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법, 초자아─칸트와 사드를 읽는 라캉의 방식

Lacan, J. "Kant avec Sade"

by 오경수
cardinal-and-nun-caress-1912.jpg Egon Schiele - 「Cardinal and Nun (Caress)」(1912)

자크 라캉은 「칸트와 사드」에서 윤리를 둘러싼 전통적 구도를 근본적으로 전복한다. 그는 칸트와 사드를 서로 대립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동일한 명령 구조를 공유하는 두 극단으로 제시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도덕의 이름으로, 사드의 향유 명령은 쾌락의 이름으로 각각 주체에게 절대적 요구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두 체계는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 라캉에게 이것은 단순한 유사성이 아니라, 초자아(superego)의 명령 구조가 두 체계를 관통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초자아는 금지가 아니라 “의무를 수행하라”와 “향유하라” 사이를 진동하는 잔혹한 명령의 목소리로 작동한다.

라캉은 사드적 장면이 윤리적 사유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본다. 그가 말하듯, “사드의 침실은 아카데미, 리케움, 스토아와 동등하다”¹. 사드의 텍스트는 원초적 충동의 혼돈이 아니라 욕망이 법의 형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극명하게 구성하는 판타지적 장치다. 이 장치에서 도덕은 순수한 이성의 법칙이 아니라 주체를 둘로 쪼개는 명령의 구조로 나타난다. 라캉은 이를 “도덕 법칙은 주체의 분열 위에 세워진다”²고 표현한다. 칸트는 감정과 경향성을 배제한 의무의 순수성을 강조하지만, 이 순수성은 결국 타자의 욕망이 지워진 자리에 초자아의 명령이 들어서는 구조와 분리될 수 없다.

칸트의 의무가 도덕의 보편성을 향한다면, 사드의 향유 명령은 쾌락의 보편성을 향한다. 그러나 둘은 그 목표만 다를 뿐, 형식적으로는 동일하다. 사드의 선언—타인의 몸에 대한 무제한적 향유의 권리—는 라캉에게 칸트의 정언명령의 패러디이며 동시에 그 ‘진실’이다. 라캉은 말한다. “사드의 명제는 보통 은폐되는 주체 분열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³. 사드의 잔혹성은 원자아(id)의 무질서가 아니라, 초자아적 명령의 논리적 극한이다.

Judith and the Head of Holofernes.jpg Gustav Klimt - 「Judith and the Head of Holofernes(1901)」


푸코는 권력이 금지가 아니라 쾌락의 생산 방식에 개입한다고 말한 바 있다⁴. 사드적 장면은 바로 이 지점—권력·욕망·법이 서로 얽히는 미세한 지점—을 드러낸다. 바타유가 향유를 “죽음과 접하는 초과(Excess)”라고 규정한 것 역시 라캉의 이해와 깊이 맞닿아 있다. 향유(jouissance)는 충족이 아니라 파열과 분열의 체험이며, 칸트의 도덕 역시 이 분열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초자아를 “가혹하고 잔인한 도덕적 감시자”라고 불렀는데⁶, 라캉은 바로 이 초자아의 구조를 통해 칸트와 사드를 나란히 읽는다.

지젝이 지적했듯 “초자아는 ‘즐겨라!’라는 명령을 통해 주체를 죄책감 속에 가둔다”⁷. 칸트의 의무와 사드의 향유는 바로 이 죄책감의 기제를 공유하는 강제된 즐김의 명령이다. 윤리란 결국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이며, 라캉이 말한 “너의 욕망을 배신하지 말라”는 요청은 쾌락적 방종이 아니라 욕망이 주체에게 부과하는 명령의 구조를 직면하라는 뜻이다. 이 구조 속에서 칸트와 사드는 서로의 반대가 아니라 서로의 진실이며, 윤리는 바로 그 교차점에서 시작된다.


Notes

1. Jacques Lacan, “Kant with Sade,” October 51 (1989), 55.

2. Ibid., 59.

3. Ibid., 60.

4. Michel Foucault, The History of Sexuality, Vol. 1 (Vintage, 1990), 44.

5. Georges Bataille, Erotism: Death and Sensuality (City Lights, 1986), 11.

6. Sigmund Freud,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trans. James Strachey (Norton, 1961), 84.

7. Slavoj Žižek, The Metastases of Enjoyment (Verso, 1994), 54.


References

Lacan, Jacques. “Kant with Sade.” October 51 (1989): 55–75.

Foucault, Michel. The History of Sexuality, Vol. 1. New York: Vintage, 1990.

Bataille, Georges. Erotism: Death and Sensuality. San Francisco: City Lights, 1986.

Freud, Sigmund.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Translated by James Strachey. New York: W. W. Norton, 1961.

Žižek, Slavoj. The Metastases of Enjoyment. London: Verso,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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