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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23. 2024

1부 4편-갇힘  

상하이가 봉쇄되었다.


서영 회사, 지인들 단체방, 회사 앱, 기장 모임방, 중국 에이전시에게 상하이가 봉쇄되었다는 알람이 호나우두가 찬 축구공 속도보다 빠르게 날아오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한 항공사 한 도시 주 1회 취항이라는 이상한 규정으로 그나마 띄엄띄엄하던 비행마저도  당분간 비행 없다는 알람 한 줄만 앱에 떠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카톡이 쏟아졌다.


서영도 회사, 한국에 있는 가족, 상하이와 베이징에 있는 지인과 통화와 문자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아침을 맞았다. 거실 식탁에 둘이 마주 보고 앉았다. 우리  공동체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고  남은 음식으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상하이는 봉쇄되었지만 우리 내장은 봉쇄되지 않았다.

 식사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서영은  설거지하고 나는 냉장고를 열어 남은 식자재를 확인하고 있다. 이 집에 온 지 2일 만에 냉장고 주도권이 내게로 왔다.

 이게 무슨 권리일까 싶지만 1층 현관 밖도 못 나가는 상황에서 냉장고가 우리 생활에서 제일 중요해졌다. 이 상황이면 우리 먹을 수 있는 음식 분량은 이틀 정도다. 양파, 파프리카, 로메인 같은 야채와 콩, 치즈, 계란 2개, 페리에 탄산수 1병, 진라면 3개가 다였다. 내가 먹어야 할 단백질은  콩이 유일했다. 쌀은 한 줌 있고 검은 콩이 많다. 연변 고향에 갔다 온 중국 직원이 선물로 주었다 했다. 콩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많다. 차茶도 많았다. 서영은 평소에 차를 마셔  선물로 받은 차가 많았다. 중국은 차를 가진 나라이다.

 커피원두도 많았다. 로스팅을 직접 할 정도로 커피에 진심인 서영답다. 피식 웃었다.


서영은 차와 소금만 있으면 21일은 버틸 수 있어요. 하고 웃는다.


‘그래, 저 체온증 올 상황도 아니고 숨만 쉰다면 21일도 못 버틸 수 있지.’


 중국으로 이직하면서 내 급여는 2배로 올랐다.

한국보다 높은 소득세도 회사에서 내줬다. 평균 힌 달 2,000만 원은 받는다. 웬만한 중소기업 1년 순수익만 큰 버는 내 급여와 동아은행 계좌에 쌓여있는 몇 십만 위안 잔액도  의미 없다. 이 상황에서 서영이 나보다 나았다. 상하이 사무소와 연락하고  한국 본사에서 상하이사무소 직원을 위해 조치를 취해줄 거라고 했다. 점심은 커피 한잔으로 마시기로 했다.


 저녁에 코로나 검체 검사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 검체 검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의료진(진짜 의사와 간호사인인지 모르겠지만)이 아파트에 오는 시간에 맞춰 코로나 검체 채취를 한다. 우리를 아파트 안에 가둬 놓고 계속 검사한 지 벌써 일주일 째다.  코로나에 걸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파트 1층 현관도 못 나가게 하던 방역정책이 바뀌어 1층 현관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봤자 아파트 안에 있는 거지만, 아파트 단지 안이라도 걷을 수 있게 되었다.  


 서영이 사는 아파트는 대단지이다. 아파트 동수가 30동이 넘는다고 했다. 출입문이 3군데 있는데 지금 봉쇄되어 있기는 동일하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아파트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외관은 깨끗했다. 봄인데, 바람은 살랑살랑 부는 데, 우리는 갇혀있다. 중국에서 하루 이틀 산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의 1/4을 보낸 곳인데, 중국이 나를 가둘 줄 몰랐다.


