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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23. 2024

1부 5편-이별

 비행기는 서 있으면 돈을 먹는다.

돈 먹는 하마는 귀엽기라도 하지 돈 먹는 비행기는 그냥 고철덩어리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행기를 세워 두며 내게 월급을 줄리가 없다. 회사 앱에 온라인으로 교육과 시험은 계속되고 있었다. 기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근력 운동도 짬짬이 했다. 서영 발목도 이제 좋아져 같이 산책도 하지만 뛰거나 발목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을 못하게 했다.


 봉쇄 상황이 이제 루틴이 되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해 앱에 올리고 저녁에 아파트 안 검사소에 가서 핵산검사를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구호품인지 변명품인지 모르는 식품과 생필품이 왔다. 굶지는 않지만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구호품을 받기 전까지는 뭐든지 먹을 수 있다는 강렬했던 의지는 일주일마다 받다 보니 먹지 않는 중국 야채처럼 흐늘흐늘해지고 있다.   

 베이징에서 서영 앞으로 택배가 왔다. 이 상황에서 택배가 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맥주 한 상자가 왔다. 베이징에 있는 서영 지인이 보내 준 영치품(?)이다. 중국에서 관시关系로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없는 것보다 많다. 맥주보다 배송비가 몇 배는 비쌌을 것이다. 봉쇄 이후로 처음으로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서영은 몇 병들고나가 그동안 물물교환하면 도움을 주고받았던 한국인들에게 나눠주고 왔다. 구호품으로 나온 감자를 중국 식용유에 튀겨 같이 맥주를 마셨다.


 5월이라 해가 길어졌다. 아직 해 질려면 멀었지만 우리는 낮맥을 하기로 했다. 봉쇄하면서 낮에 맥주 마실 수 있어 낮맥이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서영이 알려줬다. 힌 달 만에 알코올이 식도를 통해 위에 들어간다. 전신에 짜릿하게 퍼진다. 서영도 맥주가 생겨 기분이 좋은가 보다. 봉쇄 후, 처음으로 마시는 맥주에 기뻐했다. 맥주 2병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봉쇄 전에는 몰랐다. 감자튀김과 맥주를 마시면 노트북으로 일하던 서영이 졸리다고 했다.


  아무도 생활 규율을 정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각자 방은 알아서 청소했고 주방은 내가 정리했고 거실과 화장실은 서영이 청소했다. 낮에 자면 이 지루한 봉쇄된 밤이 얼마나 더 길어질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서영은 졸리다고 방에 들어갔다. 설거지와 정리를 마친 나도 자연스럽게 서영 옆에 누웠다. 이제 서영방 침대에서 같이 잤다. 작은 방에 깔려 있는 이불은 매트가 아니라 바닥에 등이 배겼다. 서영 발목 다친 것으로 기회로 우리는 같이 자게 되었지만 손만 잡고 잤다. 서영은 내 손을 잡고 자는 것을 좋아했다. 내 손이 따뜻하고 폭신폭신하다고 좋아했다. 어떨 때는 서영은 내 엄지 손가락만 꼭 잡고 잘 때도 있다. 서영에게 팔베개를 해줬다. 가만히 받아들인다. 옆에서 나도 같이 잠들었다. 5월, 상하이는 봉쇄되어 있지만 태양은 봉쇄되지 않고 돌고 있다.  어스프레 한 저녁까지 살짝 선잠을 잤다. 쿵, 쾅하는 폭발음에 우리는 둘 다 일어났다.


무슨 일일까요.


이럴 때는 서영이 침착하고 재빠르다.

휴대폰을 보더니 신호가 없다고 했다. 집안에  들어오면 통신사 데이터가 안 잡혀 와이파이가 없으면 휴대폰이 안된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더니 정전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도 멈추었다. 전기가 없으면 정수기도 와이파이도 사용할 수 없다. 그나마 서영이 집에 정수기가 있어 우리는 물 걱정이라도 안 하고 살 수 있었는데 정수기 모터가 작동을 멈추었다.


 어둠은 빠르게 집안을 검게 칠해 나갔다. 서영 집은 14층이다. 제일 꼭대기 층이다. 상황 파악을 위해 걸어 1층까지 가기로 했다. 휴대폰 전등을 켜고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계속 정전이라면 휴대폰 배터리도 오늘 밤을 못 넘길 것이다. 1층에 가니 다른 주민들도 나와 웅성거린다. 아파트 안 전기 공급 장치가 고장이 나 폭발했다고 했다. 언제 고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주민들의 웅성거림만 있다. 주민위  사무소까지  걸어서 갔다 오기로 했다. 빛이 없어 감각과 휴대폰 손전등에 의지해 걸어갔다. 혹시 몰라 한 사람만 배터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주민위 관리사무소도 정전인 건 마찬가지이다. 옆 아파트도 불빛이 없는 것을 보니 우리 아파트만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보다. 일단 들어가라는 안내가 전부였다. 아파트 주민위가 쩐镇정부와 의논해 외부에서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다 가둬놨는데 어디서 수리할 사람을 찾겠어요.


