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 설거지를 하다 말고 물 묻은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서영은 끌어안은 내 팔을 잡아 푼다.
씻으셔야죠.
나도 더 이상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얼굴만 알고 있던 서영을 안고 싶었다. 우리 둘 다 힘든 게 아니라 나만 힘든가 보다. 내 착각이다. 서영집 욕실은 작았다. 샤워 부스, 변기, 세면대가 있는 전형적인 중국 아파트 구조이다. 중국 수도관은 대부분 녹슬어 녹물이 많아 교민들은 별도 샤워필터를 설치한다. 나는 비행으로 한 달에 절반 이상 집을 떠나 있어 사용하지 않지만 서영집에는 샤워 필터가 있다. 샤워하고 나오니 서영이가 작은 방문을 열어놓았다. 방에 들어가 자라는 뜻이다. 길고 길었던 하루가 이렇게 끝나나 보다.
내가 방에 들어가자 서영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나보다. 이불에 누워 천장을 본다. 한국 평수로 3평쯤 될까? 네모난 하얀 하늘 같다. 중국 아파트 벽은 벽지를 사용하지 않고 하얀 벽 칠을 한다. 이 작은 방이 한 달도 넘게 내 거처가 될지 몰랐다. 휴대폰이 울린다. 서영이 보낸 위챗 메시지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휴대폰으로 연락한다.
저 깨우지 않고 내일 아침에 조용히 출근할게요. 아침은 드실 거면 빵 구워놓을까요?
피식 웃음이 난다. 귀엽다.
괜찮아요. 내일 아침에 다른 기장들 숙소로 옮길 거예요.
답장 문자를 보내고 나자 마취주사라도 맞은 듯, 잠이 쏟아지며 의식이 끊겼다. 격리시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이다.
새벽 6시쯤 되었을까, 서영이 살금살금 밖에서 욕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한다. 출근 준비를 하며 자기도 뭔가 먹으려나 보다. 서영은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다. 베이징에 있을 때, 등산 가는 차 안에서 서영이 가지고 온 보온병 뚜껑을 열면 향기로운 커피 향이 퍼졌던 기억이 났다. 커피콩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와 드립으로 내리는 커피 향을 방 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출근한다는데 얼굴이라도 보려고 거실로 나갔다. 내 커피도 내려져있다.
제 커피는 식어도 마실 만해요.
웃는다. 고마운 마음에 따듯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빈속에 짙은 갈색 커피가 식도를 타고 흐른다.
저희 집은 문 닫으면 자동으로 잠겨요. 집 비번은 404075예요.
어디서 많이 들었던 숫자다. 베이징 산악회 무전기 주파수이다.
서영은 베이징을 떠난 지 3개월 좀 넘었는데 몸은 상하이에 있지만 마음은 베이징에 있는 것 같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옷차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늘 금요일이라 그런지, 서영은 편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다. 띠리리, 경쾌히 문을 열고 나가자 자동으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서영집에 손님이라고 하기 애매한 관계의 내가 집주인처럼 남았다. 커피마저 마시고 샤워하고 이제 짐 싸서 나가야겠다 생각하고 식탁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다시 전자음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린다. 서영이 돌아왔다. 뭔가 두고 간 물건이 있냐 생각했다. 집주인은 서영인데 현관문 앞에 손님처럼 서 있고 내가 집주인처럼 거실에 서 있는 이상한 상황이다. 서영 얼굴색이 안 좋다.
무슨 일이에요.
1층 현관문이 봉쇄되었어요.
오늘부터 서영이 사는 아파트가 전수검사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했다. 아파트 안에서 모든 사람을 전수검사해 확진자가 없으면 아파트봉쇄를 풀어준다고 했다.
이틀 동안이래요.
서영이는 미안한 듯 내게 말했다.
괜찮아요.