 서영과 같이 아파트 안에 있는 핵산검사소에서 검사받고 왔다.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회사 앱에 코로나 검사 결과를 올려야 한다. 비행은 언제 배정될지 모르지고,  나갈 수 있다 해도 이미 내 삶 안으로 들어온 서영도 신경 쓰인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돌면 1Km 정도 된다. 운동으로 걷기에도 좋은 거리이다. 아파트 그림자가 길어진다. 해가 지려나 보다. 답답하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습관처럼 냉장고 안을 스캔했다. 빨리 상할 것 같은 야채부터 챙겨 샐러드를 만들고 무침도 만든다. 아직 쌀이 남았다. 남은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지금 쌀 한 알 하나도 아깝다. 대한민국, 국민총소득 세계 10위 국민이 쌀 한알이라도 세 봤을 리가 있을까.. 어렸을 때, 집안일을 봐주던 관사병이 따로 있었다. 갓 지은 밥과 여러 반찬이 차려진 밥상에서 밥을 먹었다. 깨작거리며 먹으면  불 같은 호령이 떨어져 늘 집중해 먹어야 했지만 늘 풍성한 밥을 먹었다.


 서영은 회사 일을 하느라고 식탁 위에서 노트북과 휴대폰 사이에서 왔다 갔다 바빴다. 둘 다 최소한만 먹는다. 내가 한 끼에 섭취해야 하는 열량은 최소 600~1,000kcal는 섭취해야 하는데, 지금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다. 둘 다 알아서 먹는 양을 조절하고 있다. 서영이 설거지를 했고 나는 이제 익숙해진 작은 방에서 근력운동을 했다. 끝도 없는 격리시설 생활을 반복하며 방 안에서 운동하는 방법과 강도, 운동도구를 활용해 홈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웬만한 홈트 유튜버보다 더 잘한다.
 서영도 설거지를 마치고 집안 정리를 간단히 하고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작은 방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문화생활(?) 중 하나이다. 자기 전, 좀 답답했다. 아파트 현관을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자기 전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싶었다.

 

 서영에게 나가자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바로 일어선다. 서영과 나는 아파트 안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다들 지루했나 보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본격적으로 레깅스를 입고 달리기 하는 사람도 있다.


 봄, 제주도보다 남쪽에 있는 상하이에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달은 밝았고 여기저기 꽃잎이 날리는 봄밤이었다.


 쌀도 야채도 다 떨어졌다. 평소 먹는 것에 별 관심 없던 서영의 냉장고는 냉랭한 얼굴로 나를 대한다. 서영이나 나나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고 산책하듯 핵산검사소에 가서 검사받고 아파트를 2~3바퀴 정도 산책하고 집으로 왔다. 서영이는 식탁에서 회사 일을 했고 나는 작은 방에서 회사앱에 들어가 일정 살피고 동료 기장들과 챗을 주고받는다.
 나보다 먹을 게 더 일찍 떨어진 토미는 집에 토마토만 남았다고 자기를 토마토 토미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지금 친구 집에 와 있는데 집에 콩만 남았다고 빈잭 Bean Jack(잭은 내 영어이름이다)이라고 불러 달라고 농담했다. 진짜 집에 콩만 남았다.

 서영도 혼자 뭐가 구해보려고 노트북과 휴대폰 사이를 혼자 이어달리기했다. 오늘 점심은 콩을 갈아서 콩전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서영이가 어디 갔다 오는 소리가 났다. 하긴 갔다 와 봤자 아파트 안이지, 서연이가 햄과 만두를 가지고 왔다. 어디서 났을까? 의아해하는 내 눈에 특유의 친절한 눈웃음을 지으면 말했다.


저희 집은 비데 있잖아요. 화장실 휴지가 그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


 화장실 휴지 5개 주고 햄과 만두를 교환해 왔다고 했다. 그 사이, 아파트 안에 같이 사는 한국인들끼리 단체방을 만들었다고 했다. 서영은 고기종류를 안 먹었다. 냉장고에는 고기 부스러기도 없었다. 나를 위해 물물교환으로 인스턴트식품이지만 햄과 고기만두를 구해온 것이다. 가슴 안에 따뜻한 물이 흐르는 것 같다.

 군만두를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먹는 인공 조미료와 향료 냄새가 싫지 않다는 것에 놀랜다. 사람이 이렇게 상황에 따라 변한다. 군만두를 하려는데 식용유가 달랑달랑하다. 식료품 여유분 하나 없는 서영이 라이프 스타일에 여분 기름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다. 나도 원래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인 것 같다. 햄을 먼저 굽고 그 기름으로 만두를 구웠다. 예전 같으면 싹싹 닦아내 버렸을 기름에 만두를 굽다니...