 서영이 차갑게 말했다. 정전이라는 새로운 악재가 우리 앞에 놓였다. 돌아가는 길은 그나마 왔던 길이라 쉽게 갔다. 아파트 1층에서 14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비상계단을 통해 벽을 짚고 같이 올라간다. 계단은 지저분했고 각종 먼지와 쓰다 남은 건자재들도 있어 올라가기 힘들다. 운동삼아 피트니스에서  천국의 계단 오르기도 한다지만 지금 이 상황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형벌이다.

 집 안에 들어가자 땀범벅, 먼지 범벅이다. 서영이 집안에 아로마 향초가 있다고 했다.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작은 방 옷장 안에 선물 받았던 아로마 향초를 찾아냈다. 조말론 향초였다. 초를 켜기 위해 라이터가 필요했다. 집에 라이터가 있을 리가 없다. 가스레인지 불로 향초를 켰다. 가스레인지 점화버튼에서 풍겼던 불쾌한 가스 냄새는 향초에 불을 붙이자 풍부한 아로마향에 사라졌다. 정수기가 작동을 하지 않아 집안에 마실 물이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회사에 연락을 해야 했다. 다시 아파트 1층까지 내려가 밖으로 나가야 신호를 잡을 수 있다. 인공위성 띄우는 나라에서 집안에 셀룰러데이터가 안 잡히는 모순도 공존한다. 나갔다 오겠다 하니 서영이 불안해했다. 혼자 컴컴한 공간에 있어야 했다. 같이 나가면 다시 14층을 걸어 내려갔다 올라와야 한다. 발목도 조심해야 하니 집안에 있으라고 혼자 나갔다 오겠다 했다. 서영은 답을 하지 않았다. 답이 없다는 것은 불만이다. 서영은 답을 하지 않는 것을 불만을 나타냈다.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던 둘이 70㎡ 안에 24시간 같이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둘 다 최대한 참고 배려했다.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니까…


 아파트 밖을 나가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로 가족과 회사에 연락했다. 아파트에 전기가 끊겨 당분간 연락할 수 없다고.. 전기가 들어오면 다시 연락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회사에는 2~3일간은 비행이 생겨도 배정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비행하기 싫었다. 아파트 안에는 고요한 어둠과 불안만이 있다. 어떻게 물 좀 구해봐야 하는데.. 이 아파트 안에서 내가 구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게 없다. 수돗물을 받아 끊여 마셔야 할 것 같다. 정수기가 있어 생수구입에 신경을 안 쓴 게 아쉽다.


 다시 아파트 비상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지프스가 생각났다.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메고 오르고 다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메고 올라야 하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스,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 중 하나가 시간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는 거라고 했다. 나는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메고 오르는 시지프스처럼 계단을 올랐다. 14층에 도착해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햇볕만이 시간을 알려주었다. 아침이다

우리 휴대폰은 충전을 못해 꺼졌다. 어차피 집안에 데이터도 없어 폰도 못 쓰지만 그나마 외부와 소통할 수 있었던 휴대폰마저 우리를 버렸다. 옆에 누워있는 서영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였다. 괜찮아요. 지금 어때요. 그런 상투적 말이 소용 있을까.. 침묵을 깬 것은 서영이었다.


일어나야죠.


낮에 햇볕 있을 때, 집안일을 좀 하고 나가보자고 했다. 정전되어 좋은 것은 핵산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연락할 방법은 집으로 찾아오는 것 말고는 없으니까...  전기가 없으니 전기포트도 사용할 수 없다. 냄비에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오늘은 생수를 좀 구해야 할 것 같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이 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구한 음식들인데 아껴 먹으면 양 조절하고 있었는데 야채는 시들고 냉동식품은 녹았다.


 구호품과 서영회사에서 보낸 물품으로 한때 풍족했던 냉장고는 다시 날씬해지고 있다. 서영도 나도 봉쇄 초기 위기 상황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야채 중 그나마 괜찮은 것을 골라 볶거나 무쳤다. 이제 파와 마늘도 구해져 그럭저럭 양념을 할 수 있다. 서영은 한국 사람들과 연락을 하기 위해 아파트 안 다른 동으로 갔다. 14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렸다가 다시 걸어와야 하는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인들과 연락은 서영 몫이었다. 얼른 정리하고 내려가 입구에서 서영을 기다릴 생각이다. 올라올 때, 힘드니까 같이 올라와주려고 했다. 지금 사랑보다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지만 어느새 우리 사이에 엷은 사랑이 일렁이고 있다. 아파트 현관 1층에서 이 방향, 저 방향 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가벼운 뜀뛰기 운동하며 서영을 기다렸다. 정전은 우리 뇌와 몸까지 멈추려고 했다. 여기서 퍼지거나 무기력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운동했다. 중국 주민들이 힐끔 본다.  시계를 보면서 두리번거려 본다. 멀리서 서영 같아 보이는 느낌에 얼른 뛰어갔다. 이제 희미한 모습으로도 서영을 느낄 수 있다. 서영이 생수통을 들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생수를 얻었나 보다. 1리터 생수 6병 묶음을 혼자 끙끙 들고 있다. 얼른 뛰어가 받았다. 이걸 어떻게 혼자 들고 올 생각을 했냐고 뭐라 했다.


