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경수 May 24. 2023

글쓰기란 무엇인가

What is writing?

  어느덧 100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블로그에 쓴 글들을 보면 100번째 글은 진작에 썼다. 하지만 브런치에서 올리는 100번째 글은 이 글이 유일하다. 그동안 많은 글을 쓰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펼쳤다. 미학에 대한 글도 쓰고, 철학에 대한 글도 쓰고, 문학작품에 대한 글도 쓰고, 사회에 대한 글도 썼다. 그리고 가끔은 내 일기 같은 글도 썼다. 나는 글을 쓰는 목적이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서다. 무언가를 공부하고 글로 남기면 작문을 하는 과정에 내가 아는 내용들이 정리되고, 문자를 통해 사유가 재현된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잘 모르겠는 내용이 있으면 난 그 내용을 글로 쓴다. 그러면 글을 쓰기 위해서 공부가 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고가 구조화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글이 있다. 에세이, 소설, 시, 설명문, 일기, 기사 등 너무나도 많은 글이 있다. 다른 종류의 글들이 각자 다른 목적으로 쓰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그것은 그 글이 작가의 머릿속에만 맴돌던 기의(사유)가 문자라는 기표를 통해 현현되기 때문이다. 결국 글쓰기란 헤겔이 예술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정신의 현현인 것 같다. 아니 글쓰기가 예술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건 사실만 담지 않고 아주 약간이라도 작가의 감정과 주관이 담긴다. 그래서 글쓰기는 문자를 매개한 정신적 배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기능이 배설(purgation)과 정화(purification)이라고 말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고,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받은 대중은 자신의 영혼을 정화받는다. 우리는 일기를 쓰면서도 감정의 배설을 한다. 하루의 고단함, 기쁨, 우울함 등 우리는 일기장 앞에서 솔직해진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연필을 통해 문자로 남기면 어느 정도 해소되고, 감정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일기장을 보면 그때의 감정을 복기할 수 있다. 분명 종이에 글자 몇 개 있는 게 전부인데, 우리는 과거의 일기장을 보고서 그 이상의 것들을 복기하고, 감회를 느낀다. 역시 글쓰기란 형이상학적인 행위인가?


  글쓰기는 나의 목소리를 남기는 행위이다. 나의 발화는 공기의 떨림으로 인한 물리적인 현상인데, 이는 시간적인 현상이다. 때를 놓친다면 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침묵만이 공허하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글은 남아있다. 글은 내가 죽어도 남고,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어(死語)가 되어도 남는다. 게다가 요즘엔 글을 종이에만 쓰지 않고 인터넷에도 쓴다. 그래서 글쓰기란 진짜로 물리적 한계를 넘는 형이상학적 행위가 되었다. 인터넷이 된다면, 그 글이 지워지지 않았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그 글을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읽는 고전들은 결국 살아남은 목소리들이다. 2500년 전 누군가가 한 말이 아직도 들릴 수 없다. 하지만 플라톤은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 목소리를 남기려면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와 목소리를 남길 수 있다. 아 요즘엔 유튜브나 사진을 통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남길 수 있겠다. 하지만 난 이 글에서 글쓰기에 대해 논하니 그 부분은 나중에 다루겠다. 


  나는 글쓰기를 실존의 연장 혹은 작품으로 본다. 나의 감정을 글자에 담아서 그 감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글쓰기로 본다. 나의 감정 또한 나의 일부이기에 그 일부를 담은 종이는 또한 내 실존의 연장이라고도 생각한다. 내 사유와 내 감정 등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글쓰기다. 글쓰기는 기예가 될 수도 있고, 그저 하나의 파레시아스테스일 수도 있고, 그냥 문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글쓰기를 능동적으로 하고, 특정 시공간에서 하기 때문에 결국 특별한 순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랑이어도 좋다. 부정적 감정의 표현이라도 좋다. 결론이 없어도 좋다. 글을 쓰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글은 나의 거울이 되어 자기 객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동시에 내 작품이기도 한 내 글은 나에게 나르시시즘을 느끼게도 한다. 오늘도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는 것과 아직 쓰고 싶은 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네이버 블로그

작가의 이전글 의지에 의한 속박과 예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