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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Jul 01. 2023

어떻게 깨닫는가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도생은 돈오성불(顿悟成佛)이라는 개념을 설파했다. 돈오성불은 점오성불(漸悟成佛)에 대한 반동으로, 깨달음이란 둘로 나뉘지 않으며, 깨달음에는 단계는 없으므로, 깨달음은 갑작스러워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반대로 점오성불은 학습과 실천을 점차적으로 쌓아야만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갈고닦았다면, 현대인들은 무엇을 위해서 자신을 갈고닦을까?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이름 그대로 자본을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물질은 권력과 연결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물질을 누리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서 더 좋은 직장에 다니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행복인 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문대에 나와서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들을 성공한 부류로 취급하며, 그들을 동경한다. 즉, 현대인들은 깨달음이 아닌 성공과 행복을 얻기 위해 자신을 수양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하나의 공식이 생겼다. 강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대치동에 있는 유명한 학원을 다니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을 졸업해서, 전문직이 되거나, 대기업에 다니며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이 하나의 성공 공식이 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공식에 따르면, 본인이 열심히 한다면 사회가 말하는 성공 즉, 고액의 급여를 받는 사회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곧 행복일까? 사람들은 왜 돈을 버냐고 물어보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왜 복권에 당첨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큰돈으로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질문에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분명히 토대론적인 답변이 하나 나올 텐데, 그것은 아마 행복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행복을 위해서 고액의 연봉자가 되길 원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은 어떻게 해야 도달할 수 있을까? 공식이 정해져 있는 성공 방식은 점오불성과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 정말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은 정말 모두 행복할까? 나는 아닌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은 OECD 자살률 1위를 항상 놓치지 않는 불명예를 가진 국가인데,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명문대를 못 가고, 풍족한 환경이 아닌 그런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명문대를 졸업해서 부를 쌓은 ‘성공한’ 사회인도 자살을 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정말로 행복했다면 그들은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행복이 뭐길래 사람들은 그것을 찾지 못하고, 죽음을 택할까?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정의된다. 돈이 최고라 취급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소득자가 만족, 기쁨 그리고 흐뭇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행복이란 어떻게 도달하는 것일까? 돈이 최고의 가치인 사회에서 돈으로 행복을 얻지 못하는데, 대체 우리 인간은 어디서 어떻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행복이라는 개념에 도달하는 방법이 현대사회의 돈오성불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행복이라는 것에 누군가는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도달해서 그 감정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해지려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간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어디서 인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아서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언제 우리가 행복을 느낄지 우리 자신도 모른다. 성불이란 떡 벌어진 두 바위 사이를 뛰어넘는 것과 같이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도생은 말한다. 행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0% 정도 행복한 사람이 하루에 1%씩 자신의 행복도를 올린다면 100일 후에 그 사람은 100% 정도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은 확실하게 행복할까? 1개씩 100일을 모으면 100개가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행복도 그런 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는 공식이 정해져 있는 이 사회를 비판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그저 자신이 어디고 무슨 동 어디 아파트에 사는 몇 살 누구인지만 알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이 정해졌다는 듯이 우리에게 ‘점오’를 강요하고, 물질로 유혹하는 익명의 손길을 뿌리치고, 진정 자신을 알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돈오’하여야 진정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글은 작년에 동양철학사 과목의 과제로 제출했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서양철학전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양철학에 대한 글은 이곳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글은 다시 보니까 지금 봐도 잘 쓴 것 같아서 '서양철학자'라는 나 스스로의 콘셉트를 파기하고 과감하게 올려보려 한다. 어쩌면 스스로를 서양철학자라고 규정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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