 나를 위한 군만두와 햄을 굽고 서영을 위해 식용유로 콩을 갈아 전을 부쳤다. 남은 야채 다 썰어 넣으니 색은 예쁘지만 맛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콩전을 만들었다. 봉쇄 후, 처음으로 우리는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

비록 인스턴트식품이라도.. 서영이  맥주 한잔 곁들이면 맛있겠다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그러게

지금 맥주가 어디 있을까

당장 먹고살 음식도 없는데..


 오늘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해가 약간 길어졌다. 저녁에 핵산 검사하고 산책하기로 했다. 핵산검사 줄에 서있으면 내가 있는 곳이 중국이라는 곳을 알 수 있다. 서영과 단 둘이 있는 70 ㎡ 아파트 안에 있으면 별나라에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지구를 떠나 우주에 와 있는 듯했다. 언젠가 돌아갈 것 같은데 지구와 별나라 사이에 당기는 장력이 없어 떠돌고 있는 것 같다.


 서영이과 나의 공통점은 둘 다 잘 걷는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 베이징 산행 동호회에서 만났으니까..

업무 특성상, 연예인만큼 몸관리해야 한다. 연예인은 계약서 쓰고 통장에 입금 들어오면 몸관리 시작하지만 기장은 6개월마다 있는 메디컬체크 때문에 항상 몸관리해야 한다. 나보다 먼저 중국으로 이직한 선배기장 소개로 등산모임에 나갔다. 스케줄 때문에 한 달에 한두 번  나가기 힘들지만 산으로 둘러 쌓인 베이징에서 걸을 기회가 많이 있었다.


 아파트에는 과속방지턱과 고압전류선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걸어 다니는 데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빠르게 걷다가 조금 뛰어보기로 했다. 서영과 내가 동일한 속도로 뛸 수 없으니 각자 속도대로 뛰기로 했다. 내가 두 바퀴 뛸 동안 서영은 한 바퀴 정도 뛸 거고 그렇게 속도 맞춘 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래간만에 뛰니 숨차지만 답답한 느낌이 사라지고 홀가분한 느낌이다. 이륙할 때 조종간을 당겨 고도를 높여 하늘로 올라갈 때 느낌이다.


 서영이가 반 바퀴쯤 돌았을 위치다. 서영이 없다. 그새 힘들어 달리기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갔을까?

 힘들면 걸으면 되는데… 답답한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다. 속도를 내어 빠르게 달리며 서영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시작시점으로 지나 50m쯤 갔을까 아파트 화단에 앉아있는 서영을 찾았다. 안도감과 반가움을 느끼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다. 발목을 휘청했다고 한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활동 못 한지 열흘이 다 되어간다. 괜히 뛰자고 했나 하는 생각에 미안해진다.

 괜찮냐고 물었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대답할 거다. 손을 내밀었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허리를 감으라고 해 안다시피 일으켜 걸었다. 발목 불안정증이 있어 발목을 빨리 움직여야 하는 운동을 못한다고 했다. 뛰다가 과속방지턱 경사에 발목이 휘청하며 넘어진 것이다.

 서영도 살보다 뼈가 먼저 잡힌다. 이 집에 온 첫날, 뒤에서 안은 내 손을 푸느라 처음 손잡았고 오늘이 두 번째이다. 스무 살 첫사랑도 아닌데 몇 번째 손을 잡는 건지 세고 있다. 우리 둘 다 먹는 것도 신통치 않는데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하며 서로 웃었다. 간신히 집에 들어갔다. 습관성 발목인대염이 있던 서영은 압박붕대를 가지고 있다. 능숙하게 붕대를 감는 나를 보며 어떻게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나 기장인데..

맞다 기장이죠.



 갇혀있다 보니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인 줄 서로 잊었다. 승무원들은 응급처치교육을 받는다.

비상약 상자를 열어보니 소염진통제가 없다. 타이레놀만 있다. 소염진통제 먹으면 좋지만 타이레놀이라도 먹는 게 낫겠지. 지금 통증과 병세에 맞춰 약을 골라 먹을 상황이 아니다. 수면제 스틸녹스가 있는 게 특이했다.

