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 in phenomenon
감정이란 그 자체로 형성되지 않는다. 인간이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분명히 어떤 사건이라는 원인에 의해 일어난 결과다. 대상 없이 하는 사랑, 자식 없이 부모가 되는 것, 사인 없는 죽음 등 원인 없는 사건이란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대상―그 감정의 원인이 되는 존재―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일어날 수 없고, 자식이라는 전제조건 없이 부모가 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존재사건은 필연적으로 원인을 가지며, 항상 현존재를 불안하게 만들고, 사유하게 만든다.
감정이라는 것은 결국 현상이다. 그 자체가 나는 아니지만 나는 그 프레임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괜히 기분이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이 꼴 보기 싫고, 기분이 좋을 땐 추함도 용서가 된다. 존재가 세계라는 지평에 존재할 때 감정이란 것은 그 존재를 둘러싼 옷과 같다. 옷과 같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다른 존재에게 드러난다는 것과 갈아입을 수 있음을 함의한다.
감정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것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언어로 형용되지 않으며, 설사 그것이 언어라는 매개체로 전달이 된다 하더라도 그 정도와 깊이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사적 언어 논증이라 하더라. 나의 감정은 나만이 느낄 수 있으며, 나는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그에게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슬픔이 누군가에겐 절망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기쁨이 나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감정이란 사적언어는 객관으로 치환할 수 없는 예술이자 광기다. 그 광기는 나에게 죽음을 부르기도 하고, 영감을 주기도 한다. 또한 그 감정은 다시 느낄 수 없다. 같은 사건이더라도 첫 번째 겪을 때와 두 번째로 겪을 때 그 충격이나 신선함은 더 떨어질 것이고, 그 같은 사건을 느낄 때 우리가 같은 감정의 장(emotional field)에 있다고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은 하나의 사건이다. 그 사건은 환경이나 분위기 같은 원인이나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객관이 아닌 주관으로 인식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우린 같은 사실을 가지고도 다르게 반응하고, 각자의 심각성과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다르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절대적 사실이다. 눈으로 창밖을 보거나 아니면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음으로써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사실은 각자에게 다른 주관을 형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누군가는 비가 와서 파전이 먹고 싶어 지고, 누군가는 빗길에 출퇴근이 걱정되고, 누군가는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게 번거로워서 나가기 싫을 것이다.
비가 온다는 사실은 원인이다. 그것은 상식적이며 동시에 객관적인 사실이다. 동시에 그 객관적 사실은 원인이 되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감정을 일으킨다. 비 오는 날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비가 온다는 사실로 인해서 그 하루가 별로일 수 있고, 비 오는 날의 운치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센치한 하루가 될 수도 있다.
감정이란 내가 세상을 느끼는 현상의 토대다. 어느 현상을 접하더라도 나의 감정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절대적이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 감정으로 인해서 하나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고, 무언가를 하나 더 얻을 수도 있다. 나의 표상이란 나의 감정에 의해 형성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나'라는 감정의 그릇이 어떤 사건을 받아들여서 어떠한 현상을 느낄지는 '나'의 감정을 다루는 기술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을 우린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때론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회피가 나를 더욱 감정의 골에 빠지게 만들고, 그 감정으로 인해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감정이라는 프레임을 잘 다룬다면 그 사건은 사건일 뿐이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면 그건 그저 해결하는 되는 무언가에 불과할 것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다룰 줄 알게 된다면 나의 고통은 나에게 영양분이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이성적인 존재에게 고통은 그저 지나가는 사건이 될 것이고, 그 사건은 훗날 그저 지나간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그 해프닝이라는 역사는 '나'를 구성하는 사건이 될 텐데, 그 사건이라는 역사가 나의 감정을 만들 것이다. 인간에게 감정과 꿈이라는 이상은 존재 자체를 예술로 만드는 질료이자 형상이다. 감정이라는 질료와 이상이라는 형상은 살아갈 원동력이고, 이뤄야 할 목표다. 동시에 예술적 사건을 행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감정. 그것은 예술과 광기의 원천이자, 인간만의 축복이자 저주이다. 그것이 축복이 될지 아니면 실존 속 저주가 될지는 감정을 다루는 현존재의 태도에 달려있다. 결국 세상은 물질과 감정뿐이다. 물질이라는 즉자존재는 그대로 있지만, 감정이라는 대자존재는 불완전하며, 변증법적으로 어디론가 나아간다. 물질은 그 자체로 객관적이지만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감정이라는 주관에 답은 없다. 그것은 예술과도 같이 간파할 수 없는 미학의 영역이다.
사물이 담론과 서사 그리고 평론에 의해서 예술작품이 되는 것처럼 감정 또한 나의 태도와 가치관에 따라서 사건이거나 해프닝에 불과한 지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나에게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고, 그렇지 않다면 반대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