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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Jan 14. 2022

미(美)의 지각

변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일지도

비너스의 탄생(1486) by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

  언제부터인가 미술품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과거에는 왜 미술품을 보러 가고 소장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예전에는 몬드리안, 바스키아, 로스코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작품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오히려 예술이라는 탈을 쓴 사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바스키아는 그냥 낙서를 한 것이고, 로스코와 몬드리안은 그저 기하학적인 패턴에 불과했다. 심지어 일부 추상화들은 작품명이 숫자이거나 '무제'인 경우도 많아서 나는 현대미술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미술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자료들을 찾고,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미술을 공부했다. 거창하게 파고든 것은 아니고 취미로 얕게 공부했다.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생기니 과거에 허접하다고 생각하고 본 작품도 다르게 느껴졌다. 왜 그 그림이 더 아름답게 보였을까? 에곤 쉴레가 무덤에서 부활해서 리터치한 것도 아닌데, 작품은 그대로 전시만 되어있었는데 왜 다르게 보였을까?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평소와 같은데 다른 느낌

  오랜만에 본 누군가를 만났을 때 혹은 당연하고 익숙했던 무언가가 달라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오랜만에 본 누군가는 스타일을 바꿨거나 표정이 평소와 달라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고, 늘 보던 당연하던 풍경도 평소와 다른 계절에 보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변화 없는 무언가가 다르게 보일 때도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경우에는 나 자신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닐까? 보이는 객체는 그대로인데 감각하는 주체가 다르게 느낀다면 당연히 주체에게 변화가 생긴 것일 거다. 아니면 감각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없었던 왜곡이 있었을 수도?


아는 만큼 보인다

  어떤 책에서 한 문장을 보았는데, 어떤 철학자가 한 말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용은 그대로 기억할 정도로 인상적인 말이었다. “보이는 것은 망막에 맺히는 것 이상이다.” 한국에서 비슷한 말로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두 문장이 관통하고자 하는 점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시신경 외의 다른 것(심리, 관심사 등)의 영향도 받아서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코를 중점으로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눈을 중점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전자는 지인이 렌즈를 끼고 나오면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후자는 단번에 알아볼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관심사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같은 사물 혹은 사람을 본다.

해골 혹은 두 소녀와 강아지로 보이는 사진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

  사물의 경우에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고칠 수도 있고 없애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못한다. 사물은 인간에게 그저 객체일 뿐이지만, 인간에게 인간은 존중해야 하는 하나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사물은 내 마음대로 되지만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일까? 우리는 같은 집단 내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하다. 그 사람과 같이 어떤 일을 해내야 하는데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같이 일을 하다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는 그 사람을 쫓아낼 수 없다. 그래서 일을 마무리하고 집단이 해체될 때까지 내가 참거나 그 사람과 적당히 타협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일이 잘 끝나도 십중팔구는 마음에 들지 않던 그 사람을 손절할 수도 있다.


  같은 집단 내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A라 칭하고, A의 절친을 B라고 해보자. 나에게 A는 그냥 나쁜 새끼일 수 있지만, B에게는 비밀을 털 수 있고, 좋은 일을 서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친구 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와 B는 같은 A라는 대상을 다르게 볼까? B는 A와 일을 같이하는 사이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고, 내가 A와 같이 노는 사이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 즉, 자신이 본 A의 일부분이 자신이 본 A의 모든 면이 이기 때문이다. 밤에만 깨어있는 사람에게 하늘은 그저 칠흑 같은 어둠일 뿐이고, 낮에만 깨어있는 사람에게 하늘은 새파란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한 모습만 보지 않는다. 같이 일을 하더라도 퇴근 후에 회식자리에서 전혀 보지 못한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A가 변해서 내가 싫어하는 습관을 버릴 수도 있고, B에게 A에 대한 사연을 들어서 그의 단점을 이해할 수도 있다. 또한 나라는 주체의 시각이 변해서 그대로 있는 A를 예전과 정말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사물과 사물은 평생 사물일 뿐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내가 변화하거나 혹은 타인이 변화할 수도 있다.  변화로 우리는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아닐까? 아름다운 누군가나 무언가를 프레임으로 인해 놓치고 있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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