왜 서영이 내게 미안해야지
서영은 식탁에 앉았다. 회사에서 몇 가지 물건과 노트북을 가지고 와야 한다고 했다. 회사직원과 통화와 문자를 부지런히 주고받더니 회사에서 기사 통해 노트북과 쓰던 물건 중 몇 개를 보내올 거라고 했다. 급한 일을 처리한 후 서영은 한숨 돌리며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본다. 아직 세수도 안 한 내 얼굴에 묻은 잠이 느껴진다.
기장님은 어떻게 해요.
그러게요.
어색한 대화를 깨뜨리는 소음이 들린다.
아파트 현관문을 두들긴다. 1층으로 내려와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서인가? 이제는 익숙해질 만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 검체 채취 검사는 모욕적이고 기분 나쁘다. 서영과 같이 나란히 1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서영이 사는 아파트는 주재원이나 교민들이 사는 지역과 떨어져 있어 그런지 상하이 현지 주민들이 많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등장한 키 큰 외국인 남자에게 쏠리는 시선을 느낀다. 신경 쓸 것도 없다. 나는 여기 잠깐 왔다 이틀 동안 갇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한 이방인이니까… 아파트 사는 주민들 속에 서영과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서영 피부는 하앴고 나는 검었다.
주민들은 동네잔치라도 열린 듯 시끄럽다.
짜증도 화도 안 나나보다. 우리 둘 다 한마디 말도 안 했다. 검사원에게 아파트 동호수를 말해야 한다. 말하기 싫었는지 서영은 휴대폰에 집 호수를 찍어 보여주었다. 검사하다 코로나 걸릴 판이다. 1M 간격 유지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주민들끼리 즐겁게 이야기한다. 1층 좁은 현관에 검사 채취대와 접수대까지 설치해 비상계단까지 줄을 서야 했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올라왔다 해야 할까? 서영은 다리가 아픈지 식탁에 앉았다.
우리 뭐 좀 먹어야죠.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인다. 서영이가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게 없었나 보다.
뭐 시켜 먹을까요?
김밥을 주문하겠다고 했다.
어쨌든 이틀 동안 뭔가 먹어야 하니 장도 보겠다고 한다. 한인마트에서 자기가 사는 곳까지 배달이 안 된다고 했다. 나중에 한인마트에서 배달 가능한 지역과 안 되는 지역이 얼마나 큰 차이를 불러올지 몰랐다.
펑요김밥朋友紫菜拌饭이라고 요즘 중국인들도 많이 시켜 먹는 김밥이라고 먹겠냐고 해 좋다고 했다. 김밥과 떡볶이를 시키고 허마河马 앱에서 야채, 요구르트, 계란 같은 식료품을 주문했다. 한인마트에서 필요한 것 있으면 어차피 기사 아저씨가 올 거니까 부탁하면 된다고 했다. 막상 시키려니 금방 생각나는 게 없어 냉동만두, 삼계탕, 라면을 골랐다. 내게 뭔가 선택하고 고를 수 있던 마지막 주문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인터폰이 울린다. 김밥이 1층에 있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아파트를 봉쇄해 놔 택배원들이 아파트 정문 앞에 두고 가면 1층을 지키는 보안이 받아왔다. ‘이게 무슨 비효율인가….’ 서영은 1층으로 내려 가 김밥과 떡볶이를 가지고 왔다. 김밥 두 줄과 빨간 국물 떡볶이, 우리 마지막 외식이 될 줄도 몰랐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애매한 식사를 마치고 서영은 회사에서 온 기사에게 온 물건을 받으러 갔다.
같이 갈래요?
음식물 쓰레기도 버릴 겸, 같이 나갔다. 아파트 1층 공동 출입문 앞에 이미 쓰레기 봉지가 수북하다. 아파트 보안에게 여행용 캐리어보다 큰 짐을 받아 든다. 같이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늘 2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니 원래 같이 살았던 느낌이다. 회사에서 보낸 짐을 푸느라 서영은 정신없다. 노트북부터 꺼내 업무를 시작한다. 바쁜 서영과 할 일 없이 이 집에 있어야 하는 내 신세가 묘하게 교차된다. 슬그머니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하루도 안 된 시간에 이 방은 내 방이 되었다. 휴대폰은 보니 아내에게 카톡이 와 있다.
