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라 작가─Beyond the perception

지각 너머로

by 오경수

* 이 전시회의 모든 작품의 이름이 <心眼의 풍경>이라 작품에 대한 정보를 따로 담지 않았다.

손미라 작가는 <心眼의 풍경>이라는 테마로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시의 주제는 작가가 바라본 자연의 풍경이다. 자연이 주는 감동은 손 작가의 작품 세계에 모태가 되었다. 산, 물줄기, 구름, 나무, 꽃, 새, 논두렁 밭두렁, 바다, 섬 등등 많은 제재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자연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 본인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心眼의 풍경>의 주제로 오랫동안 자연을 표현해 왔다.

표현기법에 대해 작가는 19세기 말엽 광선 효과와 색채 분할의 기법으로 신인파 시조인 쇠라, 시나크 작품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아 그의 표현기법에 기초가 되었다고 말한다. Acrylic 물감으로 다양한 색채의 점과 선을 중첩시켜 심층적 공간감을 느끼게 하려 했으며 마티에르(질감)가 강하게 표현되었다.

우리는 눈으로 풍경을 바라본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시각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내면에 옮겨 담는 일이다. 지각(perception)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대상의 형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인식한다. 호수 위의 백조,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 물결에 비치는 윤슬 등 우리가 보는 모든 이미지는 감각기관이 만들어낸 상(像)이다. 그러나 이 상이 생겨나기 이전의 본질, 즉 사물의 기원을 본 인간은 없다.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감각기관이라는 필터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각의 체계는 경험 이전에 이미 인간에게 주어진 실존(l’existence)의 조건이기도 하다.

손미라 작가는 이러한 보편적 인식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감각이 규정한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언어와 인식 방식을 통해 풍경을 바라본다. 인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지각의 경로에서 이탈하여, 다른 시각 체계로 세계를 해석하기에 그의 풍경은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자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형상을 띤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이 감각의 결과라면, 손미라가 그리는 풍경은 감각 이전의 세계, 즉 존재의 진동을 탐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심안(心眼)으로 본 풍경이 우리의 인식 너머에서 사물 그 자체의 모습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인간의 지각 바깥에서 세상을 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학과 철학을 통해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려 한다. 고대 철학자들이 물, 공기, 불을 세계의 아르케로 보았다면, 현대의 사유는 그것을 전자와 원자로 대체했다. 그러나 원자마저 쿼크로 분해되듯, 근원은 언제나 또 다른 깊이를 품는다.

손미라의 〈심안의 풍경〉은 그 근원으로 향하는 회화적 시도다. 작가는 자연을 재현하지 않는다. 보이는 세계를 해체하고, 그 아래에서 진동하는 리듬과 에너지를 색채로 포착한다. 점과 선, 그리고 중첩된 색의 층위들은 풍경의 표면을 넘어, 그 안에 잠재된 생명력과 시간의 결을 드러낸다. 그는 마치 현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원자의 존재를 그리듯, 사물의 미세한 떨림과 구조를 색과 형태로 번역한다. 일정한 색을 반복적으로 배치한 화면은, 세상이 결국 빈 공간과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색은 현실의 빛을 모사하지 않는다. 삼원색이 모든 색을 생성하듯, 손미라의 색채는 세계를 이루는 근원적 힘으로 작동한다. 각 색은 물질의 최소 단위처럼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충돌하고 스며들며 무한히 변주된다. 그래서 똑같아 보이는 파란색의 화면조차 서로 다른 서사를 품는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같은 풍경이라도 그것이 머무는 시간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나타난다. 그의 회화는 그렇게 시간과 변화, 반복과 차이가 교차하는 장(場)이다.

화면의 중심부가 선명하고 테두리로 갈수록 흐려지는 이유는, 이 회화의 주체가 의식이 지향하는 현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섬세한 묘사는 의식이 집중하는 중심을, 부드럽고 옅은 색조는 의식의 주변부를 드러낸다. 화면은 하나의 ‘지각의 지도’처럼, 중심에서 바깥으로 확산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결국 〈심안의 풍경〉은 단순히 내면의 시선으로 본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이 시리즈는 인간이 '본다'는 행위 자체—즉 인식과 지각이라는 근원적 활동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제시한다. 손미라의 화면 앞에서 우리는 시각이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사유의 형식임을 깨닫게 된다. 색과 선, 그리고 그 사이의 여백은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묻는다.

손미라의 풍경은 더 이상 외부 세계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지각 그 자체의 이미지화, 즉 감각이 작동하는 내면의 공간을 시각화한 것이다. 관람자는 작품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신이 '지각하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이때 화면은 단순한 시각 대상이 아니라, 지각의 기원을 비추는 거울이자 ‘마음의 렌즈’가 된다. 손미라의 회화는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사유의 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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