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는 왜 가지지 못할 것을 원했을까. 그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자기와 맞기에 더더욱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커졌을 것이며, 그러한 확신이 불가능성이라는 불편한 진실에게서 눈감게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여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롯데가 줬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려줬지만 약혼자가 있음은 알려주지 않은 그녀가. 베르테르의 마음은 커져만 갔고, 그 감정은 마을 사람들도 다 알정도로 두드러졌다. 누가 봐도 베르테르는 롯데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롯데에게 알베르트가 있음을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불행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 두려웠던 것일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괴테의 작품은 그저 진부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재의 슬픔과 갈등을 보여주는 인간적이며, 현실적인 작품이다.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포함되어야 하지만, 그 구조 속의 부품이 되기 싫은 사회들은 어쩌면 모두 베르테르와 같을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에겐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세속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어떤 형태로든 그것은 모두의 내면에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다 표출하고, 추구하며 살겠는가. 당장 내일 출근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나의 행동반경을 제한해 놓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 숨쉬기에 이상을 품고 살아간다. 당첨될 리 없는 로또를 사며 일주일을 행복회로 돌리며 이루지 못한 상상을 하고, 내가 이루지 못할 무언가를 이루는 상상을 하며 잠시나마 흡족해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로또가 당첨될 확률은 몇백만 분의 1에 불과하고, 사직서를 내는 나의 모습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 망상이 현실이 될지라도 그건 잠시나마 개운할 뿐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다.
베르테르는 결국 자신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추구했고, 그 불가능을 인지하고 자살한다. 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의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어쩌면 그에게 이룰 수 없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선사했을지도 모른다. 살아있지 않음으로써 그는 롯데에 대한 사랑으로써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 베르테르는 죽음을 통해서 이상으로부터 멀어졌지만, 현대인은 자신의 시간과 주체성을 빼앗김으로 이상으로 터 멀어진다. 살아있음에도 우린 이루지 못할 이상을 꿈꾸지만 동시에 그것을 외면하려 노력한다. 베르테르는 죽음을 통해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우린 그것을 외면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이 닿을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결여에 대한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려 한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와도 같은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화면에 비친 급여입금 문자를 보고 우린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척을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대가로 받은 금전적 보상으로 다시 자본주의 시장에 내 피와 땀으로 결실을 맺은 결과물을 내어준다. 결국 고통을 고통으로 메꾸고, 그 고통을 더 큰 고통을 메꾸면서 본질적인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굴레를 통해서 우린 실존을 영위하고, 이어나간다. 내가 당장 회사가 싫다고 해서 사직서를 제출한다면 나는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 월세를 낼 돈도 없고, 밥을 사 먹을 돈도 없을 것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며, 나를 위한 장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고통의 연속인 이 삶 속에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삶 자체가 고통임을 암시하는 것인가?
롯데는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이기에 가질 수 없지만, 내 인생은 나라는 주체로 인하여 펼쳐진다. 롯데는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존재이며, 나의 종속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전적으로 나에게 종속된다. 내 인생은 나 이외의 존재에게 종속될 수 없다. 노예제는 이미 폐지되었고, 신자유주의 사회는 나에게 자발적 복종을 요구하지만 소수일지라도 나에겐 자유로울 길이 있다. 과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아니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모두가 알베르트나 롯데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하며, 그것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린 모두 결여와 무(Neant)를 가슴속에 간직한 베르테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