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경수 Sep 23. 2023

후설에 대한

About Husserl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 1859~1938)

  현상학은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그 나타난 바를 가장 엄밀하게 포착해 의심 없는 최종적 인식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삼는 철학의 분과학문이다. 현상은 그것을 그려내고 말하는 주관 또는 관찰자에 의존적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며, 하나의 대상은 그것과 이런저런 관계 정립을 요구하는 의식과의 상관성 속에서만 비로소 대상으로 자리를 잡는다. 나의 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현상이며, 이것을 최종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엄밀한 학문적 인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후설 현상학의 출발점이다.

  후설의 현상학은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는 환원(reduktion), 판단 중지(epoché), 괄호 침(einklammerung) 등이 있다. 후설은 사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일상적 판단을 멈추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사물들의 우연적인 속성을 제거하고, 그 본질을 기술하고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후설의 주장이다.     

  후설은 환원을 형상적 환원과 선험적 환원의 두 단계로 구분했다. 형상적 환원은 경험적인 대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즉 사물에 대한 인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그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일종의 존재 확신과 확언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판단 중지’의 작업으로, 사물의 경험적인 현상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괄호 속에 넣어 보류한다. 그리고 변하는 요소와 변하지 않는 요소를 분석해 내고 정리해 기록하는 것이 바로 현상학적 의미의 ‘기술’이다.

  선험적 환원은 형상적 환원을 통해 얻어진 본질을 다시 의식 속에 내재화하는 단계다. 본질은 의식 속에서 마땅히 진리임을 알 수 있게 그 존재 근거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절차가 선험적 환원이다. 후설은 선험적 환원을 거쳐 닿은 의식 내재 영역을 ‘순수 의식’이라 불렀는데, 순수 의식의 근본적 특징은 지향성이라 했다. 즉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을 향한다는 뜻이다. 후설에 따르면 하나의 대상과 세계는 즉물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그저 주어지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의식의 상관자로서 등장하며 의식 활동에 의한 의미 형성체로서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세계는 우리 의식에 주어진 세계며 그것이 바로 우리 의식이 의미를 부여하는 세계다.     

  후설은 하나의 사물을, 하나의 존재자를 자연 과학의 입장과 태도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화되고 심화되어 그것이 사물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기준이 된 것을 비판했다. 후설은 이념화된 세계는 오히려 그것이 딛고 서 있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세계, 즉 생활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생활 세계란 과학적 반성 이전의 세계, 오히려 그런 반성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으로서의 세계, 과학 이전의, 술어 이전의, 논리 이전의 세계로서, 모든 과학 활동의 가장 근원적인 근거가 되는 영역이자 전제이며 배경이 되는 세계이다. 이런 생각 아래 후설은 객관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과학이 바로 거기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생활 세계를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참된 현상을 추구하는 현상학의 과제이자 임무라고 주장한다. 


  후설이 철학을 하던 당시 과학의 발달에 의해서 철학의 입지가 많이 흔들렸다. 따라서 철학은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고,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 왕관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위기를 겪던 철학을 위기로부터 탈출시키려 시도한 이가 바로 후설이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철학의 많은 분과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벗어나 그 자체로서 학문으로 존재하게 됨에 따라 철학은 그 당시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많은 분과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독립하고, 후설로부터 시작한 현상학과 프레게였나 누구였는지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데 암튼 그 철학자가 분석철학을 시작함으로써 기존과 다르게 철학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후설의 철학을 대략적으로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현상학이란 단어도 친해지기 어렵고, 무엇보다 그가 말하는 바에 울림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후설은 굉장히 중요한 철학자이다. 내가 좋아하는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은 후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뿐만 아니라 현대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 큰 영향을 준 철학자들을 묶어서 3H라고 하는데, 후설이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프랑스 실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설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나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명언과 대략적인 사유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내가 구조주의를 공부하고, 그들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처럼 실존주의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후설에 대해서 공부할 필요성을 자주 느낀다. 하지만 그의 사유는 도무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에 하이데거를 공부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전에 그의 스승인 후설을 먼저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무튼 나는 철학이라는 소금물을 마시기 시작한 순간부터 후설이라는 현상을 피할 수 없는 필연에 처해진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네이버 블로그

작가의 이전글 동일자의 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