 집안일 내가 할 테니 누워 쉬라고 했다. 아픈가 보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수건에 싸 냉찜질을 해주었다.


 냉장고에서 먹을 것은 없는데 얼음은 있네요.


그래, 얼음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작은 방에서 제랄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을 가지고 왔다. 서영인 지금까지 2번 읽었지만 봉쇄 때문에 3 번째 읽게 되었다며 <총, 균, 쇠>를 읽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읽기 시작하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다는 책을 읽고 있다. 나도 평소라면 표지도 안 쳐다봤을 책, <대변동>을 읽기 시작했다. 봉쇄기간이 두 달 갈 거라는 것을  그때도 몰랐다. 두 달이면 대학교에서 어떤 전공과목이든 한 과목은 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데 의미 없게 보내게 될 줄을 몰랐다. 서영은 방바닥에서 앉아 책 읽는 내게 불편하니 작은 방 가서 편하게 읽으라고 했다.


아프잖아요. 원래 발목 잘 삐어요.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서영도 나도 벽돌책 하나씩 붙잡고 있다. 아파트 밖으로 외환 고속도로가 지나가 평소에는 시끄럽다고 했는데 지금 도로에 지나가는 차량 하나도 없다. 고요함이 피로와 졸음을 데리고 왔을까..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자다 보니 옆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서영이 침대에서 내려와 옆에서 같이 자고 있다. 바닥에서 자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럼 기장님은 왜 바닥에서 자냐고 한다. 작은 방으로 가려고 했다. 서영이 자기 침대에서 자라고 한다.


 우리 둘 다 지금 상황에 지치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 상하이 밖이 봉쇄된 것처럼 우리 의식 밖에서 봉쇄되었다. 서영은 압박붕대한 왼쪽 발이 불편하다고 했다. 압박붕대로 발목을 고정해 놔야 한다는 것은 우리 둘 다 아는 사실인데도 서영은 칭얼거렸다. 잠시나마, 이 상황에서 아기 짓이라도 하고 싶었을까, 한 살이라도 나이 많은 내가 다독여야 하는 어른이었다.


 불편하더라고 붕대를 감고 자자고 했다.

서영 어깨를 가볍게 톡톡 다독이는 내 손을 서영이 잡았다. 또 손을 끌어내리려나 보다.. 했는데

서영은 내 손바닥 안에 자기 손을 넣어 겹치고 잔다. 내 손안에 있는 서영 손에 가슴은 밤새 뛰었다. 밤은 지나갔고 우리는 설친 듯 잔 듯 그렇게 봉쇄 열흘째를 보냈다.


봉쇄 속에서도 주말이다. 조용해진 서영이 노트북과 휴대폰이 오늘이 주말임을 알려줬다.

비슷한 시간에 같이 눈을 떴다.


깼어요?


서영이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눈은 떴지만 서영이는 좀 누워있고 싶어 했다. 다리도 아픈데


누워서 쉬어요. 내가 커피 내릴게


서영이의 삔 발목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순간 서영이 내 손을 잡았다.


조금만 더 같이 누워있어요.


아침이라도 일어날 필요도, 밤이라고 자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 없다. 24시간 우리는 70㎡ 네모난 콘크리트 시멘트 벽 안에 있다. 서영 휴대폰이 울린다. 서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끈질기게 울어 댄다. 우리는 기운이 없는데 휴대폰은 기운도 좋다. 주민위에서 구호품을 나눠준다고 이따 받으러 내려오라고 단체방에 공지가 떴다고 한다. 서영 휴대폰 알림음이 탁구공 서브처럼 통통 튕긴다. 뭔가 변화가 있긴 하나보다.


 커피 내리고 어제 서영이 구운 빵을 토스트기에 데웠다. 집안에 밀가루 하고 이런저런 가루라는 가루는 싹 긁어모아 어제 식빵도 아닌 빵을 하나 구웠다. 발효가 잘 되었네 마네 이런 것은 지금 사치다. 빵 한 조각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올리브유 약간 덜고 발사믹 식초 한 방울 떨구었다. 이 집에 유일한 기름이 올리브유인데 거의 바닥이 보인다. 아껴 아껴 먹어야 한다. 커피와 거친 빵 한 조각으로 식사했다. 자가진단키트로 코로나 검사해 매일 위챗단체방에 올려야 한다. 사실 같은 사진을 계속 올리면 될 것 같지만 각 진단키트마다 큐알코드가 붙어있다. 중국은 그렇게 설렁설렁하지 않았다. 제로코로나 정책 하나만은 꼼꼼하고 치밀하다. 우리는 핵산검사 그물에 걸린 물고기 같았다.


