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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23. 2024

1부 2편-우연

 14일 간 지겹다 못해 고문 같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것은 쇠사슬로 잠근 문이다. 내가 사는 레지던스 안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한다. 확진자는 격리수용소로 보내졌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봉쇄되었다고 한자로 빽빽하게 써있는 누런 종이를 중국 산 지 10년 다 되어간다고 눈에 익은 글자 몇 개와 파파고 이미지 검색을 해 알아낸 내용이다.다시 한번  누런 통지문을 쳐다보니 그 밑에 찍힌 붉은 도장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 모든 공문서에는 빨간 도장이 찍혀있다.  


 우두커니 서있는 내게 방호복을 입은 아파트 경호원이 우주인이 우주를 유영하듯 흐느적흐느적 다가온다.

나와 거리를 두고 메가폰을 들고 떠든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해도 지금 집에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내용이다.  망설이고 있는 내게 방역요원은 소독약이라도 뿌릴 기세이다. 플라이트백, 개인 캐리어에 투미백팩까지 짐 3개를 들고 일단 그 자리를 떠났다. 아침에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집인데 쇠사슬로 잠근 문 하나를 못 넘어 돌아갈 수 없다.

 호텔로 가기는 더 애매하다. 지금 외국인을 받아주는 호텔도 없고 호텔로 들어갔다 그 호텔이 봉쇄 안된다는 보장도 없다. 14일 격리에 겨우 해제되어 나왔는데 갈 곳이 없다. 집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그동안 마시고 싶었던 카페라떼를 샀지만 실내취식은 안된다고 한다. 내 돈 다 내고 산 커피를 스타벅스 매장 앞에 서서 마셨다. 휴대폰 문자 알림이 온다. 내 은행 계좌에서 커피 값 33위안이 결제되었다는 알림이다. 안다. 내 돈 내가 쓰는 데 모를까 봐, 괜한 막연함과 신경질로 휴대폰을 째려보는데 은행 알림 문자 밑에 서영이가 보낸 문자가 있다.

 서영이가 생각났다. 베이징 살 때, 산우회 등산모임에서 얼굴 본 사이라 친하지 않지만 알고 있는 사이다. 나는 3년 중국 FSC Full Service Carrier 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상하이 LCC  Low Cost Carrier항공사로 이직했다. 중국 국영 항공사에서 민영 그것도 새로 생긴 작은 항공사로 이직하는 나를 두고 선배 기장들은 충고보다 악담 섞인 이야기 했다.


 너, 상하이 가면 후회한다.


그래 지금 이 순간 후회한다.


 올해, 서영은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근무지를 옮겼다.

 10년을 근무하던 곳을 떠나 상하이로 왔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알던 다른 기장들과 같이 한 번  만났다. 다들 베이징을 떠나왔는데 베이징을 그리워한다. 베이징에서의 인연으로 상하이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인연인가…  서영이 상하이에서 새로 개통한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다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지금 이 순간 상하이에서 내가 연락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서영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다른 한국인 기장들은 코로나가 터지면서 반복된 격리와 비행에 지쳐 한국으로 귀국했다. 남은 3명은 지금 비행 중이거나 시설격리 중이다. 멕시코 기장인 토미가 혹시 집에 있을까 위챗을 보냈지만 답이 없다. 지금 4시인데 퇴근도 안 한 서영에게 연락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 내 손은 이미 서영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여보세요


늘 친절하고 아기 같은 목소리다. 비행 후 시설격리 마치고 집에 왔는데 집이 봉쇄되어 들어갈 수 없고 호텔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오늘 다른 사람들과 연락될 때까지 좀 도와줄 수 있냐고 선뜻 입에서 떨어지지 않지만 이야기했다.


저, 지금 집에 가는 길이에요.

아직, 퇴근 시간 아니잖아요.

네, 맞아요.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출입증을 가진 사람들만 아파트를 드나들 수 있게 통제하기로 했고 출입증을 받기 위해 관리사무소 퇴근 6시 전까지 가야 해 사무실에서 좀 일찍 나왔다고 했다. 서영사무실은 내가 사는 롱시루龙溪路와 같은 창닝취长宁区였다. 집에 가는 길이니 그쪽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서영이 내가 있는 스타벅스 매장이 어딘지 안다고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몇 시간 전까지 격리시설 작은 방에 내 눈을 눈부시게 하던 햇볕은 지금 오후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길거리에 서있는 내 눈앞에서도 눈부시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가 들고 있던 커피가 식어 우유 비린내가 나려고 하는 순간 자리 값까지 포함된 커피를 사고도 매장을 이용할 수 없어 노숙자처럼 서있던 내 앞에 검은 차가 오더니 선다.


