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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Nov 11. 2024

뜻 밖의 평등,12306

중국 철도와 시스템의 변화 

12306, 기차표의 변화 

처음 해외 배낭여행을 온 곳이 중국이었다.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를 여행했다. 중국이 내 운명인 줄 그때 몰랐다. 이렇게 중국에서 15년 넘게 살게 될 줄 엄마도 구글도 네이버도 몰랐을 거다. 그때 알았으면 베이징에 집을 샀을 거다. 당시에는 여행비자로도 집을 살 수 있었고 여행자도 집 값의 60~80%까지 대출가능했다. 평당 이삼천 위안이면 집을 살 수 있었다. 지금 이런 이야기하면 호랑이가 담배 들고 쫓아올 거다. 2,000년까지 중국에 고속철이 없었다. 터콰이特快, 콰이처快车라고 속도로 구분하는 일반궤도열차가 있었다. 중국어 서툰 외국인에게 기차표를 살 때 속도는 터콰이特快, 콰이처快车로 침대는 루완워软卧, 잉워硬卧, 좌석은 루완쭤软座,잉쭤硬座로 구분해 표를 살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말이었다.  


당시 기차표를 사려면 외국인 전용 창구가 따로 있었다. 중국인들이 줄 서 있는 창구보다 외국인들만 따로 기차표를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기차표는 딱딱한 도화지 같은 표 한장과 별도 명세서가 있었다. A4 크기 가득, 기차 에어컨 비용, 청소비 등등 내용이 구구절절 적혀 있었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17시간 걸렸다. 점심 먹고 타서 저녁 먹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 아침 먹어도 기차 안이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침대차로 궤도 흔들림에 맞춰 같이 흔들흔들 2등 칸 침대에 누워 그동안 책에 나오던 창장长江,양쯔장扬子江을 건너 중국을 횡단해  상하이로 온다는 것에 흥분되었다. 중국이 나의 첫 번째 해외배낭여행이었다. 상하이에 내리자마자 해야 하는 일은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상하이 역에 외국인 창구가 별도로 있어 어렵지 않게 기차표를 샀다. 일반 창구에는 8월 아스팔트도 녹을 것 같은 더위 속, 기차표 사려고 줄 서 있던 중국인들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새치기를 막기 위해 웃통 벗은 맨 몸을 서로 딱 붙여 줄 서있다. 기차표를 산다는 것은 나 같은 여행자나 현지인들에게도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A4 종이만큼 긴 명세서와 딱딱한 도화지 같은 중국의 기차표는 2011년부터 전산으로 출력하는 부드러운 분홍색으로 바뀌었다. 외국인 전용 창구는 사라졌고 이제 중국인들과 함께 사이좋게 줄 서서 기차표를 사야 했다. 물 스며드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끼여들고, 담배 푹푹 피워 대는 사람들과 신경전, 육탄전을 벌이면서 기차표를 사는 것은 힘들었다. 출발지에서만 기차표 구입이 가능해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기차표를 사는 것이다. 기차표 구매여부에 여행 일정을 맞추면서 중국 배낭여행을 했다. 걸어서 지구 한 바퀴까지는 아니어도 중국 기차만으로도 지구 한 바퀴는 돌았을 것 같다.

전산화로 출발지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전체 일정에 맞는 기차표를 미리 사고 출발하는 계획성 있는 여행이 가능해졌다. 출발지가 아닌 곳의 티켓을 받기 위해 5위안의 수수료异地费가 있었지만 그 정도 비용은 미리 티켓을 받을 수 있다면 아깝지 않았다. 


2012년에 중국은 기차표 실명제가 실시되었다. 그동안 암표와 사재기로 명절이나 성수기에 기차표 사기가 어려웠다. 부당한 이득을 올리는 암표상과 여행사에게 날벼락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 봄비 같은 좋은 소식이었다. 초창기 실명제는 어설퍼 아무 이름이나 넣어도 표 구매가 가능했지만 중국을 띄엄띄엄 보면 안 된다. 빠른 속도로 오류를 수정하면서 이제 진짜 실명으로 기차표를 사야 한다.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명분은 암표와 사재기 근절이지만 그 뒤에 이동통제와 제한이라는 의도도 있다. 

2020년 6월 20일부터 중국에서 종이기차표는 사라졌다. 중국인들은 신분증, 외국인들은 여권으로 기차 탈 수 있게 되었다. 미리 가까운 역에 가서 종이기차표를 받아야 했던 번거로움과 기차표 분실이라는 리스크가 사라졌다. 경비청구를 위한 종이기차표는 기차역 창구에 가면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 전자 증빙이 가능해진다 한다. 


중국 기차표는 12306이라는 한국 코레일과 같은 앱에서 살 수 있다. 외국인들은 트립닷컴을 이용하거나 12306 실명 인증 후 직접 기차표를 구입할 수도 있고 표가 없더라도 대기 예약을 할 수 있다. 쯔푸바오나 위챗페이 같은 모바일 페이는 필수이지만 이제 중국발행 카드로도 한국 발행 카드로도 연동이 가능하다.