집에 와서 나보고 가서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잖아요.


 나의 나무람에 서영은 말을 안 했다. 힘든 모습에 어깨를 토닥여주고 집에 올라가자고 했다. 업어줄까요 했더니 싫다고 한다. 한 손에 생수 6병 들고 한 손으로 서연 손을 꼭 잡고 14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힘은 들지만 오른손으로 잡은 서영 손을 더 꼭 잡았다. 집에 들어오니 우리 둘 다 지쳤다. 일단 씻고 좀 쉬자고 했다. 전기가 없으니 더운물도 나오지 않는다. 낮에 해 있을 때 얼른 씻자는 제안에 우리 둘 다 샤워하고 지쳐 침대에 누웠다. 이제 누우면 나는 자연스럽게  서영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봉쇄에 정전에 이제 우리 둘에게 더 이상 나빠질 것도 더 힘들어질 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서영에게 입을 맞추고 서영은 거부하지 않고 천천히 나를 받아들였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사실상 이혼 상태이지만 아직은 법적 남편이 있는 서영과 유부남인 내 상황은 봉쇄 끝나고, 우리가 버텨 살아남았을 때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정전 이틀 째이자 봉쇄 40 일째 저녁이다. 이제 달력에서 5월이라는 숫자를 볼 수 있다. 어두운 하늘은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14층 창밖, 하늘은 봉쇄되지 않았다. 매일 비행할 때마다 그렇게 날던 하늘을 이제 날지 못하고 봉쇄되어 있는 내가 답답했다.   


창 밖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나는 서영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고 서영이는 내 가슴에 팔을 올리고 누워있다. 주중에는 회사 일을 온라인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모든 것을 찾아서 하던 서영은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내 가슴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톡톡 만지고 있다. 나도 서영 어깨를 손으로 톡톡하는 가벼운 놀이 같은 애무를 즐기는 아침이 되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가 들어온다. 쓰나미처럼 전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며 꺼져 있던 전자제품들이 켜지고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정전도 예고가 없었지만 다시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갑자기다. 하긴 지금 41일째,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같이 다 갑자기였다. 예고는 없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휴대폰 충전부터 시작한다. 와이파이도 다시 들어와 우리를 봉쇄 밖 세상과 연결한다. 회사 앱부터 들어가 일정, 통지를 봐야 했다. 조금 있으면 시뮬레이터 훈련과 메디컬 체크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이제 연락 가능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냉장고 열어 상한 음식을 버리고 나니 다시 냉장고가 휑했다. 정수기 작동도 점검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갑자기 무인도에서 도시로 온 사람들처럼 분주했다.

 서영도 회사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하고 아파트 안 한국인 단체방 사람들하고 연락하느라 바빴다. 한국에 있는 남편(법률상 남편이라고 했다)과 통화하는 나지막한 서영 목소리에 묘한 질투가 꿈틀댄다. 아침부터 분주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저녁때이다. 뭐 좀 먹어야죠 하고 낮에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렸지만 서영이 기분이 안 좋았다. 이제 서영 주변 공기만 봐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서영이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주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정전이 끝나자 바로 낮부터 핵산검사가 다시 시작된다. 우리는 핵산검사를 받기 위해 산다. 낮에는 바빠 못 받은 핵산검사를 위해 산책 겸 나왔다. 혼자 아파트 안을 걸었다. 한 번도 혼자 걸어본 적 없는데, 걷다가 옆을 본다. 서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옆을 본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정전 끝나고 연락 가능하다고 메시지 보낸 후 온 전화다. 비행이 배정되었다고 한다. 헬싱키 가는 화물기를 띄워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안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회사에서 공문을 보내주고 아파트 앞으로 회사 차를 보내겠다고 했다. 회사 지정 숙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받고 24시간 후에 출발이라고 했다. 헬싱키 가서 48시간 스테이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때까지 상하이 봉쇄가 풀리든 안 풀리든 나는 회사 지정 숙소에서 시설격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회사 숙소로 가면 기름에 절은 중국식 도시락을 먹더라고 최소한 먹는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봉쇄 중이라 회사도 물자 조달이 쉽지 않으니 개인 세면도구, 수건 등 먹을 것도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 아파트에서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서영을 혼자 두고 나가야 한다.  회사에서 보내준 공문을 가지고 주민위에 가서 출문 허가증도 받아야 한다. 지금 기분도 안 좋은 서영에게 나 혼자 이 봉쇄 지옥에서 나간다고 해야 한다. 14층까지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엘리베이터도 고맙지 않았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지만 일부러 문을 똑똑 두들겼다.