항공사 입사 후 부기장일 때, 교사였던 아내와 결혼했다. 한국에서 항공사 다닐 때, 기장들은 대부분 같은 항공사 승무원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장 특성상, 일정치 않은 스케줄에 매일 환경 바뀌는데 배우자라도 일정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사람이길 원했다. 얼굴은 까맸지만 남들보다 큰 키와 우월한 체격, 기장이라는 직업에 장군의 아들이라는 배경을 가진 나를 좋아하는 승무원은 많았다. 어머니는 내게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태도로 돈 많고 집안 좋은 여자만 원했다.
대학 시절, 순수하게 사랑했던 내 첫사랑은 한부모에 집안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어머니에게 잘렸다. 내가 어떤 여자를 데리고 가든, 마음에 안 들어할 어머니에게 나는 더 이상 기대감을 주기 싫었다. 어머니가 고르고 고른 아내는 집안은 좋았다.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이었고, 오빠는 의사였다. 잠실에 곧 재건축될 아파트를 가족명의대로 4채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어머니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해야 할 결혼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사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아내와 결혼했다. 나도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남자들 삶처럼 그렇게 평범한 삶에 봉쇄되었다.
아내에게 지금 격리시설을 나왔지만 아파트가 봉쇄돼 집에 갈 수 없어 같은 회사 기장집에 왔다고 했다. 이렇게 민폐 끼쳐 어떻게 해 하는 아내에게 순간 확 짜증이 올라왔다. 나도 다른 선택이 없다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온라인 대화는 화가 나도 상대방에게 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오늘 코로나검체 검사했고 이틀 후면 풀릴 거라고 했다. 사실 풀리더라도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내와 대화하고 있는 사이, 거실식탁에서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는 서영의 분주함이 잠잠해졌다. 급한 불은 껐나 보다. 거실이 조용하다. 나도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가니 서영이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은 모두가 힘들다는 것이 느껴진다. 모든 일이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났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중국에서 살은 10년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더 긴 것 같다.
뭐 좀 드실래요.
서영 목소리에 잠이 깼다. 한참 생각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냉장고에서 있는 야채와 몇 가지 채소로 저녁을 만든다. 불과, 하루 만에 서영 주방에서 익숙하게 요리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혼자 살게 되면서, 나는 요리사가 되었다. 교사였던 아내는 한국에서 애들을 키우기로 하고 나만 혼자 베이징으로 왔다. 항공사 직원은 비행기를 버스처럼 탈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에도 몇 번씩 한국에 가 가족들과 같이 생활했다. 반찬을 사 먹는 기장들도 있었다. 가족과 같이 온 기장들도 결국 배우자들이 사 오는 반찬으로 식사하게 되었다. 파는 반찬의 짜고 진한 맛이 싫어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족들과 같이 있을 때, 코스트코에서 여러 재료를 사 집에서 만들어 먹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서영보다 내가 요리를 잘한다. 둘 중에 더 능력 있는 사람이 그 분야 일을 하기로 어색한 동거의 자연스러운 규칙이 되었다. 냉장고 재료를 파악하다, 이틀 후면 내가 이 집에서 나가는 데 왜 걱정하고 있지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설거지는 서영이 하기로 했다. 서영도 손이 빠르다. 정리를 끝내니 다시 어색한 시간이다. 서영도 나도 각자 방에서 잠을 잤다. 어제는 과음했지만 오늘은 술도 안 마시고 몸도 편하고 작은 방 분위기에 익숙해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서영과 나는 휴대폰 요란한 알람에 동시에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