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about Greek or Egypt in art
우리는 흔히 회화나 미술을 떠올릴 때 무언가를 화폭에 담는 행위보다는 옮기는 행위로 먼저 생각한다. 그림이라 하면 망막에 맺히는 상을 캔버스 위에 그대로 옮겨놓는 재현의 결과물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일까? 초상화나 정물화와 같은 구상화는 현상하는 대상과 비슷할수록 더욱 잘 그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보이는 것 혹은 아는 것을 화폭에서 재확인하는 그 순간에 인간이 예술을 통해서 유희를 즐기기 때문에 그런 걸까? 과거라면 그러한 이유가 구상화가 잘 팔리는 이유가 될 수 있겠는데, 우리는 인상주의와 카메라의 발명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에피소드를 겪은 존재이기에 더 이상 아름다움이란 예술이 추구해야만 하는 이데아가 아니게 되었으며, 보이는 것의 재현이라는 역할 또한 회화의 분야가 아니라 카메라에게로 넘어갔다. 그래서 현대의 예술은 추상적인 것과 아름답지 않고 추한 것까지 포용하게 되었으며, 그 경계는 무너졌다.
어느 시대나 항상 추구하는 진리가 있었다. 가령 중세에 신학은 모든 진리의 원천이었으며, 그 밖의 명제는 용납되지 않았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시대별 지역별 추구하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 있으며, 어느 담론의 장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그 아름다움과 예술의 정의 또한 달라진다. 뭐든지 고전이 중요하듯이 나는 이 글에서 두 가지 고전을 순서대로 보려고 한다. 이집트 예술을 먼저 논하고, 그다음으로 그리스 예술을 논하면서 그 시대와 지역에서 그 예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집트적인 것과 그리스적인 것만 이해하더라도 미술과 철학 혹은 미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집트의 미술을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도상은 아마 상형문자 혹은 피라미드의 벽화일 것이다. 위의 작품은 이집트의 정치적 상황과 철학적인 사유를 모두 담고 있는 그 시대의 엠블럼과도 같다. 먼저 이집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 회화와는 다르다. 보통 회화라 함은 기본적으로 원근법을 통해서 신체의 각도, 길이에 변화를 줌으로써 사람의 형상에 활력과 생동감을 주기 마련이고, 예술의 일종이기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활동이다. 정리하자면 회화란 보이는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는 자유로운 유희활동이다. 그런데 위의 벽화는 앞에서 언급한 두 특징을 찾기 힘들다. 자세는 어색하며, 자유로움보단 엄숙함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에 그려졌기 때문일까?
먼저 이집트는 자세와 각도, 위에 따른 신체 길이의 변화를 무시했다. 우린 그 답을 그들의 종교적 관념에서 찾을 수 있다. 피라미드와 미라를 만든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시선은 감각적이고 가변적인 동시에 우연적인 이 현세가 아니라 불변적이고 필연적이며, 획일적인 것을 추구했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같이 그들에게 현세란 불변의 내세보다 열등한 것이기에 현상보단 추상을 더 추구했다. 그래서 한 평면에 인간의 모든 것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집트의 인물화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기에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집트 회화에서 인물은 그저 하나의 기록이자 작품이 아니다. 그들은 현세로 다시 돌아올 그들의 왕인 파라오의 육체를 회화를 통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평면에 인간을 그릴 때 인간의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이집트 예술의 방향성 때문에 이집트 예술은 가변성과 우연성, 다양성을 피해서 시네를 늘 불변적이고 필연적이며 획일적인 모습을 추구했다. 게다가 이집트는 전제군주주의 국가였는데, 그로 인해서 권력은 파라오에게 집중되고, 백성들 개개인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예술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장인들은 정해진 보편적인 규칙에 따라서 작업을 했으며, 시간의 영원성을 지향하는 사회의 보수성은 예술에서도 자유와 혁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예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는 변증법적인 진보를 할 수 없었고,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제작 방식을 답습하는 데에 그쳤다.
그리스의 미술은 어쩌면 현대인이 생각하는 가장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예술일지도 모른다. 오리엔탈리즘적인 서구 중심사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예술성이 정말 훌륭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양식들 사이에 '우열'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와 문화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여러 양식은 그저 각각 다른 예술의지를 구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리스적인 예술이 가장 대중적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사조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만큼 그리스 예술은 우리에게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그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리스 예술의 특징은 일단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이집트와는 반대의 성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내세를 현세보다 중시하는 이집트인들은 예술을 할 때에도 그 사유의 습관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집트 작품들은 보이는 것―현상적인 것을 재현하는―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대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집트 작품은 동적이지 않고 정적이다. 변화보단 필연과 획일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정적인 것은 예술에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미덕이었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리스의 작품은 정적이지 않다. 위의 디스코볼로스와 같이 그리스 작품들은 매우 역동적이며, 인체를 보이는 모습 그대로 나타내고자 한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표현하고, 객관적인 비례를 추구함으로써 그들은 보이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남기고자 했다. 그리고 그 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함이란 결국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음을 함의하기도 한다. 이집트의 전제주의와 달리 그리스는 민주주의와 철학의 나라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후의 차이도 어쩌면 그들의 예술사조의 방향성을 가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비옥하고 살기 좋은 환경은 그들이 변화무쌍한 현세를 긍정하게 만들었고, 이집트의 척박한 기후가 그들이 영원불변의 내세를 지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집트에서 예술이란 오늘날의 기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시에 자유학예란 개념이 없었기에 당연히 기술로 분류되는 것이 맞지만, 현대의 시점으로 보자면 이집트 미술은 기술이었다. 정해진 엄격한 기준에 따라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기에 그들의 창의성은 나타날 수 없었으며, 그것이 이집트 예술가들이 무명으로 남아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는 아직까지 예술가들의 이름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건 그들이 예술가로서 자신의 창의성을 작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작품 앞에서 하던 고뇌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고뇌와 사유는 변화와 진보를 만들었고, 그들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게 되었다.
이집트는 불변하는 내세를 추구했고, 보수적이었음에 반해, 그리스는 변화하는 현세를 긍정하고, 자유로웠다. 이러한 다른 두 세계는 서로 다른 예술을 추구하게 만들었으며, 그 예술에서 우린 그들의 사회, 정치, 철학을 모두 찾을 수 있다. 보이는 것의 불변하는 본질을 추구하는 이집트 미술과 존재하는 것을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그리스 미술의 관계는 어쩌면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혹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립과 공존과도 같은 이항대립적인 체계를 이룬다. 그리고 그 둘의 교차와 함께 미술은 진보한다. 종교의 그늘아래에 있던 이집트적인 미술이었던 중세 미술에서 다시 그리스 예술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로 가듯이.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리스적인 구상에서 다시 이집트적인 추상과 기하학적인 예술로 넘어가 현상하는 형태를 미분했다. 그다음은 역시 그리스적인 예술이었다. 이제는 현상하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예술의 헤게모니를 거머쥐지 않게 되었고, 현상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 되는 사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다음의 예술 사조는 아마 이집트적인 것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