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 l'anxiété
어른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당당하게 신분증을 내밀고 술과 담배를 구매할 수 있을 때? 아니면 학업을 마치고 경제적 활동을 할 때? 확실한 건 개인마다 어른이 되는 때가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는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시작하면서 어른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전에 겪은 시련으로, 또 누군가는 부모가 되어서야 비소로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대체 어떤 순간이 어린 존재를 어른으로 만들까? 꼭 어떤 순간을 겪어야만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였던 사람이 어른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누가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겠는가.
인간에게 불안은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이다.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미래는 불투명하며, 나에게는 인식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한 한계와 미지(unknown)가 현존재를 불안하게 만든다. 내일의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며, 우린 그저 확신과 예상만으로 세계에 자신을 내던진다. 흄의 말처럼 그럴 것이라는 확신일 뿐 내일은 해가 안뜰지도 모른다. 과거도 망각하는 인간에게 미래란 더욱이 미지의 영역이다. 나는 10년 뒤는커녕 1년 앞도 예측하지 못하며, 내일마저도 예측하지 못한다. 혹여나 계획을 가지고 실행을 하더라도 세상에는 그 계획을 방해할 수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세상 사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가 갑자기 지진으로 무너진다는 확증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확증 또한 없다. 평소에 식단과 운동을 병행해서 건강에 신경 썼어도 교통사고로 내일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으며, 메를로퐁티처럼 독서를 하던 와중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불안이란 어쩌면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언젠가 죽는다. 누군가는 투병 중에 불안을 겪으며 죽지만, 자다가 자연사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언젠가 어떻게든 죽는 건 확실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이라는 열린 가능성이 실존하는 현존재에게 불안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불안에서 벗어나는가? 그 방법은 죽음뿐이다.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본질이 "무(無)"인 공허한 인간에게 공허함을 느끼게 해주지 않을 방법은 그 무(Néant)를 감각하지 않는 죽음뿐이다. 인간의 "실체"는 영혼과 육체의 종합으로서의 정신이 아니고 실존이다(SZ, 164). 그리고 그 실존이 내가 죽지 않았음을 보증한다. 따라서 실존과 불안은 떼어놓을 수 없다.
정리하자면, 실존이 본질을 앞 써는 현존재에게 불안은 떼어놓을 수 없으며, 한평생 불안을 느끼는 현존재는 어린아이에서 언젠가 어른이 된다. 따라서 나는 현존재가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순간을 불안에서 찾아보려 한다.
아이와 어른에게 불안은 각기 다른 것이다. 아이에게 불안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기를 원하며, 그것을 표출한다.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주로 그러며, 그 불안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그것에 잠식되거나 남에게 온전히 의존하려고 한다. 물론 어른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표출하고 싶어 한다. 인간이기에 그리고 사회적 사람이기에 그러한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어른은 스스로 그 불안을 해결하려고 한다. 어른은 인생에서 불안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삶을 사는 이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게 어른이 깨우친 인생의 비극이자 순리이다. 따라서 어른은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잘 다루려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따라오는 불안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신이 할 일과 목표를 묵묵히 해낸다.
결국 불안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어른은 스스로 불안을 다스리며, 그 무거움을 버티며 살아간다. 불안한 세계 속에서도 위험을 감수하며 기투(entwurf)하고, 실패하더라도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불안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며, 그것에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불안에 대한 사유의 변화가 어른이 되는 전환점인 것으로 보인다.
불안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위험이 따르며, 위험이 없어도 불안으로 인해 실수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린 불안을 잘 다스려야 한다. 불안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를 직면하며, 이성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듯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불안을 인지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울지 않는다. 어른은 아이 앞에서 울지 않는다. 당신은 불안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불안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이며, 없앨 수 없으며, 없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역, 까치, 1998. (S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