 답이 없다. 다시 한번  똑똑했다. 아파트 복도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나도 놀랬다. 비밀번호로 열어야겠다. 이 집에 온 첫날, 서영은 내게 집 비번을 알려주었다. 404075 비번을 누르고 집 안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영은 집안 전등을 켜지 않고 있다. 휴대폰 손전등으로 서영을 찾았다. 서영 방 창가에 작은 베란다가 있다 중국 집들은 베란다 공간에 턱을 만들어 놓았다. 베란다 공간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작은 다락방 같은 느낌이라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은 공간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타일바닥이라 딱딱해 그냥 앉을 수 없는 바닥에 서영이 앉아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울고 있다.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의미 없다.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거니까.. 문을 닫고 나올까 생각했다. 봉쇄되고 한 달도  지났다. 들쭉날쭉한 내 비행 스케줄로  우리 부부가 같이 있을 시간은 별로 없었다. 어쩌다 집에 있게 되면 각자 쉬기 바빴고 남은 시간은 아들과 딸의 몫이었다. 가족 하고도 24시간 같이 있는 일이 드물었는데 서영과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같은 공간에 있었다. 이제 어색하지도 서먹하지도 않다.

 가끔 우리는 정말 부부처럼 가끔 잔소리도 한마디 하고 농담도 하며 24시간을 보냈다. 서로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둘 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거나 불만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집안일이건 외부 일이건.. 한 번도 힘들다 한적 없는 서영이 울고 있다. 타일바닥에 앉으면 불편하니 침대로 가서 앉으라고 했다. 손을 잡고 서영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은 서영이 눈물 그칠 때까지 옆에서 앉아 있었다. 휴지로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다. 휴지를 뽑으며  여분이 있을까 하는 걱정도 스쳐간다. 서영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휴지마저 얼마나 남아있을까 걱정해야 하는 봉쇄 상황이 서글프다. 생필품, 식품을 구한다는 것이 어렵거나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물건을 사용할 때  여분이 있는지 생각해야 했다. 눈물을 닦은 서영을 안아주었다.


 내 입에 서영 이마가 닿았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서영이 입술로 향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서영 얼굴에서 짠 눈물 맛이 느껴졌다. 내 입술로 서영입술을 열었다. 거부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밤, 서영과 나는 서로에게 서로를 열었다. 지금 제로코로나,철의 장막 안에 갇힌 우리에게 윤리는 장막 밖에 있었다.


서영에게 팔베개를 하고 같이 누워있는 밤,아파트 안은 고요했지만 내 머리 속은 고요하지 않았다. 휴대폰 소리에 서영 머리를 천천히 침대에 내려놓고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회사에서 온 전화다. 서영이 들을까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서 가서 조용히 받았다. 준비가 되었다고 물어본다. 방에 있던 서영이 거실로 나왔다.


비행 스케줄 나왔나요.

응. 그래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아이 같다.


가야죠. 주민위 같이 가요.


 서영이는 씩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 팔을 잡아 끈다.이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은 우리는 봉쇄 첫날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주민위까지 걸어갔다. 42일 동안 몇 번을 오고 갔을까, 이제 서영 혼자 이 길을 다녀야 한다. 기장 ID와 회사에서 보내준 공문을 보여준다. 뭐라 뭐라 서영이에게 이야기했고, 서영이 회사직원하고 아파트 주민위 사람하고 통화를 연결해 주라고 했다. 자기네 둘이 떠들더니 아파트에서 나갈 수 있다는 출문증을 써주었다. 아파트에서 나갈 수 있지만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알고 있다. 서영과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비행 마치고 왔던 짐을 챙기고 그동안 내 방처럼 사용하던 작은 방을 정리했다. 수건도 챙겨 오라고 했다고 말했더니 서영이 새 수건도 꺼내 준다. 아파트 정문에 가 출문증을 주니 쇠사슬과 철봉으로 막았던 아파트 정문을 열어준다.


 나는 나간다. 서영은 남는다.

아파트 앞 저 멀리, 회사 차를 타고 온 부기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후드를 눌러쓴 서영이 서있다. 보나 마나 후드 안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을 거다. 42일만에 서영 아파트에서 나왔다. 가슴 한 켠을 두고 나온 아련함과 쓰라림은 부기장과 회사 직원의 시끄러운 대화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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