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린 자는 끌려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불안했다.
3월부터 상하이 곳곳에 코비드 Covid- 19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다. 중국에서 신관이칭新冠疫情이라 부르는 코로나가 시작된 지 세 번째 봄이다. 코로나가 없는 봄은 내 생에 다시 올까? 이제 내일이면 격리 숙소에서 나갈 수 있다. 비행 갔다 올 때마다 해외 입국자로 분리되어 시설격리를 해야 한다. 항공사 승무원들조차도 해외 아니, 비행기에서 해외에서 그 나라 탑승교라도 밟았으면 중국으로 돌아와 14일 동안 격리한다. 2020년 봄, 코로나가 퍼지면서 중국은 재빨리 국경을 봉쇄하며 해외 입국자와 항공을 제한했다. 한 달에 90시간, 의무 비행시간 한계까지 채우던 빡빡했던 비행 스케줄이 회사 앱에서 갑자기 다 사라졌다. 휴대폰에서 회사 앱을 열면 텅 빈 하얀 화면이 나온다. 중국은 디지털 만리장성을 쌓았다.
2020년 1월 24일 우한 봉쇄 후, 강력한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해외 입국자에 대한 14일 격리와 항공사마다 한 노선에 일주일에 한 편만 운행하는 정책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텅텅 비어 있던 내 비행기 스케줄에도 가끔 한 노선 정도 배정되었다. 국제선을 갔다 오면 14일 격리를 해야 했다. 격리 중 다시 비행이 배정되면 해외 비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다시 격리 시설로 들어가야 했다. 비행 노예인지 코로나 노예인지도 모르는 시간들이 흘렀다. 이 끔찍한 스케줄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내국인 기장들은 아무도 없다. 가족이 있는 가장들은 격리시설과 비행과 격리시설을 반복하는 야곱의 사다리를 아무도 오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해외 비행 스케줄 못 받아 난리 치던 중국인 기장들은 모두 해외비행 스케줄을 받지 않기 위해 스케줄러에서 온갖 아부, 청탁과 관시를 동원했다. 형벌 같은 해외 비행은 외국인 기장들의 몫이었다. 좋은 스케줄은 중국인 기장이 하고 하기 싫은 것만 외국인 기장에게 던져주는 회사 정책에 화도 안 난다. 화도 열정이 있어야 나니까..
코로나 걸리면 비행 중단이다.
코로나에 걸리면 바로 비행 정지이고 몇 개월이고 한도 끝도 없는 무한정지이다. 6개월 비행 정지받았던 외국인 기장은 이미 코로나 완치되었는데 폐 CT만 4번을 찍었고 여전히 복직 결정은 아무도 내리지 못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나마 나와 친하게 지내던 싱가포르 기장, 션 Shawn은 계약을 중간에 포기하고 말도 안 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렸다. 한 때,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과 국제도시 상하이에서 번쩍거리는 화려한 삶을 약속하던 중국 항공사는 이제 비행시간당 300달러라는 이상한 시스템의 급여와 코로나에 걸리면 끝장이라는 번쩍거리는 칼날을 들고 사형장에서 춤추는 망나니가 되었다.
호텔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난다. 파블로브 실험실 개처럼 습관적으로 문을 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방호복과 방독면을 쓴 검사요원이 거대한 석상처럼 서 있다. 소유권은 내게 있지만, 내 몸 사용권은 그들에게 있다. 내 생체정보는 나보다 이들이 더 잘 알 것이다. 10cm 가늘고 기다란 면봉으로 내 목과 코를 휘젓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2번씩 당하는 코로나 검체 채취, 늘 기분 나쁘고 불쾌하다. 검체를 채취한 방역 요원이 가고 난 뒤, 문을 힘주어 신경질적으로 ‘쾅’하고 닫았다. 창문이 미세하게 떨려 하얀 먼지가 떨어진다. 패키지 관광객 대상으로 대충 지어진 허름한 호텔이라 구조가 튼튼하지 않아 그렇다. 원하지 않은 성관계를 한 것처럼, 추행당한 듯 불쾌한 모욕감도 같은 진동으로 내 몸에 떨려오고 있다.