 구호품을 받으러 내려오라고 인터폰으로 연락이 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은 동네잔치에 가는 들떠 있는 하객 같다. 30알씩 들어있는 계란 한 판을 보니 반갑다. 둘이 먹을 수 있는 공동 식자재가 생겼다. 동 호수를 확인하고 서명 후, 구호품 비닐봉지 하나와 계란 한 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에 처음 왔을 때, 서영이 예전 대약진운동  때, 마을마다 인민공사를 세우고 공동취식을 했다고 말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가온다. 비닐봉지 안에 버섯 한 봉지, 감자 3알, 무 한 개, 이름을 할 수 없는 중국야채 두 무더기, 양파, 생 돼지고기 한 덩이와 쌀 500g이 들어있었다. 식탁 위에 구호품을 펼쳐 놓고  머리를 맞대고 구호품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이야기했다. 돼지고기는 온전히 내 몫이다. 나만의 먹을 게 생겨 미안했다.


괜찮아요. 저 아직은 고기 먹을 정도로 배 고프지 않아요.


서영은 미리 내 마음속 미안함의 무게를 덜어낸다. 버섯, 감자, 무는 알겠는데 야채 두 무더기가 있다. 우리가 아는 야채가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푸른 야채라니 얼마나 고마운 지 안다. 아는 야채부터 해 먹고 나머지 야채는 검색해 요리하기로 했다. 갑자기 주방에서 할 일이 늘었다. 지금까지 먹은 음식은 한 종류 간신히 만들어, 둘이 나눠 먹었는데 지금은 세 종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24시간 집 안에 갇혀 있는데 바쁘다고 하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 못 할 것이다. 감자 볶으려다 기름 아껴야 해 감자는 조림으로 버섯은 데쳐 무쳤다. 그 흔한 MSG도 없다.  라면 수프 한 봉지도 없는 서영의 주방이다.


 ‘소금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간장과 소금으로 야채를 무쳤다. 파, 마늘 이런 양념은 사치이다. 돼지고기를 삶기로 했다. 생고기라 비린내가 났다. 서영 집에 술 한 방울도 없다. 서영은 아파트 안 한국인 단체방에 술을 구하는 글을 올렸고 다른 동에 사는 한국 사람에게 팩 소주 하나 받기로 했다. 뭔가 답례로 줘야 할 선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헬싱키 비행 갔을 때, 사온 남자 클렌징폼이 하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있고 여분으로 하나 더 있어 갖다 주라고 했다. 혼자 사는 여자가 남자 클렌징폼을 들고 물물교환을 하러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안아주고 싶다.


 서연이 팩 소주 두 개와 새우깡까지 받아 들고 왔다. 어린 심청이 동냥을 다녀온 기분이다.  클렌징폼을 주니 미안해하며 팩소주 하나로 부족하다고 소주 한팩에 새우깡까지 줬다고 한다. 헬싱키에서 5유로 주고 산 클렌징폼 가치가 팩소주 2팩과 새우깡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팩소주를 조심스럽게 따 반 정도 붓고 집안에 생강 썰어 얼렸던 것이 있어 같이 넣고 삶았다. 서영이 선물로 받았다는 다비도프 인스턴트커피도 같이 넣었다. 서영이 목이 안 좋아 평소에 생강을 썰어 얼려 보관했다 물에 넣어 마신다고 했다.


 봉쇄 열흘 만에 마음에 들던 안 들던 외부에서 식료품이 공급되었다.

차와 소금만 마실 상황에서 뭔가 씹고 삼킬 수  있는 음식이 생긴 것 반갑지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봉쇄 상황은 반갑지 않다. 언론마다  먹을 게 없다는 상하이 봉쇄 상황 보도가 여기저기 나오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 걱정은 늘어갔다.

