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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Feb 15. 2023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L'Histoire de la sexualité 1

미셸 푸코(1926~1984) -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1976)"

  솔직히 쉬울 줄 알았다. 자신 있었다. 작년에 한번 읽은 적이 있기에. 하지만 어려웠다. "광기의 역사(1961)"을 두세 번 읽고, "감시와 처벌(1975)"도 두어 번 읽었기 때문에 광기의 역사의 4분의 1 정도의 분량인 이 책은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렵고, 핑계를 대자면 약속이 않아서 며칠은 이 책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 짧은 173페이지짜리 책을 읽는데 6일이나 소비했다. 그래서 왜 그토록 미치게 어렵다는 "광기의 역사(1961)"는 이해하면서 이 소논문같이 얇은 책은 이해를 못 하나 고찰을 해봤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강독영상이 별로 없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은 많은 강독 영상을 보았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한 것이다. 아니 이해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저 남들이 짜준 액기스를 마시며 마치 내가 직접 모든 지식을 습득한 것처럼 자화자찬했다. 물론 강독 영상이 도움은 되었지만, 강독영상에 예속되면 강독 영상이 없는 책은 읽기가 어려워질까 봐 덜 의존해야겠다는 생각이 이번 기회에 들었다. 


'권력의 계보학'시기의 마지막 작품

  푸코의 연구는 크게 세 개로 (초기, 중기, 말기로) 구분된다. 초기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광기의 역사(1961)"을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부터, 1968년 '68 혁명' 전까지 이며, 이때 푸코의 연구를 '지식의 고고학'이라고 칭한다. 주요 저서로는 "광기의 역사(1961, 박사논문)",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등이 있다. 그리고 프랑스 68 혁명을 계기로 푸코는 '권력의 계보학' 시기로 넘어가게 되며, 전기와는 다르게 니체와 같이 계보학을 이용해서 권력을 해체한다. 이 시기 주요 저서로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연설문인 "담론의 질서(1971)",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1976)"등이 있다.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을 출간하고 몇 년 동안 책을 내지 않았다. 푸코는 에어즈에 걸려 사망한 철학자인데,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됨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는지, 자신이 죽은 년도인 1984년에 성의 역사 2,3권을 출간한다. 원래 성의 역사는 6권으로 쓰일 예정이었는데, 1984년에 푸코가 갑자기 사망해서 3권까지 밖에 출간을 하지 못했다. 또한 푸코는 사후에 자신의 원고를 공개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성의 역사가 3권에서 끝나나 싶었는데, 2018년에 푸코 가족에 의해 성의 역사 4권의 원고가 공개되고, 출간되었다. 


  푸코의 전기(지식의 고고학), 중기(권력의 계보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할 말이 많다. 나는 이 두 시기의 유명한 저서들과 강의록들을 공부하기도 했고, 푸코가 유명해진 계기인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감시와 처벌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중에게도 그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간다. 


  그렇지만 나는 푸코의 말년의 연구에 대해선 할 말이 적다. 우선 그의 저서들을 읽어보지 않았으며, 흘려듣긴 했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공부하고 있는 '권력의 계보학'을 어느 정도 끝내면 '주체의 윤리학(말년의 연구 주체)'를 나도 공부해 볼 생각이다. 주체의 윤리학 시기의 푸코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푸코가 왜 권력의 계보학 시기에서 주체의 윤리학 시기로 넘어갔는지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지식의 고고학에서 권력의 계보학으로 넘어간 계기는 68 혁명 때문이라는 것이 매우 자명하다. 하지만 푸코가 왜 성의 역사 1권까지는 권력의 계보학을 연구했지만, 2권부터는 주체의 윤리학을 연구하며 그토록 부정한 주체와 실존에 대한 언급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솔직히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전기를 읽었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성의 역사 1

  성의 역사 시리즈는 참 이상하다. 1권과 2권 사이의 단절 때문일까. 왜 푸코는 같은 시리즈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제로 돌연 넘어갔을까? 분명히 1권에서는 권력의 계보학의 관점으로 어떻게 권력이 가장 사적인 부분인 성에 침투했는지를 다루는데, 2권부터는 주체의 윤리학의 관점으로 어떻게 윤리적 주체가 생기게 되었는지 계보학적으로 연구한다. 


  성의 역사 1권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은 억압된 적이 없으며, 권력은 성에 대해 명확한 담론을 형성하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성이 억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껴린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당연한 욕망이지만, 당연히 숨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권력이 성을 억압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푸코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오히려 권력은 성을 억압한 적이 없으며, 성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자신에게 유용한 측면으로 신민(책에서 사용한 어휘라서 나도 신민이라 하겠다.)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성을 억압한 적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측면의 담론만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담론은 정상과 비정상을 분류하며, 비정상에 속하는 쾌락은 권력의 측면에서 무익한 것이라 배제되어야 하는 쾌락이다. 


  현대 사회는 동성애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데, 반면에 이성애는 그렇지 않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왜 동성애가 나쁜 것일까? 그 이유는 권력이 생성한 담론에 의해서 일 수 있다. 권력층은 성에 대해 조종하는 방법이 금지밖에 없는데, 이러한 금지를 담론의 형태로 표출한 것이다. 이성애자 연인은 아이를 낳고 출산을 해서 권력의 복종체를 생산하지만, 동성애자 연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래서 권력의 측면에서 동성애는 무익한 쾌락이기 때문에 비정상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러한 담론에 의한 권력을 인구 조절의 측면에서 생체-권력이다. 또한 이는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담론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론 이 책에서 푸코가 최초로 생체-권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생체-권력(micro-pouvior)은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는 권력 또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육체 말단까지 퍼져있는 권력을 의미한다. 결국 푸코가 성의 역사 1권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권력이 생체-권력의 형태로 우리의 성생활에 까지 도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을 억압당한 게 아니라 권력이 만든 담론에 복종하여 그들이 만든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미시물리학 혹은 생체권력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하는 사소한 행위라도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 가령 우리가 정말로 권력에 의해 이성애자로 규정된 것이라면, 나는 동성을 보고 에로스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권력의 담론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인간의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구분도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듯이 담론에 의해 구분된 것이 아닌지 망상을 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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