‘참자, 내일이면 이 격리 시설에 나갈 수 있다. ’
집에 가서 이들이 주는 기름에 절은 언제 만들었을지 모르는 도시락이 아닌, 내가 만든 신선한 야채와 나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자려고 했다. 격리 기간 2주 내내 한 번도 안 갈아주는 찌든 냄새나는 시트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음 비행 갔다 오면 또 이 시설에 와 격리해야 하지만 최소한 내일은 이곳이 아니니까..
어렴풋이 설친 잠에서 깨어났다. 샤워 후, 마지막 검체채취를 해야 한다. 방 안에 있는 내가 만진 모든 물건까지 면봉을 이용해 검체를 채취한다. 내 몸과 내가 만진 모든 것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아야 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다. 범죄자도 형량 채우면 출소할 수 있는데 코로나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하나로 나는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할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된 것 같다.
흰 죽, 계란, 요우티아오油条, 짜차이榨菜와 사과 하나가 아침으로 나왔다. 먹기도 싫다. 24시간 50㎡ 방 안에 갇혀있는데 무슨 식욕이 있고 체력 소모량이 있을까… 사과 하나 우적우적 먹었다. 격리 시설 안에 시간은 분침이 시침처럼 간다. 흐르지 않는다.
플라이트백flight bag, 유니폼, 모자, 구두, 넥타이, 재킷, 견장 모든 물건을 정리하고 짐을 쌌다. 14일 동안 안 했던 면도도 했다. 혼자 있으면 면도할 필요가 없다. 맨질해진 턱에 내가 좋아하는 페레가모 애프터쉐이빙 로션도 발랐다. 14일 만에 맡아보는 화장품 향기에 기분이 가벼워진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필요한 야채와 물품을 주문한다. 창밖에서 햇살이 들어와 방안이 눈부시다. 격리시설 안에 있다 보면 하늘에 해가 있었는지 달이 있었는지 모른다. 존재마저 잊던 햇볕이 방에 들어오는 걸 보니 어느새 11시이다. 새벽부터 문 두들기며 요란스럽게 채취한 검사결과가 아직 안 나왔나 보다. 이렇게 코로나 검사를 정밀하게 하는 이 나라가 반도체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문 앞,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점심을 주는 것이다. 이 소리는 나의 출소? 가 늦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스럭 거림이다. 아침 휴대폰 알람 소리보다 더 짜증스럽다. 방문 앞에 언제나 그랬듯 소독약 뿌려진 봉지 안에 담겨 있는 기름 냄새나는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시락을 방바닥에 팽개쳤다. 쏟아진 밥과 반찬에서 그래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 참을 수 없는 짜증과 콧속으로 들어오는 냄새에 느껴지는 허기에 피식, 쓴웃음이 난다. 갇혀있어도, 짜증이 나도 사람은 배고프다.
협탁 옆 전화벨이 울린다. 지금 나가도 된다고 한다.
종업원이 하는 서툰 영어 발음도 이런 말은 잘 들린다. 미리 싸 놓은 가방을 들고 방바닥에 팽개친 도시락을 한번 흘겨봐 주고 로비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로비에는 다른 기장들과 승무원, 정비사들로 북적북적하다. 다들 격리 도중에 다시 비행 스케줄 잡혀 비행에 가지 않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스러워한다. 시끄러운 그들 속, 외국인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디디滴滴(중국차량공유서비스)에서 차를 불러 집으로 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중국어 간판과 방역 관련 포스터, 코로나 검사소, 여기저기 소독약을 뿌리는 방역 요원들..
사람은 없고 코로나와 코로나를 막으려는 맹목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