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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Feb 13. 2023

모드 전환

철학자 모드와 인간 모드

  최근에 사는 방식에 조금 변화를 주었다. 원래는 11시 넘어서 기상하고, 학교에서 학식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공부를 자정까지 하고 2시까지 빈둥대다가 잠에 드는 것이 원래 내 일상이다. 그야말로 일어나서 밥 먹고 철학, 저녁 먹고 철학, 쪼금 놀다 취침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기존에는 너무 공부만 해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쉬는 시간마저 내게 없었다.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책만 보고, 유튜브도 철학에 대한 것만 시청했다. 그래서 느낀 게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였다. 쉬는 날도 없이 공부하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스스로 회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우려도 좀 생겼다. 맨날 앉아서 책만 뚫어져라 보고, 몸은 전혀 쓰지 않는 게 과연 나에게 이로운지. 이렇게 공부만 한다고 효율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루 이틀 철학을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는 게 과연 효율적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나에겐 워라밸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작년에 아는 교수님이 내게 말하셨다. "경수씨는 너무 스스로한테 가혹해요. 그러지 말아요." 그 당시에는 그런 발언이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공부를 내가 열심히 하는데 이게 정말 가혹한 건가? 대학원까지 가고 푸코 같은 학자가 되고 싶은 나에게 이러한 일상은 당연한 거 아닌가?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미셸 푸코의 박사논문인 '광기의 역사(1961)'만을 정독하고 또 읽고, 정리하던 1월에 현타가 왔다. 내가 코피까지 쏟으면서 이렇게 공부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라는 인간은 철학기계가 아니라 사유하고, 즐기고, 어떤 미학적 존재인데, 나는 마치 논리기계인양 철학만을 공부하는 것 같았다. 맨날 글을 쥐어짜 내며 강박적으로 철학을 하는 내가 과연 탈예속화된 주체인지 아니면 철학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인지 혼동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이론의 배당만을 가꾸고, 실생활 혹은 현대사회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세상에 기투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철학적 혹은 미학적 주체답지 못하다. 백날 글쓰기를 연습해서 뭐 하나, 글을 쓸 소재가 없으면 말짱 꽝이다. 그래서 공부 말고 내 생활을 좀 더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침에 헬스를 하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때 집에 돌아와서 공부는 아예 건드리지 않고 노는 일상을 살아보았다. 그 결과, 체력도 좋아지고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저녁을 먹고 유튜브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고, 산책도 하니 뭔가 삶에 더 윤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전보다 사유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사색에 빠지지 않게 되고, 일주일에 하나씩 꾸준히 글을 쓰던 습관도 사라지게 되었다. 


  내 기존 사유를 1이라 하고, 사유를 하지 않음을 0이라 한다면, 나는 0.5라는 중간점을 찾은 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0.5의 삶은 뭔가 애매하다. 책은 읽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안 하고, 진도만 나가는 중학생 같다. 그렇지만 1의 삶은 너무 힘들다. 하루 종일 난해한 철학책들만 보면 내가 철학을 하는지 철학이 나를 가지고 노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과연 이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나는 0.75 혹은 0.8의 삶을 살려고 한다. 0.5는 나에게 자극을 덜 주고, 나에게 부족한 삶이다. 그래서 0.5와 1 사이에 다시 워라밸을 찾아서 0.5보다 더 열심히 철학을 해보려 한다. 이렇게 변증법적으로 계속 삶에 대한 생각을 하며 고쳐갈수록 내 인생은 더 나에게 알맞은 삶을 살게 하지 않을까?  무튼 앞으로는 글도 더 자주 쓰고 싶고, 철학이라는 감옥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잔디밭에 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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