니소스 수행원

67 그 갤리선에서 무엇을 하려던 거지?-몰리에르의 문구 희곡 <스카팽의 간계> 어쩌다 그는 그런 문제에 걸려든 거지?를 뜻하는 관용적 표현

141 무엇이 나쁜 것일까? 무엇이 좋은 것일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할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난 도대체 무엇일까?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일까? 어떤 힘이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일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전혀 아닌 비논리적인 한 가지 대답 외에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대답이란 이런 것이었다. `죽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든가, 질문을 멈추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죽는 것 역시 무서웠다. -피에르의 자문자답

2권에서 피에르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한다.

181 장 폴 마라 Jean Paul Marat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인,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의 실존인물

231 훌륭한 사람들이 무제한적 권력의 대물림 속에서 양육되어 해가 갈수록 성마르고 가혹하고 거칠게 변해 가는 모습을, 스스로도 그것을 알면서 억누르지 못하고 점점 더 불행해지는 모습을 말이야,

인간의 존엄과 양심의 평온과 순수지 그들의 등이나 머리가 아니야, 등짝을 아무리 후려갈겨도, 머리털을 아무리 밀어 대도 그것들은 여전히 똑같은 등과 머리로 남을걸

236 진리에 대한 이야기, 지금은 우리가 지상의 자식이지만 영원에서 보면 온 세상의 자식이죠. -피에르와 안드레이의 진리에 대한 대화

239 겉으로는 여전히 똑같아 보일지라도 그 사건과 더불어 그의 내면세계에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244 유로지비 yurodivyi 러시아에서 흔히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

363 블루스타킹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문인이나 문학에 관심 있는 귀족들을 초청하여 담화 나누기를 즐기던 사교계 여성. 오늘날에는 문학이나 학문에 관심 있는 척하는 여성들을 경멸하는 뜻으로 쓰인다.

422 즐거움의 소금(아테네의 소금) 품위 있는 유머를 뜻하는 관용어

462 황금심장-아름답고 부드러운 마음을 뜻하는 러시아의 관용 표현

634 금빛 별들이 경이와 기쁨을 불러일으키며 끊임없이 쏟아진다.


3부

1장은 역사 교과서나 평론 같다는 느낌이에요.

16 어째서 대공이 받은 모욕 때문에 수천 명이 유럽의 다른 쪽 끝에서 쳐들어와 스몰렌스크현과 모스크바현 사람들을 죽이거나 유린하고 그들 자신도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17 결국 수십억에 이르는 그 모든 원인들이 과거에 존재한 것을 일으키고자 하나로 합쳐진 셈이다.

21 스스로에게 자기 의지에 따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각 행동도 역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모든 과정과 연관되어 있고 태초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349 카론의 배 -그리스 신화에서 카론은 죽은 자의 혼을 자신의 나룻배에 태워 스틱스강 건너 하데스의 왕국으로 데려다주는 뱃사공이다.

415 거짓을 받아들여야 해. 거짓을 버리는 것. 이게 핵심이야. 전쟁은 전쟁일 뿐 놀이가 아니야.그러지 않으면 전쟁은 나태하고 경박한 인간들의 오락거리가 되고 말아…

436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우리 개개인은 위대한 나폴레옹보다 더 뛰어난 인간은 아닐지 몰라도 결코 그보다 못한 인간은 아니라고 나에게 말하는-

442 술병의 마개를 뽑은 이상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지요..

511 전에는 아침 햇살을 받은 총검의 반짝임과 연기로 그토록 활기차고 아름답게 보이던 들판 전체에 이제는 습하고 옅은 안개와 연기가 깔리고, 질산칼륨과 피의 시큼하고 야릇한 냄새가 풍겼다.

511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는 이의 의지로 벌어지는 그 끔찍한 일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521 대중을 지배하는 동질적인 무한소의 요소들을 연구해야 한다.



4부는 1,2,3부와 연결되지 않고 툭 끊기는 느낌이에요. 전쟁과 평화는 순서 상관없이 읽어도 각각 독립된 이야기네요.

13 삶의 환영, 삶의 물그림자에만 신경을 쓰는 평화롭고 화려한 페테르부르크 생활은 예전처럼 계속 흘러갔다.

79 인간의 행위와 삶이 숫자로 지칭되는 명부

90 피에르의 마음속에서는 모든 것을 지탱하며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던 용수철이 느닷없이 뽑혀 나가 모든 것이 무의미한 먼지 더미로 무너져 내린다.

246 군대의 사기란 힘을 산출하는 질량에 곱하는 승수이다.

306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듯,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318 삶이 전부야, 삶이 곧 신이야. 모든 것이 이동하고 움직이지. 그 운동이 신이야. 그리고 삶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신을 자각하는 기쁨이 있어. 삶을 사랑하는 것은 곧 신을 사랑하는 것이지. 가장 힘들고도 가장 행복한 일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무고한 고통 속에서도 이 삶을 사랑하는 것이고

356 그 상처, 그 새로운 상처가 나탸샤를 삶으로 불러냈다.

410 하느님의 뜻이 없이는 사람의 머리에서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에필로그 1부는 1812년 이야기 후 7년 후

465 역사의 바다는 그 표면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인류는 시간의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에필로그 2부

473 목적이 이념의 전파였다면 출판이 그 목적을 병사들보다 훨씬 더 잘 수행했을 것이다.

591 역사의 대상은 여러 나라 국민들과 인류의 삶이다

623 여러 나라 국민들의 삶이 몇몇 인물들의 생애 안에 수용될 수는 없다.

625 권력이란 한 인물에게 이양된 의지의 총합이다.

665 역사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인과의 종속 관계 안에서 인간의 자유가 발현하는 현상을 살핀다.

678 역사가는 사건의 결과에 관련되어 있고, 예술가는 사건의 사실에 관련되어 있다.  

685 역사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외부


마지막에 작품해설 붙일만큼 톨스토이는 할 말이 많으셨네요 .

톨스토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일부만 읽었지만 나머지도 꼭 읽을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군대와 전쟁사를 모르는 안나의 <손자병법>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