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피사체—부정의 미학으로 본 옥승철의 회화

by 오경수
taste of green tea 2017.jpg 「taste of green tea」 (2017)

옥승철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다. 중앙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디지털 이미지 문화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이미지란 무엇인가, 그리고 원본은 여전히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회화와 조각, 설치, 디지털 매체를 오가며 동시대 시각문화의 구조를 탐구한다. 대표적인 개인전으로는 《UN ORIGINAL》(2018, 갤러리 키쉬), 《Helmet》, 《Plaster Statue》, 그리고 《PROTOTYPE》(2025, 롯데뮤지엄)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일관되게 ‘원본성과 복제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다루며, 이미지의 실체가 불안정한 시대에 예술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질문한다.

그의 작업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이미지가 가진 존재론적 불안정성에서 출발한다. 옥승철은 만화나 영화, 게임 등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해 이를 회화로 재구성한다. 벡터화된 형상은 매끈하고 정제되어 있지만, 그 표면 아래엔 미세한 균열이 숨어 있다. 디지털의 가벼움과 회화의 물질성이 충돌하는 그의 화면은 이미지가 더 이상 현실의 그림자가 아닌, 현실 그 자체로 작동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그는 “이미지의 물성”과 “감각의 재편성”을 탐구하며, 익숙한 시각이 불편함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matador 2017.jpg 「matador」 (2017)

옥승철의 인물들은 국적과 성별, 서사가 사라진 얼굴로 등장한다. 배경은 비워지고 인물은 화면 중앙에 정지해 있다. 감정이 없는 얼굴, 그러나 그 무표정은 공허함이 아니라 절제의 결과다. 그 절제는 세상을 견디는 감정의 형식이며, 인간적 불안을 은밀히 품고 있다. 그들의 침묵은 저항이다.

아도르노는 『Aesthetic Theory』에서 “세계가 어두워질수록 예술의 비이성은 오히려 합리성을 획득한다. 예술은 세계의 어둠을 반영해야 한다”¹고 썼다. 세상이 화해하지 않았기에 예술은 그 불화를 감추지 않아야 한다. 피핀은 이를 “예술의 부정성은 근대 사회의 허위성에 대한 필연적 반응이며, 오직 그 부정 속에서만 예술은 자신의 진실에 도달한다”³고 해석했다. 옥승철의 인물들이 웃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의 침묵은 세계의 모순을 견디는 표정이며, 그 표정 속에서 아름다움은 고통의 언어로 바뀐다.

아도르노가 말한 “형식 속의 상처(Wunde Form)”⁴는 그의 회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단정한 구도와 절제된 색채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그 안에는 균열과 불화가 숨겨져 있다. 하티포글루는 “예술작품은 균형을 지향하지만 결코 완전히 지배하지 않는다. 미적 경험의 변증법은 언제나 주체와 객체,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전개된다”⁵고 했다. 옥승철의 화면은 바로 그 긴장의 형식이다. 고요한 표면은 불안의 징후로 진동하며, 인물들은 ‘비동일성(non-identity)’의 존재로 남는다.

mimic(2) 2017.jpg 「mimic(2)」 (2017)

그들은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언제나 화폭 밖,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향한다. 그 시선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추한 세계 혹은 인간 자신의 그림자를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도르노는 “예술은 화해되지 않은 세계를 증언하면서도, 동시에 화해의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⁶고 말했다. 예술은 절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견디는 형식이다. 옥승철의 인물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되돌아와 묻는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그의 회화는 표면을 통해 심연을 말한다. 절제된 구성과 정제된 색조 아래에는 감춰진 서사의 흔적이 있다. 배경이 사라진 클로즈업 구도는 인물을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며, 그 고립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장치가 된다. 아도르노에게 아름다움은 완결된 조화가 아니라 상처받은 형식이며, 세계의 비극을 품은 질서다. 카르발류는 “예술작품은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의 체계이며, 그 안에서 모순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⁷고 썼다. 옥승철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정지된 얼굴은 바로 그 모순의 시각화다. 침묵은 언어가 되고, 절제는 진실을 드러내는 형식이 된다.

Helmet 2017.jpg 「Helmet」 (2017)

결국 옥승철의 회화는 부정의 미학을 시각화한 초상이다. 그의 인물들은 웃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우리를 향하지 않고, 세계의 추함을 향한다. 그들은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으로 세계를 증언한다. 아도르노는 말했다. “예술은 사회의 반(反)사회적 대립항이며, 사회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될 수 없는 것이다.”² 옥승철의 인물들은 웃지 않음으로써 화해를 거부한다. 그들의 표정은 절망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침묵하지 않은 인간성의 징표다. 그 얼굴은 질문으로 남는다.

“너는 이 세계를 보고도 웃을 수 있는가?”

up, 2021, acrylic on canvas, 180 x 200cm.jpg 「up」 (2021)


Notes

1. Adorno, Aesthetic Theory, trans. Robert Hullot-Kento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p. 165–166.

2. Ibid., p. 168.

3. Pippin, “Adorno, Aesthetic Negativity, and the Problem of Idealism,” nonsite.org no. 33 (2020): 143–158.

4. Adorno, Aesthetic Theory, p. 112–113.

5. Hatipoğlu, “Adorno’s Aesthetic Theory: Aesthetic Display of the Empirical Reality,” Kaygı: Journal of Philosophy 21, no. 1 (2022): 130–144.

6. Adorno, Aesthetic Theory, p. 168.

7. Carvalho, “Hope for Truth: Adorno’s Concepts of Art and Social Theory,” Art & Society (2020): 100–116.


References

Adorno, Theodor W. Aesthetic Theory. Translated by Robert Hullot-Kento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Carvalho, Mario Vieira de. “Hope for Truth: Adorno’s Concepts of Art and Social Theory.” Art & Society (2020): 100–116.

Hatipoğlu, Özüm. “Adorno’s Aesthetic Theory: Aesthetic Display of the Empirical Reality.” Kaygı: Journal of Philosophy 21, no. 1 (2022): 130–144.

Pippin, Robert. “Adorno, Aesthetic Negativity, and the Problem of Idealism.” nonsite.org no. 33 (2020): 143–158.



네이버 블로그


글쓴이 저서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현대미학과 그의 변명


형이상학적 시선─보이지 않는 침묵과 형상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마리아─윤리와 공존의 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