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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Jan 31. 2023

재귀대명사와 형이상학

Me, myself and I

르네 마그리트 - 중산모를 쓴 남자(1964)

  가끔 노래 이름은 모르는데 자꾸 기억에 남는 노래가 있다. 나는 그런 노래가 생기면 가사를 검색해서 그 노래의 제목을 꼭 알아낸다. 만약 가사를 못 알아듣겠거나, 연주곡인 경우에는 음성 검색을 통해서 그 노래를 찾는다. 최근에도 그러한 사례가 있었는데,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겠지 했다. 왜냐하면 내가 듣기에 그 가사는 문법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주어와 목적어가 같은 사람인 경우엔 목적어 자리에 목적격이 아닌 재귀대명사가 와야 한다고 나는 배웠다. (10여 년 전에 배웠기 때문에 내가 틀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노래는 재귀대명사가 아닌 목적격 형태로 목적어를 취했다. 그래서 문법충인 나는 좀 불편했다. 물론 시적 허용일 수 있지만, 나는 문법 틀린 영어를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I can't stop me." 이 가사가 그 문제의 가사이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I can't stop" 다음에 "me"가 아닌 "myself"가 와야 한다. 왜냐하면 'I'와 "me"는 1인칭 명사인데, 이 둘은 같은 한 문장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엔 "me"가 아니라 "myself"가 와야 한다고 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트와이스는 myself가 아닌 me를 가사에 썼을까? 그래서 나름 몇 가지 추측을 해보려고 한다. (그냥 재미로 추측하는 것이며, 별 의미도 없고 도움도 안 될 것이다.) 나는 크게 3가지 이유를 근거로 들어보겠다. 시적 허용, 솔로가 아닌 그룹이라는 팩트 그리고 나와 내가 일치하지 않는 형이상적 고찰. 


  myself가 아닌 me로 가사를 쓴 첫 번째 가설은 시적 허용이다. "I can't stop me."는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니고 노래 가사이다. 따라서 박자와 멜로디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내가 대충 흥얼거려 보니 "I can't stop me."가 "I can't stop myself."보다 부르기 용이하며, 노래에 더 어울린다. me가 아닌 myself로 가사를 썼다면 아마 그 파트를 맡은 멤버는 발음하기도 쉽지 않고, 노래 부르기 바빴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문법을 무시하고 재귀대명사(myself)가 아닌 목적격(me)을 썼다는 것이 내 첫 번째 가설이다. 그리고 노래 이름을 발화할 때도 재귀대명사를 쓰지 않는 것이 더 입에 잘 붙는 것 같다. "아이 캔(트) 스탑 미"가 "아이 캔(트) 스탑 마이셀프"보다 짧고 발음하기 더 편하다. 그래서 대중성과 가수의 편의를 위해서 문법을 어긴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추측이다. 아무래도 발음하기 어려운 것보다 발음하기 쉬운 것이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두 번째 추측은 트와이스가 솔로 가수가 아닌 걸그룹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해보려고 한다. 트와이스는 9명의 멤버가 있는 다국적 그룹이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단일한 무언가가 아닌 상호적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서 "I can't stop me."를 해석해 보자면, "내가 나를 멈출 수 없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저 문장을 허용하기 위해선 우리가 나여야 하고, 내가 우리여야 한다. 즉, "We"와 'I'가 일치해야 한다. 9명이 하나로 묶일 수 있어야 가능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시 저 문장을 해석해 본다면, "나(A)는 나(B)를 멈출 수 없다."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A와 B는 같지만 다른 주체이다. 한 집단 아래 속해있어서 같은 존재이지만, 둘 다 주체성을 가진 다른 존재이다. 그래서 같으면서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하나의 집단은 하나의 의사를 표명할 때 '나'의 입장이 아닌 '우리'의 입장을 표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에 1인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추측은 허점이 생겨버린다. 드래곤볼에서 셀이 인조인간들을 흡수하는 것처럼 하나가 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표현은 걸그룹이 할만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추측은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위의 두 번째 추측은 형이하학적인 이유에서 여럿이 하나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즉, 그룹의 연대와 단합을 고려해서 그들이 하나라는 테제를 먼저 세우고 추측을 했다. 하지만 세 번째 이유는 다르다. 세 번째 추측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이용할 것이다. 


  우리 모두 자신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는 형이하학 혹은 물리적으로 자명하며,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혹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하나의 인간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의 인간은 여러 자아의 교집합으로써 형성된다. 학생으로서의 '나', 부모님의 자식으로서의 '나', 누구의 친구로서의 '나', 지역 주민으로서의 '나'가 중복되고 겹쳐서 교집합을 이룰 때 내가 정의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여러 상이한 담론들의 교집합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학교에는 나 말고도 학생이 많다. 그래서 나의 존재는 학교만으로 정의될 수가 없다. 그리고 만약 내 동생이나 형이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면 두 개의 담론의 교집합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형제도 있게 되므로 그건 나의 존재를 정의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무수한 담론들의 교집합으로서만 우리 인간이 주체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계속 거르고 거르다 보면 누구든 혼자만 그 교집합에 남게 될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인간이 형이하학적으로는 하나지만, 형이상학적으로는 여럿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널리 알려진 이론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자아를 초자아, 자아, 원자아로 나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나는 모범적인 초자아와 그 중간에 있는 자아와 원초적 욕망을 추구하는 초자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I can't stop me."는 더 이상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에 저 문장은 원자아는 초자아를 막을 수 없다는 말일 수도 있고, 초자아는 원자아를 막을 수 없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세 번째 가설은 또 다른 나가 나 자신을 막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또 내가 또 다른 나를 막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추측이다. 


  트와이스의 이 노래 가사를 정확하게 추측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뮤비도 보고 다른 가사도 봐야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저 한 줄의 가사만을 다뤘다. 그래서 어떤 가설이 더 현실적이고 진실에 가까운지 나는 모르겠다. 만약에 내가 사전조사를 다 하고 이 글을 썼다면, 저 세 가지 가설 말고 다른 가설이 나왔을 수도 있고, 개수도 달랐을 수 있고, 아니면 조사 중에 납득이 되어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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