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오 폰타나─회화와 비은폐성

art and aletheia

by 오경수
Lucio Fontana(1899-1968) - 「Concept Spatiale」(1966)

루치오 폰타나는 캔버스를 평면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림이 그려지는 표면을 믿지 않았다. 세속적 회화란 진리가 아니라 세계의 모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폰타나는 "Concetto spaziale(공간 개념)" 시리즈명으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화면의 평면을 절단하고 천공함으로써, 표면 뒤의 무형(無形) 공간을 가시적으로 열려고 시도했다(Philip Shaw)"

예술에서 "진리의 전개는, 스스로를 은폐하는 것(λήθη, lēthe)을 '드러내거나 비은폐하는'(ἀλήθεια, a-lêtheia) 투쟁, 곧 비은폐적 투쟁으로 일어난다. 이는 하이데거가 '세계(welt)'와 '대지(erde)'라고 부른, 드러냄(revealing)과 감춤(concealing)이라는 두 상호 연결된 이해 가능성의 차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본질적 투쟁이다(Crowell, 2021)."

Lucio Fontana(1899-1968) - 「Concept Spatiale」(1958)

폰타나는 회화의 평면이 진리를 드러내는 장(field)이 아니라 진리를 덮는 베일과도 같게 느꼈을까? 폰타나는 회화의 평면을 그림이 그려지는 세계로 보지 않고, 진리를 감추고 있는 대지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대지와도 같은 표면을 찢고 구멍을 냈다. 이 행위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닫힌 표면 뒤의 무한한 공간을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절개된 칼자국은 상처가 아니라 대지가 숨기고 있던 세계의 비은폐(aletheia)가 일어나는 사건의 장소였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숨겨진 본질로 보지 않았다. 그는 존재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을 "비은폐성(aletheia)"라고 불렀다. 세계는 닫힌 실체가 아니라, 감춰져 있다가 열리고 드러나는 것이다. 폰타나가 칼로 캔버스를 찢어 놓았을 때, 그 절개는 재현의 막을 걷어내고, 그 뒤의 공간과 어둠, 그리고 무한함이 드러났다. 이 열린 틈은 하이데거가 말한 알레테이아의 물질적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감춰진 것이 벗겨지고, 그 자리에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절개는 파괴가 아니라, 세계가 스스로 열리는 순간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이 절개에서 드러난 칠흑 같은 어둠은 또 하나의 철학적 사유와 연관 지을 수 있다. 바로 사르트르의 개념인 ‘무(néant)’이다. 사르트르는 의식과 존재의 관계를 사유하면서, 세계 속의 사물들이 모두 충만한 존재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 사이에 "결여, 부정, 무(無)"를 끌어들인다고 보았다. '무'는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열어젖히는 틈이다. 폰타나가 만든 절개는 바로 그 틈, 그 '무'의 열린 문이다. 회화의 표면은 전통적으로 존재가 재현되는 자리였지만, 폰타나는 그 표면을 찢어 존재를 가르는 '무'의 공간을 드러냈다.

루치오 폰타나_Concept Spatiale 1960.jpg Lucio Fontana(1899-1968) - 「Concept Spatiale」(1960)

폰타나의 절개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한다. 하나는 하이데거적 의미의 '열림'이다. 하이데거에게 예술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를 열어 보여주며, 존재 전체가 역사적 민족 앞에 드러나는 방식을 열어준다(Young, 2001, p. 45)." 따라서 캔버스라는 폐쇄된 표면이 열리고, 그 뒤의 공간이 드러나면서,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비은폐성의 순간이 펼쳐진다. 다른 하나는 사르트르적 의미의 '무'다. 절개된 틈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존재를 넘어서는 '비어 있음'이다. 그 공허는 세계가 단순한 물질로 가득 차 있지 않음을 드러내며, 인간이 세계를 마주할 때 느끼는 근본적인 불안과 자유의 공간을 열어준다.

Lucio Fontana(1899-1968) - 「Concept Spatiale」(1964)

푸코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절개는 근대적 재현 체계를 해체하는 제스처이다. 평면 위의 그림은 근대적 시선이 대상을 질서 정연하게 배치하고 통제하는 창문이었다. 푸코가 말한 바와 같이 “정교한 시각적 시선은 권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사회 전체를 포섭한다”(Han 2023, p. 253). 그러나 절개된 캔버스는 그 창문을 산산이 부수고, 시선을 그 너머의 공허와 어둠으로 흘려보냄과 동시에, 관람자가 '보는 자'에서 '보이는 자'로 전도되는 전복적 상황을 만든다(p. 258). 시선을 지배하던 근대적 권력-지식의 질서가 무너지고, 관람자는 더 이상 세계를 통제하는 주체가 아니라, 열린 틈 앞에서 불확실한 존재로 서게 된다.

폰타나의 절개는 이렇게 세 가지 층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 하이데거적 관점에서 그것은 세계가 감춤을 벗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비은폐성의 흔적이다. 둘째, 사르트르적 관점에서 그것은 회화 속 재현의 충만함을 부수고 ‘무’를 드러내는 틈이며, 존재와 무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셋째, 푸코적 관점에서 그것은 재현(representation)을 지배해 온 근대적 시선의 권력을 해체하는 행위이다. 그 앞에서 관람자는 단순히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열린 틈과 마주 서서, 세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존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이의 '무'가 우리를 어떻게 사유하게 만드는지 묻게 된다. 폰타나의 칼날은 상처가 아니라 문이며, 그 문은 우리를 다시금 세계와 존재, 그리고 '무'의 심연 앞에 세운다.

Lucio Fontana(1899-1968) - 「Concept Spatiale」(1964)

아무리 보아도 열린 틈 사이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저 문이 열리고, 그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아무것도 없다고 추측하게 만든다. 시각적으로 볼 때 우린 저 절개된 틈 사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다르게 말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무' 밖에 없다. 그러나 미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미적 엠블렘에서 감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감각하더라. 마치 아래와 같이.

루치오 폰타나_Concept Spatiale 1965.jpg Lucio Fontana(1899-1968) - 「Concept Spatiale」(1965)

귀를 잘 기울여보라. 저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비명소리인가. 여하튼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소리로 재현할 수 없는 음성이 들려오며, 사유할 수 없는 생각이 저곳에서 빠져나와 나에게 온다. 하이데거가 고흐의 구두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것처럼, 우린 저 절개된 틈에서 우리의 언어가 아닌 다른 형태로 나오는 신음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혹시 작가의 무의식에서 새어 나오는 원자아의 비명은 아닐까.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게 보이는 절개는 어쩌면 그의 무의식 중에서 원자아가 발현된 알레고리일 수도 있겠다. 혹은 저 칼자국은 아담의 노래가 들려오는 곳이자 동시에 현존재의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태초의 요람일 수도 있겠다.

Lucio Fontana(1899-1968) - 「Concept Spatiale」(1967)


Reference

Crowell, Steven. “Heidegger’s Aesthetics.” I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all 2021 Edition), edited by Edward N. Zalta. (Accessed October 4, 2025)

Shaw, Philip. “Sublime Sexuality: Lucio Fontana’s Spatial Concept ‘Waiting’.” Tate Research Publication. (Accessed October 5, 2025)

Young, Julian. "Heidegger’s Philosophy of Ar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Han, Lefei. “‘Seeing and Being Seen’: Analysis of Foucault’s View of Power Gaze.” Transactions on Social Science, Education and Human Research 1 (2023): 25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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