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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Dec 01. 2021

예술은 학문인가?

입시라는 틀에서 획일화된 예술

옥승철 작가의 작품들

예술은 우리 일상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가 듣은 음악도 예술이고, 지나가다 본 회화나 조각들도 예술 작품이다. 그래서 이러한 접하기 쉬운 여러 형태의 예술을 다루는 학과들도 있다. 실용음악과, 음악과, 회화과, 무용과 등등 전국에는 예술을 다루는 다양한 학과(학교)들이 많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예술을 전공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수 많은 예술가들이 배출되고, 누군가는 학벌상관 없이 예술을 하지만, 누군가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예술로 입시를 준비한다. 그렇지만 입시를 지원하는 모두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는 없다.

서울예술대학교 2022 수시 경쟁률 (출처 : 진학사 스마트경쟁률)


위의 사진처럼 경쟁률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재수생, N수생은 넘쳐나고, 중간에 포기하는 입시생도 많다. (필자는 자퇴했지만 실용음악과 기타전공 출신이기에 실용음악 입시가 익숙하다. 이하부터는 실용음악을 예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우리나라 최고 예술대학답게 경쟁률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실용음악과 보컬전공을 예로 들어보면 347명 중에 1명만이 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 이 학교에 가려면 대체 얼마나 잘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준비했길래 나머지 사람들을 제끼고 합격을 했을까?


예술은 자기 주관을 표현 또는 표출하는 행위라고 나는 정의한다. 따라서 뛰어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예술세계 혹은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예술입시(이하 입시)는 어떠한가? 지나치게 객관화 되어 있지 아니한가?


2014년 10월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기타전공으로 실용음악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음악계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를 매일하고 대세를 좇으려 하루 10시간 이상 노력했다. 비록 상위권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원하는 대학을 한번에 붙었다. 나는 왜 상위권 대학을 가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한 입시생들은 상위권 대학에 갔을까? 나는 마인드 혹은 태도가 가장 큰 차이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예술가(혹은 음악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나를 그저 ‘기타 입시생’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러나 입시에서 좋은 대학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입시생들도 그랬을까? 그들의 마인드를 보면 스스로를 예술가, 기타쟁이, 음악가 등으로 칭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갈고 닦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그저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 뿐이고, 그들은 스스로 예술을 연구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나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수학공부 하듯이 기타를 연습한 것이었다.


나는 입시를 하면서 그리고 입시 후에도 여러 선생님께 배웠다. 그리고 그 선생님들은 너무나도 성향이 다르고 교육방식도 다르셨다.

첫번째 선생님은 서울대 공대를 나오시고 스스로 기획사를 찾아다니며 음악을 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실용음악에 정통하신 분이라기 보단 정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가에 가까운 분으로 나는 기억한다.

두번째 선생님은 최상위권 실용음악과를 나오시고 여러 장르를 정석(?)에 가깝게 연주하셨다. 수업자료도 굉장히 다양하고 방대하게 가지고 계셨다.

세번째 선생님은 내가 입학한 대학 교수님이시다. 이름 석자만 대면 모르는 뮤지션이 없을 정도로 대단하시고 내가 제일 존경한 분이다.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그 분으로 인해 음악가의 ‘마인드’에 대해 생각해 본 것 같다.

네번째 선생님은 한국 락 씬(Rock Scene)에서 유명한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셨고, 선생님 본인의 연주음악으로도 유명하신 대단한 분이셨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셨고, 본인의 명성에 대한 자부심때문인지 비교적 보수적이셨다.(여름에도 가죽바지를 입으셨다…)

다섯번째 선생님은 연주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시기보단 음악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신 분이셨다. 그 분에겐 기타보다 음악을 배워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기도 하다.


다 대단하신 선생님이셨다. 그 분들로 인해 나의 실력도 많이 상향되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추구하시는 방향이 각각 다르셔서 약간 혼동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피킹이었다. 피킹이란 피크로 기타줄을 튕기는 연주방법으로 거의 모든 연주는 피킹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술을 나는 선생님이 바뀔때마다 바꾸려 노력했다. 덕분에 많은 방식의 연주가 가능해졌고, 나만의 피킹방법을 연구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들 마다 추구하시는 장르 또한 달랐다. 대학교 교수님은 가장 기타스럽고(?) 기본적인 블루스(Blues)와 펑크(Funk)를, 네번째 선생님께서는 화려한 속주스타일의 락(Rock)과 메탈(Metal)을, 다섯번째 선생님께서는 가장 음악적인 재즈(Jazz)와 펑크(Funk)를 강조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다방면의 연주를 골고루 향상시킬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다섯분 중에 한분에게만 기타를 배웠다면 내 연주와 마인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 한명의 선생님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라 생각하고, 음악에 정석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연주한다면 잘못된 연주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명한테 기타를 배우던 백명에게 기타를 배우던지 기타 연주에 정석은 없다. 기타연주에 정석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음악을 예술이라고 칭하겠는가? 하지만 입시세계에는 정석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왜 입시에 정석이 생긴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에 합격자의 입시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얻기 힘든 답을 얻어야할때 누군가 답을 정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입시학원이 돈을 벌고, 사교육 시장이 커진 것이다. 자기만의 주관을 가져야하는 예술가들이 경쟁에 치여 획일화된 객관적 실력만 추구한다면 과연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까? 기술자라고 불러야 맞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의 예술가를 양성하는 예술대학교들의 입시가 오히려 미래의 예술가들을 자신의 예술을 마음대로 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예술에 객관적인 정답은 없지만 객관적인 기준은 있다. 최소한의 실력(기본기)의 수준을 나는 그 기준으로 본다. 그리고 그 객관적인 수준을 초월하면 주관적인 창작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예술이란 객관(모방)을 초월한 주관(창작)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지금 ‘예술의 정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입시 트렌드’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 예술에 객관적인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다면 ‘음악’이 아니라 ‘음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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