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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Dec 10. 2022

꿈과 도취

Apollon and Dionysos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과연 인간은 손 닿을 듯 말듯한 이상을 추구하는 점진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현실에 도취하는 존재일까? 사실 둘 다 하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현재에 뭔가 이룬 게 있어야 도취를 하겠고, 도취라는 것을 할 줄 알아야 꿈도 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꿈꿔야 하고, 어디까지 현실에 만족해야 할까? 전에 내가 쓴 글 중에 자기 주관화의 필요성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거기에선 세상에서 모두가 나를 미워해도 오직 본인만은 본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글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에 쓴 그 글은 자기도취에 대한 글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난 뭔 얘기를 하려고 오늘은 도취와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가 이제부터 얘기해보려고 한다.


  맨날 언급하는 이론인데, 니체는 예술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로. 전자는 정적이고, 조형미 있는 예술을, 후자는 동적이고, 음악과 같은 예술을 상징한다. 그리고 아폴론적 예술은 사람들을 개별자화하고,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대중의 개별자화를 해체한다. 따라서 둘이 정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폴론은 꿈의 충동을, 디오니소스는 도취의 충동을 가진다. 이 충동이라는 말의 의미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디오니소스는 '도취' 그리고 아폴론은 '꿈'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인다. 니체의 미학에서 이 글 처음과 제목에서 언급한 꿈과 도취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요새 이상과 현실에 대해 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지금의 현실에 도취해도 되는지, 나는 맞게 살고 있는 건지 고민을 좀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염세적인 이 세상에서 나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갈대와 같은 존재라서 인간, 사건, 물질, 사상 등 여러 가지 세속적인 것들에 의해 휘둘린다. 특히나 자본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는 태풍과도 같아서 갈대는 그저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도 우직한 소나무 같은 사람은 그 태풍에도 끄떡없다. 나는 갈대에서 소나무가 되기 위해서 철학을 공부하나 보다. 주로 내가 쓰는 글과 생각들의 원천은 부정적인 생각들과 고민이다. 남들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고, 현실을 즐기며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미셸 푸코, 니체, 하이데거와 같은 거장들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많이 이겨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은 사유를 '꿈'으로 삼고 나를 기투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경지를 꿈꾸며, 그 경지를 행복으로 삼으며 나를 가혹하게 대했다. 만족이란 없고, 내 시야는 항상 위를 향했다. 승마를 할 때 말에게 계속 채찍질을 한다면 그 말은 아마 끊임없이 달릴 것이다. 자신이 아프기 때문에, 아프지 않기 위해서 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현실 나 자체로서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내 모습에서 만족을 느꼈다. 일 년에 책을 70권 가까이 읽고, 매일 새벽까지 독서하고, 공부하는 내 모습에서 나는 만족을 느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진리에 도달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꿈의 대가는 쓰면서도 달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꿈보단 도취를 더 추구하게 되었다. 미래의 철학자 나 자신을 위해 공부하기보단 현실의 학생인 나 자신을 위해서 꿈보단 도취를 취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멀리만 있는 줄 알았던 행복이라는 것도 느끼고, 어쩌면 현실에 도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취의 삶을 이어가던 와중에 갑자기 현타가 왔다. 행복을 느끼니 사색을 하지 않고, 나의 목표를 잊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와서 철학을 공부하는지 잠시 잊었었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놀 수 있을 때 놀라고, 이러라고 인생이 있는 것이라고. 


  맞다. 인생의 텔로스 중에 하나는 분명히 유희와 도취다. 하지만 꿈이 없는 도취는 바보이고, 도취 없는 꿈은 기계와 같다. 그래서 나는 바보도 아닌 기계가 아닌 무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지성인이 되려고 결심했다. 지성인이 되어서 나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을 적절히 조절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인생은 꿈을 꾸려고도 있지만, 현실에 만족을 느끼려고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두 가지를 함께 누리려고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너무 나에게 가혹하다. 항상 모 아니면 도인 인생을 산다. 모 아니면 도인 인생을 살기에 좋은 점도 있지만, 삶의 균형이 없다는 단점이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디오니소스를 부활시키고, 나의 아폴론에 맞서게 해야겠다. 레비스트로스였나 롤랑 바르트였나 아무튼 포스트모더니스트였는데, 그가 말하길 세상은 이항대립 구조라고 한다. 있음이 있으면 없음이 있듯이, 반대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근데 나는 그 필연을 거슬러고 발악한 떨었나 보다. 그냥 나의 자연스러운 정념을 받아들이고, 도취와 꿈을 둘 다 이루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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