기장님, 타세요.


서영이다. 급하게 집에 간다고 사무소 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서영이 일하는 사무소에서도 서영이가 아파트 출입증을 받아야 출퇴근을 할 수 있으니 빨리 집에 가라고 차를 배정해줬다고 한다. 시원하게 머리를 민  대머리 기사는 내 캐리어 2개를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남의 회사차이지만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니 편하다.


오랜만이에요.


어색한 내 말에 서영은 웃는다. 사람들은 서영을 ‘친절한 서영 씨’라고 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서영이 사는 아파트는 우리 집에서 20분 걸린다. 구가 다르지만 거리는 가깝다.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좁은 편이라 퇴근 차량으로 복잡하다. 다들 출입증을 받기 위해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가 보다. 아파트 정문까지 못 들어가고 100m쯤 떨어진 거리에서 내려야 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서영 회사 기사는 캐리어와 짐을 아파트 안까지 들고 따라왔다. 서영이 사는 아파트 현관문 앞까지 짐을 옮겨다 주고 돌아갔다. 서영은 기사에게 내일 보자는 밍티앤지앤明天见라는 인사 했고 나도 고맙다는 중국어는 할 줄 안다.


씨에씨에谢谢


우리에게 손 흔들고 유쾌한 미소를 지으면 기사는 돌아갔다.

그다음 날부터 서영을 64일 동안 보지 못할 줄,

서영은 그날 조기퇴근이 2022년 봄,

마지막 퇴근이었다는 것을 우리 셋 다 몰랐다.


 내 캐리어를 집안에 넣고 서영은 출입증 받으러 아파트 관리 사무소로 바로 가자고 했다. 숙제 같으니 빨리 해버리자는 재촉에 얼떨결에 같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아파트 가운데 있는 관리 사무소까지 300m 정도 걸어갔다. 나란히 같이 걸으니 누가 봐도 부부처럼 보일 것 같다. 서영도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는 중국이고 우리를 알아볼 사람은 없으니까. 관리 사무소 앞에 배급받는 것처럼 줄이 길다. 서영은 대약진 운동 때 인민공사를 만들어 공동급식을 했다고 그 느낌이 난다고 했다. 대약진운동이 뭔지, 언제인지도 모르는 내게 서영은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저녁 시간이다. 아파트 집집마다 뭔가 볶는 냄새가 난다. 그때서야 내가 오늘 먹은 것은 아침에 사과 하나, 오후에 마신 커피라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팠지만 서영에게 말할 수 없다. 빨리 이 의미 없고 쓸데없는 행위가 끝나면 좋겠다. 동 호수를 적고 여권 번호, 이름을 적고 도화지를 오린 얇은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이게 출입증이라고 한다. 서영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주며 당분간 여기서 왔다 갔다 하라고 한다. 고맙다고 말했지만 나는 오늘 밤이라도 다른 기장들과 연락이 되면 옮길 생각이다. 출입증을 받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홀가분하다고 맥주라도 마시자고 한다. 같이 아파트 앞에 있는 로손편의점까지 걸어갔다. 아파트에서 제일 가까운 편의점이 1km 떨어져 있다.


 제가 이렇게 시골에 살아요.


서영은 작은 소리로 웃는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 땅콩을 사가지고 서영집으로 들어갔다. 이게 우리 마지막 쇼핑이었다. 이때, 먹을 것, 마실 것 좀 많이 살 걸 하고 후회할 줄 우리 둘 다 몰랐다. 서영집은 방이 2개다. 베이징에 살 때 방 한 칸에서 살았는데 상하이로 내려오면서 적당한 집을 못 찾을 시간이 없어 그냥 월세 좀 더 주고 방 두 칸으로 구했다고 한다. 서영이 현관문에 지문을 찍고 아파트 문을 열었다. 낯설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얼굴과 아름밖에 모르는 여자 집에 캐리어 2개 끌고 들어가려니 민망하다. 이 민망을 무마시켜 주는 것은 코로나와 산발적 봉쇄로 언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폭풍전야 같은 상황이다.


 아침에 급하게 출근하느라 어수선하다고 하면 집안 정리 한다고 식탁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 낯선 집, 그것도 여자 집 식탁에 앉아 있으려니 멀뚱하다. 서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서재로 쓰는 작은 방에 가 짐 갖다 놓고 옷도 갈아입으라고 한다. 작은 방은 말 그대로 작았다. 서영이 서재로 쓰는 방이다. 책장과 연결된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작은 수납장이 하나 있다. 서영처럼 깔끔하다. 나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가 식탁에 앉았다. 특이하게 서영 집에는 소파가 없다.


