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첫 학기를 뒤돌아보며
철학과에서의 첫 학기가 막을 내렸다. 6월 21일에 윤리학 기말고사를 끝으로 4학년 1학기를 마쳤다. 모두가 걱정하고, 나조차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던 전공이었는데, 나름 한 학기를 잘 보낸 것 같다. 도서관에서 1학기 마지막으로 책을 대출했는데, 이번 학기에 27권을 총 대출했다. 개인적으로 구매한 책도 있고, 대출한 책만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30권 이상을 읽었을 것이다. 작년에 비해 글은 많이 못썼지만, 독서량은 훨씬 늘었다. 성적도 3학년 2학기보다 1.0 정도 올랐다. (지난 학기에 철학책을 읽느라 전기공학 강의에 소홀히 해서 그런 것 때문이다. 물론 이번 학기도 열심히 했다.) 독서량은 대출기록으로 확인이 가능하며, 내가 얼마나 시험을 잘 봤는지는 학점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대출량과 학점을 보면 나름 열심히는 산 것 같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내 회고를 통해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Q : 이번 학기에 나는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가?
A : 나름 열심히 살았다. 복습은 하다가 말았지만, 예습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딴 짓은… 안 했다. 가끔 멍 때리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아주 가끔이었다.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수업방식에 멍 때릴 틈도 별로 없었고, 강의를 따라가고 싶어서 예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강의가 토론방식으로 진행이 되고, 모든 강의에서 발표를 요한다. 그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발표 후에 질의응답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 예습은 성실히 했다. 하지만 복습을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예습을 했기 때문에 강의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예습을 미리 했기 때문에 강의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익숙하게 느껴져서 집중이 더 잘됐다. 고로 예습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지만, 복습까지 했다면 완벽했을 것 같다. 예습만 하는 것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복습은 따로 하지 않았는데, 만약 복습까지 했다면 같은 내용을 세 번 머릿속에 넣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던지 내 지식을 만들었을 텐데 다소 아쉽다. 특히 서양 철학사 같은 암기 과목을 만약 복습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얻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더 많은 성취감을 얻었을 것 같다.
사실 학기 초에 내적 갈등이 좀 있었다. 학교 공부에 나를 맞춰야 할지 혹은 학교 공부는 그저 걸쳐두기만 하고 내 철학을 키워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 내린 결론은 학교 강의는 적당히 참여하면서 내 철학에 참고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파르메니데스, 판타 레이, 스토아학파 등 내가 전혀 모르던 것들을 강의를 통해서 배웠다. 그래서 그것들을 디벨롭해서 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서 좋긴 하지만, 내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더 많은 것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Q : 고쳐야 할 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A : 나름 만족한 한 학기였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습의 부재가 나름 안타깝다. 그뿐만 아니라 강의에 임하는 태도 또한 나의 고쳐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태도에서 크게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자꾸 시계를 보면서 쉬는 시간이나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태도다. 강의 중에 시간을 보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강의 중간에 휴대폰을 볼 수도 있고, 시계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너무 자주 본 것 같다. 거의 3분에 한번 꼴로 시간을 체크하고 얼마나 남았나 체크한 것 같다. 이게 과연 공부하고 싶어서 복수 전공하는 학생의 태도가 맞나 싶다. 그리고 그만큼 시간을 많이 본다는 것은 그만큼 강의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학기에는 시간을 적게 보고 강의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 문제점은 질문에 관한 것이다. 나는 질문을 너무 안 했다. 철학과는 거의 토론식으로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질문을 통해 강의에 참여한다. 그래서 강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예습을 미리 해오고,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예습은 늘 해왔지만,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질문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하는 자기 검열 때문에 내가 생각해 놓은 질문들이 대부분 내 입 밖으로 발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질문을 던지면 수준이 낮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 때문에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냥 생각이 없어서 질문을 안 한 것과 질문을 하고 싶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못 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다음 학기에는 자기 검열 없이 질문하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Q : 방학에 계획은 있는가?
A : 일단 졸업논문을 작성할 것이다. 이번 방학에 논문을 완성해야 학교생활이 좀 편할 것 같다. 또한 독서를 다양하게 해 볼 계획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책들을 떠올려보니 난 너무 철학서적만 읽는다. 한 분야를 열심히 파는 것은 좋지만, 앞만 보느라 옆을 보지 못하는 느낌이다. 나는 내가 철학자 이전에 인문학자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흔히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이라는 삼위일체를 골고루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뼈가 움직이기 위해선 근육이 필요하고, 근육이 움직이려면 뼈가 필요하다. 이처럼 철학만 공부한다고 내 사유가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다. 문학과 역사 지식이 어느 정도 바탕이 되어야 내 철학적 사유 또한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외국어 공부도 하고 싶다. 내가 주로 공부하는 분야는 서양철학이다. 그래서 내가 읽는 책들이 해석본이 아닌 번역본일지라도, 나는 작가의 온전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번역가라는 사람을 통해서 작가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는 셈인 거다. 그래서 요즘에 원어로 된 서적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영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는 영미권이 아니라 프랑스 철학자다. 그래서 나는 불어의 필요성을 요새 많이 느낀다. 영어는 의무교육과 사교육을 통해서 익숙한데, 불어는 그렇지 않아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한 학기 고생했다. 나 자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