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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Oct 26. 2022

사색의 향기

향기 없는 사회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화

  친구가 책을 빌려줬다. 이름은 알지만 사상은 잘 모르는 철학자인 한병철의 책인 『시간의 향기』를 빌려줬다. 한병철이라는 철학자는 올해 9월에 알게 되었다. '독일 철학과 실천'이라는 과목에서 듣게 된 이름이다. 그래서 그의 책인 『피로사회』는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에 읽고 싶은 책이 많았던 나는 기존에 읽고 싶은 책을 읽느라 한병철 씨의 책을 읽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이 책을 빌려주면서 한병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상기되었다. 이 책『시간의 향기』는 『피로사회』바로 전에 나온 책인데, 이 책을 다 읽은 김에 그다음에 쓰인 피로사회도 읽어봐야겠다. 아무쪼록 좋은 책 빌려준 홍 씨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몇 주 동안 사색할 시간 혹은 철학할 시간이 없었다. 읽고 싶은 책도 못 읽고, 시험과 발표에 치여살았다. 그래서 눈뜨고 눈 감을 때까지 정해진 공부만 하고,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학기는 저번 학기와 다르게 혼자보단 우리로써 지내게 되었다. 강의가 있는 날에는 학과 친구들과, 강의가 끝난 후에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다녔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난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회의감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었고,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글이 좀 뜸했다. 책도 읽지 않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산책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다시 예전처럼 살아보려고 노력 중인데,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사색할 시간을 잃었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시간에 향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색적인 삶(vita contemplativa)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마침 사색의 필요성을 느낀 나로서는 더욱 와닿는 책이었다. 나는 사색을 하지 않으면 뭔가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뭔가 놓치는 것 같고, 헛사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최소한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에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등 나 자신을 정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시간이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나 자신을 성찰할 시간이 없어서 내가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 이 험한 세상을 걸어가듯이.


  우리는 너무나도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카카오톡 계정 하나만 있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무언가에 굉장히 기대어 살고 있다. 그 편리함은 우리에게 편리함 자체를 주지만, 아무 대가를 가지가지 않는다고 우리는 착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내주면서 그 편리함을 얻는 것이다. 정작 편리함을 이용하면서 자신을 내주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내준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풍족하고 편리한 삶을 살지만, 과연 우리의 물질 외의 정신적인 부분도 풍족하고 건강할까? 


  컴퓨터가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스마트워치까지 등장했다. 이제는 스마트 글라스까지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이처럼 디지털 디바이스는 점점 더 작아지고, 우리가 착용하기 편리한 형태로 진화한다. 예전에 컴퓨터는 우리가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그 기능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체감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린 컴퓨터(태블릿 PC, 스마트워치, 스마트폰 등 포함하여)를 필요하지 않아도 사용하고, 그 기능이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체감한다. 결과적으로 사용빈도는 대폭 상승하고, 그 중요도는 줄었으며,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 된 것이다. 대표적인 그러한 예시가 카카오톡인데, 몇 주 전에 서버에 이상이 생겨서 온 국민이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 카카오라는 기업 하나 때문에 나라 전체가 불편을 겪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뭘까?


  그것은 아마 우리가 창조한 디지털에 우리가 너무 의존한다는 팩트일 것이다. 우리는 카카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밖에 될 수 없는가? 인류가 축적해온 놀라운 기술력과 과학이 카카오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인류는 무능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보통 사람들은 무능하다. 그저 알고리즘을 따라가며 취향을 만들고, 화면만 바라보고 원초적 쾌락만 찾는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지인의 전화번호는 가볍게 외웠다. 그때는 메모장에 적어놓은 번호를 찾는 것이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번호를 머릿속에 저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안에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논문, 책, 소프트웨어 등 수많은 것들이 저장 가능하다. 과거엔 편리함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독립적인 능력을 가졌다면, 현재에는 편리함을 얻은 대가로 우리의 독립적인 능력을 디바이스에 헌납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기에만 의존할 뿐 independent 한 활동이 전무후무하게 불가능한 사회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independent 한 활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가장 독립적이고, 예속되지 않는 생각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사색일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이 편한 기기들 없이 살 수 있었겠냐고 묻는 바보들은 아마 사색할 능력이 없고, 기술에 의존하는 주체성을 상실한 바보들일 것이다. 그 바보들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멍청이겠지? 흘러 보내는 시간에서 아무 향기가 나지 않는 현대사회에 사색이라는 향수를 뿌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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