서영은


신기하죠. 우리 집에는 소파가 없어요.


하며 웃는다. 앉아있을 시간도 없는데 공간만 차지하는 게 싫어 소파를 안 놓고 산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와 안주, 서영이 냉장고에서 꺼낸 샐러드, 치즈, 견과를 놓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가 공통으로 소유하는 것은 베이징 생활과 경험이다. 그때까지 서로에 대해 하는 아는 것은 이름과 직업이었다. IPA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장군의 아들이다. 아니 이었다. 아버지는 1성 장군이었다. 별 하나를 끝으로 더 이상 승진은 없었고 결국 정년을 1성 장군으로 마쳤다. 육국사관학교를 대통령상을 받으며 졸업할 정도로 아버지는 소위 잘 나가는 군인이었다. 소위로 시작한 군 생활은 순탄히 때 맞춰 승진하면서 민간회사를 다니는 월급쟁이처럼 평온했다. 부대 주둔지에서 주말에 우연히 갔던 교회에서 피아노를 반주하던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고 형과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집안에서도 부대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늘 모든 것이 각이 맞아야 했고 반듯해야 했다. 형과 나는 아버지 부하도 아닌데 부하처럼 맞았다. 대령까지 무난히 승진했던 아버지는 별을 달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무난히 승진했던 시간을 모두 빼앗기라도 하듯 매번 승진심사에 탈락했던 아버지는 마침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거래를 통해 기어이 별을 달았다.

 지금은 군인연금 받는 팔자 좋은 할아버지처럼 허허 웃지만 성장 기간 내내 아버지가 보여준 폭력성은 내 몸에 새겨져 있지 않지만 내 가슴과 뇌에 새겨져 있다. 아버지는 내가 육사에 진학하기 원했다. 군인 아버지에 질린 나는 사관학교는 원서도 쳐다보지 않고 공대를 진학했다.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한동안, 아니 원래도 뜸했던 아버지와의 대화는 우리 집에서 수명을 다한 드라이아이스처럼 사라졌다. 그나마 나와 아버지 사이, 완충지대이자 DMZ 같았던 형은 아버지 뜻대로 육사를 갔다 사고로 사망했다. 아버지와 내 사이는 맨살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거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 같았다.


 굳이 이 이야기를 서영과의 첫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마음속에 박히고 박혀 곪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이나 꺼내 보고 싶었을지 모른다. 뜻밖에 어두운 내 이야기에 서영도 놀란 것 같다. 하긴, 지금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새롭고 놀라울 것이다.

 분위기를 돌리려고 했는지, 서영은 베이징 이야기를 했다. 내가 베이징에 있을 때, 나뿐만 아니라 베이징 왕징에 사는 모든 한국 교민들이 가는 아침시장 이야기를 했다. 토요일 아침에 아침시장을 가면 왕징에 사는 모든 교민을 만나고, 일요일 아침에 연합교회를 가며 모든 교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침 시장에서 두부집, 꽃집, 커피콩 볶아 팔던 집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상하이를 떠나 베이징에 있는 듯했다.

 우리가 산 맥주는 IPA였다. 6도 알코올은 오늘 하루 종일 사과 하나와 라떼 한잔을 마신 내 내장과 혈관 속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조기퇴근해 평소 같으면 퇴근도 안 했을 시간에 맥주 마실 수 있다고 서영도 즐거워했다. 맥주를 다 마셨을 때, 우리 둘 다 취했다. 누구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는 나를 보고 서영은 자고 가도 된다고 했다. 눈치도 빠르고 배려심 깊은  서영이다. 왜 베이징에서 사람들이 서영을 좋아하고 칭찬했는지 알겠다.


 작은 방에서 자라고 했다. 평소 스트레칭매트로 쓰던 매트가 있다고 했다. 빈 속에 맥주를 마신 나도 취했고 캐리어 2개 끌고 또 어디로 이동해야 한다는 게 귀찮아졌다. 서영은 작은방에 들어가 매트를 깔고 이불과 베개를 가져다주었다. 살림살이가 많지 않고 남는 이불도 없다고 여름이불, 겨울이불 있는 대로 꺼내 누울만한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서영은 설거지를 한다고 주방에 들어갔다.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서영을 나는 뒤에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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