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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Jun 26. 2023

우린 행복할 수 없다.

We can't be happy.

Egon schiele - Family(1918)

  에곤 쉴레는 결국 자신의 아이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서 그의 아내인 에디트가 임신 중에 사망했고, 그 후 며칠 뒤에 에곤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위의 그림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그려져 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자란 것으로 보아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의 쉴레 가족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린 가족은 그저 캔버스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대는 행복할 수 없다. 에곤 쉴레가 그린 가족처럼 20대는 행복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20대보다는 MZ세대라고 칭하는 게 맞겠다. 쉴레가 예술을 통해 자신이 소망하는 것들을 작품의 형태로 남기듯이 요즘 세대(이하 MZ)도 사진을 통해 자신이 소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쉴레의 회화와 MZ는 모두 희망하는 바를 남기지만 차이점을 갖는다. 쉴레의 회화는 그의 머릿속에만 맴돌던 영감을 붓을 통해 표현하여 자신이 희망하는 바를 캔버스에 남긴다. 따라서 쉴레는 캔버스만 있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그려서 그의 소망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MZ는 사진을 찍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좋은 호텔에서 호캉스를 하는 모습을 남기려면 호텔을 직접 가야 하고, 고급 외제차를 타는 자신을 소망한다면, 그 자동차를 타서 그 모습을 남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요즘엔 오마카세와 같은 고급 식당을 가는 것도 남기는 등 자신의 원하는 모습과 허영을 구분하지 못한 채 그것을 희망한다. 물론 한 번뿐인 결혼식을 강남에서 유명하고 비싼 곳에서 하고 싶을 수 있고, 연인과의 기념을 별이 많은 호텔에서 보내고 싶을 순 있다.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 행위를 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자기가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면서 돈이 안 모인다고 한탄을 한다. 한 달에 200만 원 벌어서 저축을 하나도 하지 않고 모조리 다 과시형 소비를 하면서 왜 자신은 한강이 보이는 고층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냐며 세상 탓을 한다. 


  필요하지도 않은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펜슬을 사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쇼핑을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치 자신이 돈이 남아돌아서 하나 산 것처럼 포장해서 인스타그램에 과시한다. 그리고 월급은 200~300인데 메종키츠네, 꼼데가르숑, 아미, 스톤아일랜드 같은 고가의 옷을 구매한다. 옷이 좋으면 뭐 하나 옷걸이가 구리고, 그 존재의 허영은 더 구린데. 그리고 기념일마다 풀빌라, 4성급 이상의 호텔을 턱턱 다니고, 해외도 자주 간다.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자신의 형편에 맞지 않는데 굳이 가야 할까. 그리고 주변에서 누가 좋은 차 하나 뽑으면 본인도 자극을 받는다. 그래서 슬슬 카푸어가 되어간다. 


  하여튼 인스타그램, 유튜브가 문제다. 자신의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는 편집적인 곳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골 빈 놈들도 문제지만, 사람들을 병들게 만드는 매체와 크리에이터도 문제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이 해외여행을 가거나, 비싼 차를 타거나 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는데, 그렇게 해서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그 순간은 행복할 수 있다. 포르쉐를 계약하고 매장을 나설 때의 설렘. 이륙하기 전에 벨트를 맬 때 느끼는 설렘. 그리고 누군가와 좋은 시간을 보낼 행복한 상상에서도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근데 포르쉐도 언젠간 고장 날 것이고, 일본여행만으로는 언젠가는 만족하지 못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포르쉐 다음에 벤틀리를 사고 싶을 것이고, 일본 말고 하와이에 가고 싶어질 것이다. 돈이 많다면 상관이 없다. 돈이 남아돌면 벤틀리도 사고 롤스로이스도 살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일본에 가고 내일은 하와이에 갈 수 있다. 근데 문제는 그럴 능력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그러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갈수록 더 커진 역치로 인해서 기존보다 큰 쾌락을 원하고, 그 쾌락은 평생 채울 수 없다. 따라서 MZ는 행복해기 어렵다. 이대로 간다면 행복이란 진짜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대체 누가 청년들을 허영에 빠지게 만들었는가. 왜 절약은 안 하면서 바라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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