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urquoi une infirmière?
왜 간호사를 집중적으로 작품의 소재로 삼으면서, 간호사 시리즈를 만들었을까? 프린스는 원래부터 대중적 이미지(광고, 잡지, 로맨스 소설 표지)를 가져와 새로운 맥락으로 제시하는 작가이다. 1950~60년대에 대량 유통된 펄프 로맨스 소설 중에는 ‘간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들이 굉장히 많는데, 제목도 Naughty Nurse, Park Avenue Nurse, Man-Crazy Nurse 같은 식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린스는 이 클리셰화된 간호사 이미지를 끌어와, 그것이 어떻게 여성성을 소비하고 직업적 이미지를 왜곡했는지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프린스 자신은 "그냥 이 이미지들이 매혹적이었다"고도 말했다. 펄프 소설 커버에 그려진 간호사들은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기묘하게 낯선 이미지였고, 그걸 확대·변형하는 과정을 통해 '불안한 감정'을 작품화하려 했다는 해석 또한 있다.
"미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 수수께끼가 된 적이 없다. 그것은 결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발언이 그가 쉽게 예술을 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일까? 다른 작가들이 무(néant)로 가득 찬 캔버스를 시작점으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데, 프린스는 커버 이미지를 캔버스에 잉크젯 프린팅하고, 페인트를 덧입히거나 일부를 왜곡하거나 가려서 원본의 이미지와 의미를 뒤틀면서 재구성하여 그의 작품을 탄생시킨다. 있음에 새로움 혹은 자신의 예술을 덮어서 완전히 다른 아우라(aura)를 발산하는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포장해서 말할 수도 있겠으나, 굳이 그에게 이런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진 않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본래 치유·돌봄(care)과 연결되어 있는데, 대중문화 속에서는 종종 성적 판타지(sexual fantasy)의 대상으로 변형되곤 했다. 프린스는 이 이중적 의미 —돌봄과 욕망— 사이의 긴장을 시각화하여 작품에 교차시켰다. 그래서 그의 간호사들은 친절하거나 따뜻하다기보다는, 종종 위협적이거나 불길하고, 가면(mask) 뒤에 감정을 숨긴 인물로 표현된다.
왜 그들은 마스크를 썼을까? 방역과 위생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는 게 그들의 직업윤리이지만, 프린스의 그림에서는 다른 이유로 마스크를 쓰는 것 같다. 프린팅 한 이미지에 덧칠해서 작품을 만들어서일까? 그들의 마스크는 유난히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며, 얼굴 위에 착용한 것이 아니라 얹어졌다는 느낌이 들고 그 물질성이 강조된 것 같다. 민낯으로 완성된 피사체의 얼굴에 물감을 덮어서 마스크를 그렸으니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것마저도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사람의 표정은 눈과 입을 통해서 주로 드러난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면 입모양이 보이지 않아서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욕을 할 수도 있고, 눈은 그대로 유지한 채 입으로만 웃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하관부는 감정을 드러내는 부위인데, 리차드 프린스의 피사체인 간호사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의 감정을 유추하려면 하관보다 눈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말해줄 것 같지 않은 눈빛이다. 진지함을 넘어서 자기 자신의 실존 자체를 숨긴 것 같은 그녀의 눈 모양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어 내가 그녀에게 아무 질문도 던지지 못하게 만든다.
바로 앞의 간호사「Runaway Nurse」는 전의 간호사와는 다르다. 그녀가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비밀을 숨긴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겉옷까지 벗어서 나에게 자신에 대해 무언(無言)의 말로 알려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순 없었다. 간호사답게 마스크를 썼음은 물론이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시선을 눈이 아닌 다른 곳에 향하게 한다. 고혹적인 외모와 유혹하는 듯한 몸짓이 언어적 말보단 육체적 언어로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 같다. 결국 이번 간호사도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눈도 블러처리하여 이젠 그녀의 감정을 한층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의 간호사들과 다르다. 이번엔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안고 있다. 그녀의 기울어진 고개는 편안함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추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체념의 표시로 고개를 기울였는지 이번에도 알 수 없다. 뒤의 빨간 배경은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님 잔혹한 터치를 암시하는 것일까.
프린스가 고정관념(stereotype), 특히 '유혹적인 간호사(sexy nurse)' 같은 문화적 환상(fantasy) 또는 상업적인 여성 이미지의 클리셰(cliché)를 해체(deconstruct)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동시에, 관객이 그 이미지들과 상호 작용(interact)하면서 느끼는 복합적 감정 — 즉 단순한 비판만이 아니라 그 이미지들이 가진 유혹적 요소(complicit pleasure)도 함께 드러냈다는 평론 또한 있다(Gagosian, 2008).
리차드 프린스는 세 가지 의도로 간호사 연작을 만들었다고 한다. 첫째, 대중문화 속 여성/직업의 고정관념(stereotype), 특히 '유혹적인 간호사(sexy nurse)' 같은 문화적 환상(fantasy) 또는 상업적인 여성 이미지의 클리셰(cliché)를 해체(deconstruct)하기 위해. 둘째, 관객이 그 이미지들과 상호 작용(interact)하면서 느끼는 복합적 감정 — 즉 단순한 비판만이 아니라 그 이미지들이 가진 유혹적 요소(complicit pleasure)도 함께 드러남을 통해 간호사에 대한 돌봄과 성적 판타지가 교차하는 긴장감을 시각화하기 위해. 셋째, 창작·저작권·원본성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고개를 끄덕이기보단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 같다. 일부 비평가들과 간호사 단체에서는, 이 그림들이 고정관념(stereotype)을 해체하려는 의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으며, 예컨대 "유혹적인 간호사" 이미지, 여성 돌봄자로서의 역할 강조 등으로 인해 작가 말하는 의도와는 다른 역설적인 파장을 일으킨다는 킨다는 것이다. 간호사 이미지가 성적 판타지(fantasy)나 선정성(sexualization)의 맥락에서 이용된다는 비판이 있고, 특히 "Man-Crazy Nurse" 같은 제목이나 노출 혹은 암시적 요소들이 그런 해석을 낳는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특히 실제 간호사들이 겪는 현실(과로, 불평등, 돌봄 부담 등)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며, 이 작품이 단순히 쇼크 효과나 미학적 논란을 의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존재한다(TruthAboutNursing).
Gagosian, <Richard Prince June 19─August 8, 2008 Davies Street, London>.
Truth About Nursing. n.d. "Nurse Paintings." Truth About Nursing. Accessed September 15,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