좋은 의도였던 아니었던, 중국 기차표 실명제는 나 같은 외국인에게 같은 기회를 주었다. 중국인들과  줄 서 힘들게 표를 사지 않아도 되고 암표상과 여행사의 사재기 때문에 구경도 못하던 기차표도 이제는 검색만 잘하면 구할 수 있고 표가 없을 경우에도 대기를 걸어 표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전 구간의 표를 사지 않아도 구간 구간 좌석표를 사는 게 가능해졌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같이 자리에 오는 표는 없어도 베이징에서 난징까지, 난징에서 같은 기차 안에서 좌석을 옮겨 상하이까지 오는 식으로 구간 구간 표를 사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져 더 편리해졌다.


12036 앱은 금요일 저녁 퇴근 후 기차역으로 가면서 출발지를 정하고 일요일에 돌아오는 기차표를 사고 떠나는 주말여행도 가능하게 했다. 한 때 두꺼운 도화지 같던 중국 기차표는 부드러운 명함 크기종이로 마그네틱 부착 종이티켓을 거쳐 휴대폰 속 QR코드로 줄어들다 이제 신분증,여권 스캔만으로 탈 수 있는 보이지 않은 표가 되었다. 

 


K-T-D-G 열차의 변화 


2008년도에 베이징-텐진 구간에 고속철(CRH China Railway High-speed)이 도입되었다. 베이징에서 천진까지 2시간 걸리던 것을 30분으로 줄이면서 텐진에서 베이징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천진은 베이징에서 당일로 놀러 갈 수 있는 친근한 동네가 되었다. 그때 산동성 취푸 山东省 曲阜에 살았다. 12시간 넘게 걸리는 지난济南- 베이징을 고속철을 타면 4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신기했다. 알라딘 요술램프에서 나온 지니가 베이징을 들어 지난 앞에 가져다 놓은 기분이었다. 지난 역에서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베이징 가는 하얀 고속철에 허시에和谐라는 글자가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시속 200Km만 넘어도 빠르다고 느끼던 동처动车보다 빠른 까오티에高铁푸싱复兴호가 2017년 3월 베이징-상하이를 시속 300Km 넘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동처의 D를 보면 깨끗하고 빠른 기차라는 생각 했는데 지금 12306 앱에서 D로 시작하는 기차보다 G로 시작하는 까오티에 표만 검색한다. 예전에는 K보다 T가 좋았고 D가 더 좋았는데 이제는 G 아니면 눈에 안 보인다. 


총길이 1,318km인 베이징 상하이 구간에 내년부터 CR 450이 도입된다고 한다. 시속 450km로 베이징-상하이를 2시간 30분대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30년 전에 17시간 걸려 하루 꼬박 덜컹덜컹 침대기차 타고 누워 왔던 길을 이제 2시간 30분 만에 편하게 앉아 갈 수 있다니 놀랍다. 


중국 열차의 서비스도 다양해졌다. 좌석에 붙어있는 큐알을 읽어 열차 내 식당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맥도날드나 KFC 패스트푸드를 주문해 중간 정차역에서 받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람과 화물만 타던 기차에 이제 자동차도 탄다. 베이징, 상하이에 사는 사람들이 서쪽인 청두, 우루무치, 쿤밍 같은 여행지까지 미리 자기차를 보내고 본인은 기차를 이용해 이동해, 미리 도착한 자기 차를 받아 서남부 지역 여행을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차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고 다양해졌다. 



뜻밖의 평등 


중국 철도의 확장은 1박 2일 걸리던 충칭,시안과  2박 3일 걸리던 우루무치까지 멀고도 멀던 서부지역 여행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올해 9월, 쓰촨 성 청두에서 구채구 황롱까지 철도가 개통했다. 구채구 유명세에 비해 철도 개통은 늦은 편이었다. 이제 우리는 청두에 가서 푸바오도 보고 구채구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성장통 없는 키크기는 없다. 중국 철도 확장은 동과 서, 남과 북의 빠른 이동과 교류, 물자 이동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어냈지만 실제 생활하는 도시에서 지나치게 먼 거리에 지어진 고속철역은 배후 도시 없이 벌판에 역만 덩그러니 있거나 유령역을 만들어냈다. 


쿤밍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국제철도 개통은 여행자들에게는 버킷리스트이다. 아직 타보지는 않았지만 내년에 타보고 싶다. 유령역도 만들었지만 중국 철도의 확장은 분명 중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이동할 수 있다는 공평한 기회를 만들었다. 중국에 여행자로 와 취푸,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 교민으로 15년째 사는 내게 중국 철도와 시스템의 놀라운 혁신은 외국인도 중국인들과 같이 똑같이 기차표를 사고 대기예약을 걸 수 있는 뜻밖의 평등을 내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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