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카츠와 현대의 클루아조니즘—평면성의 귀환

by 오경수
Alex Katz - The red smile 1963.jpeg Alex Katz(1927~) - 「The Red Smile」(1963)

1950–60년대 미국 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가 절대적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폴록과 드 쿠닝 같은 작가들은 화면 위에서 감정의 폭발을 추적하며, 원근법과 서사는 더 이상 회화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현을 향한 회화의 오랜 신념이 무너지고, 회화는 평면성이라는 매체 본연의 성질로 돌아가려는 강력한 추세 속에 있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알렉스 카츠는 구상을 포기하지 않은 화가였다. 그러나 그의 구상은 재현적 사실주의가 아니라, 평면 위에서 색과 윤곽이 존재를 결정하는 회화였다.

Edward Lucie-Smith는 카츠에 대해 “카츠의 평면성은 단순한 표면적 특성이 아니라, 개념으로서 정교하게 활용된 평면성이다”¹라고 지적한다. 카츠는 명암과 깊이를 제거하고, 번잡한 묘사 대신 단색 배경과 간결한 윤곽을 통해 대상을 제시한다. 그 결과 그의 인물과 풍경은 더 이상 모사된 실재가 아니라, 화면 위에서 존재하는 표면, 즉 즉시적인 시각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평면적으로 배열된 색면들은 회화의 감각적 언어를 이루며, 그 자체로 하나의 자율적 의미를 획득한다.

Paul Gauguin(1846-1903) - 「Vision after the Sermon」(1888)

이러한 회화적 전략은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굵은 윤곽과 색면으로 사물을 평면화했던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고갱과 베르나르는 윤곽을 칸막이처럼 선명하게 두르고, 색채를 감정과 상징의 기호로 사용했으며, 카츠 역시 색을 사물의 부속물이 아닌 회화의 주체로 다시 세운다. Ewa Lajer-Burcharth는 카츠의 회화를 “형태와 감각의 사전(辭典)”이라 부르며, 색과 형태가 독립적 언어로 기능한다고 분석한다².

Jackson Pollock -  One Number 31 1950.jpg Jackson Pollock(1912-1956) - 「One: Number 31, 1950」(1950)

그는 또한 당대의 미술 담론이 과도하게 미학적 이론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치우치던 상황 속에서, 여전히 ‘사람’과 ‘장소’를 그리는 회화를 선택했다. Cathleen McGuigan은 카츠가 “추상표현주의의 정점에도 불구하고, 대상과 현실을 그리는 화가였다”³고 말한다. 카츠는 구상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예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혔다. 누구나 “저것은 사람이다, 저것은 풍경이다”라고 확인할 수 있는 윤곽의 명료함은 회화를 다시금 공유 가능한 감각의 장으로 복귀시킨다.

그런 점에서 카츠는 회화사의 오래된 대립—구상과 추상, 재현과 평면성—을 무력화한다. 그는 구상을 단순히 고수한 것이 아니라 구상을 도구로 삼아 평면성을 실현했고, 평면성을 통해 구상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그린버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평면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거나 창출하는 것이다”⁴라고 말했을 때, 많은 화가들은 그 명령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해 추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카츠는 그린버그의 논리를 수용하면서도, 회화가 대상과 세계를 향한 시선을 잃지 않도록 구상을 남겨두었다. 즉, 그는 매체의 본질을 포기하지 않는 동시에, 현실의 표면을 회화로 호출해낸다. 그렇게 카츠의 화면은 회화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요구—평면성과 재현—을 하나의 장치 안에서 충족시키며, 평면성의 개념을 더 넓고 유연하게 확장한다.

알렉스 카츠_blue umbrella 1972.jpg Alex Katz(1927~) - 「Blue Umbrella I」(1972)


특히 아내를 그린 에이다 연작에서 이 특징은 두드러진다. 에이다의 감정은 과잉되지 않지만, 응시와 색면과의 관계 속에 차가운 친밀성(cool intimacy)이 응축되어 있다. Robert Storr은 “카츠는 에이다를 통해 일상의 정서를 평면 위에서 영속화한다”⁵고 분석한다. 감정이 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면 위에서 형식을 통해 정제되어 드러난다. 카츠의 평면은 얕거나 단순하지 않다. 평면이 곧 감정의 깊이를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결국 알렉스 카츠의 회화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 회화의 역사 속에서 독특한 지점을 차지한다. 그는 클루아조니즘이 남긴 평면적 조형 언어를 현대적으로 계승했으며, 추상과 구상을 넘어 회화를 다시금 보는 행위의 기쁨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의 회화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평면은 단순한 표면이 아니라, 존재가 도착하고 머무르는 자리이며, 깊이가 표면 아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면 속에 스며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렉스 카츠는 바로 그 평면의 귀환을 간명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완성한 화가이다.


Endnotes

1. Edward Lucie-Smith, “Alex Katz Drive-by Art: An Exploitation of Flatness,” Artlyst, June 10, 2016, n.p.

2. Ewa Lajer-Burcharth, Alex Katz: Abecedarium of a Style, 2022, p.4.

3. Cathleen McGuigan, “Alex Katz Is Cooler Than Ever,” Smithsonian Magazine, August 2009, n.p.

4. Clement Greenberg, “Modernist Painting,” Art and Literature 4 (Spring 1965): p.193–194.

5. Robert Storr et al., Alex Katz Paints Ada (New York: The Jewish Museum / Yale University Press, 2006), p.22.


References

Greenberg, Clement. “Modernist Painting.” Art and Literature 4 (Spring 1965): 193–201.

Lajer-Burcharth, Ewa. Alex Katz: Abecedarium of a Style. 2022.

Lucie-Smith, Edward. “Alex Katz Drive-by Art: An Exploitation of Flatness.” Artlyst. June 10, 2016.

McGuigan, Cathleen. “Alex Katz Is Cooler Than Ever.” Smithsonian Magazine. August 2009.

Storr, Robert, et al. Alex Katz Paints Ada. New York: The Jewish Museum / Yale University Pres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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