 친구 기장 집에서 잘 지내고 있고 워낙 먹을 것 좋아하던 친구라 집에 냉동식품하고 인스턴트식품 가득가득 쟁여놓고 살아 둘이 먹고 지내는 데 아무 걱정이 없다며 가족을 안심시켰다.


 현실은 반대다. 워낙 먹는 것에 관심 없던 서영이라 냉장고는 비어있는 면적이 더 많았고 라면, 캔, 과자 이런 인스턴트식품 하나 없는 미니멀라이프다. 상하이를 봉쇄하고 물류마저 막아 시민들이 배달도 식료품조달이나 생필품마저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전 세계가 알지만 비이성적 판단으로 상하이시 2,500만 명을 가둬서라도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는 무지몽매한 어리석은 결정과 폭력에 대해 전 세계가 입 다물고 있다.


 나는 갇혀 있지만 지구 자전 작용은 갇히지 않았다. 지구는 돌고 돌아 봄을 지나 여름 위치로 옮겨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은 모두 긴팔, 긴바지였다. 시설 격리 14일 하느라 여분 옷이 있었지, 내 집에서 바로 왔다면 그 옷도 없을 뻔했다. 상하이 날씨에 중간은 없다

 어제까지 파카 입다 오늘 반팔 입는 게 상하이다. 반팔 입는 날씨가 어색하고 불편했나 보다. 혼자서 옷장 속 옷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냥 편하게 입고 있으라 했다. 그나저나 정말 내가 입을 옷이 없다. 서영과 같이 있는데 속옷만 입고 있을 수 없는데 긴팔 긴바지가 안 그래도 답답한 상하이 봉쇄에   더위라는 답답함을 더해준다.


 자격 유지에 필요한 필수 비행 횟수와 시간을 채워하는 기간은  상하이 봉쇄와 상관없이 다가오고 있다.

이 상태면 이번 달 내 급여는 기본급 말고 없다. 쓰는 돈도 없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돈은 있다. 답답한 봉쇄 생활에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허기만 때우며 있는 더부살이에  서영도 내가 보호해야 하는 가족처럼 내 옆에 있다.  서로 가족이 있지만 봉쇄된 공간에 서영과 나는 단둘이 있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서영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머슴도 아니고 기생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情妇도 아니고 백기사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이 집에서 있고, 나가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내 집 상황은 나도 모르고 있다. 동료 기장들과의 단체방은 직장 일만 아니면 보고 싶지 않다. 6개월마다 해야 하는 심(시뮬레이터) 훈련과 최소 비행시간, 갑자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비행 스케줄을 챙겨야 했다.


 한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과의 영상통화는 숙제였다. 나도 다 던져버리고 싶다. 내 짜증과 고민은 이 아파트 밖을 벗어날 수도, 같이 있는 서영에게 전가할 수도 없다. 서영도 선의로 내 갑작스러운 몇 시간만 있겠다는 부탁을 받아주다 지금 동거인도, 애인도, 여자 친구도, 정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으로 나와 같이 자고 먹고 있다. 우리 둘이 의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로 베이징에서 스쳐 지나갔을 때 느낀 막연한 호감이 지금 우리를 이 공간에 있게 했다.


 서영 한국 본사에서 보낸 택배상자가 왔다. 계란, 야채, 손질된 고기(생닭이나 가죽과 지방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생고기 덩어리가 아니다), 쌀, 밀가루, 식용유, 파, 마늘, 굴소스 그동안 구할 수 없던 신선식품과 양념이 아파트 문 앞에 놓였다. 서영은 원가 1,000위안 정도 인 식품을 사서 보내는 데 5,000위안 정도 비용 들었을 거라고  세상에서 제일 비싼 식품이라고 웃으면 말했다. 이 정도는 갇혀 있는 우리가 받아도 되는 위로품이라 했다.


 한국에 본사가 있다는 데 이럴 때 확실히 좋다. 12월도 아닌데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놓고 간 것 같다. 갑자기 냉장고 저장 공간이 비좁아졌고 식탁에 놓을 수 있는 음식 수가 늘어 우리 둘 다 낯설었다. 일주일마다 구호품 나오고 지금 보내준 물건이면 한 달은 살 수 있다. 먹고사는 기본 문제는 해결될 것 같은데 갇힌 채  한 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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