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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행복이 뭔데

by 오경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 <우는 여인>(1937)

왜 태어났냐는 질문에 내 의지로 태어났다는 답변은 불가능하다. 태어나기도 전에 태어나고 싶었다면 그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함의하는 분석명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와 하이데거의 피투성(Geworfenheit)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의할 때 떼어놓을 수 없는 진리와도 같다. 이 두 이론은 인간이기 위한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존재하고, 존재하기에 생각하며, 세상에 던져졌기 때문에 태어났으며, 태어남으로써 세상에 던져진다. 그렇다면 생각하기에 세상에 던져지고, 사유함으로써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이전에 많이 언급했듯이, 인간에게 본질은 없다. 현존재에게 합목적성은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우리의 존재성은 본질을 앞선다. 우리는 무엇으로써 쓰임을 다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나서 자신의 쓰임과 역할을 고민한다. 신의 죽음과 신학의 그늘에서 철학이 벗어남으로써 이러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신이라는 절대적 형상의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에 불과하던 인간 실존이 그 형틀을 부숨으로써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가 될 가능성을 얻었다.

모든 족쇄를 끊고, 동굴에서 나온 인간에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대체 무엇을 추구하며 살지? 신이라는 절대자가 없어짐으로써 자유와 동시에 불안이 찾아온다. 십계명에서 벗어난 일탈이 주는 배덕감과 양심의 가책. 정말 이래도 될까 하는 고민. 신이라는 주인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과연 주체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색과 고뇌.

인간의 본질은 없고, 그에 따라서 우린 자유롭게 산다. 그 자유 속에서 우린 무언가를 추구하는데 그게 아마 행복일 것이다. 고통을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추구하는 바를 얻었을 때 그는 만족감을 느낄 텐데 그것마저 행복일 것이다. 행복이 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게 더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이라는 것이 뭔지 먼저 정의를 내려야 원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마치 자신의 꼬리를 뱀과 같으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묻는 것처럼 끝이 안 보일 것이다.

사드 이후로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라는 단어가 생겨남으로써 사람들의 성(性)적 성향이 언어화되었는데, 이후로 행복이라는 범주 안에 평온함과 조용함뿐만이 아니라 폭력과 시끄러움, 고통이 들어오게 된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여파일까?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치관의 견고함마저 해체되고, 우위의 영역에 열등하다고 여겨지던 요소들이 편입하게 된다.

자유로움과 가치관의 해체는 더 이상 아름다움만 추구하던 인간의 미학적 관점마저 해체시켜 버리고,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추함까지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그로테스크, 고어, 호러, 숭고 등 인간은 예술에서 더 이상 미(美)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무조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클리셰는 깨진 지 오래고, 우린 주인공이 악당임을 알면서도 그를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대체 행복이 뭘까? 추구해야 하는 목적어일까 아니면 주어의 상태를 나타내는 보어일까? 아니면 현재 진행형 동사나 이미 완료된 과거형 시제일까? 어쩌면 더 이상 언어라는 매개체로 표현이 불가능한 이데아(idea)일까?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른 사회에서 모두가 자본이라는 같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언어 게임과 돈이 에피스테메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나의 무대일 뿐 나의 본질과 역할을 정해주는 디렉터가 아니다. 자본은 내가 살아가는 수단이지 나를 살게 하는 목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스스로 피라미드라는 허상을 건설하고,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저게 진정한 행복(eudaimonia) 일 것이라 추측한다.

옆을 보지 못하고 위만 바라보니 목이 아프고, 아래를 보지 못하니 내가 서있음을 모른다. 앞을 보지 못하니 넘어지고, 듣지 못하니 피하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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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저서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 - 현대미학과 그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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