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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Mar 01. 2023

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L'Histoire de la sexualité 2

미셸 푸코(1926~1984) - "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1984)"

단절

  "성의 역사"는 기존에 6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푸코의 건강상의 이유로 4부작으로 조정되었다. 이 작품은 푸코의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시리즈이며, 1권과 2권 사이의 단절이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푸코는 '68 혁명' 이후로 '지식의 고고학'에서 '권력의 계보학'의 시기로 넘어갔는데, 이 기간은 성의 역사 1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성의 역사 2권부터는 '권력의 계보학'이 아닌 '윤리의 계보학' 시기에 쓰인 작품이다. 그래서 1권을 읽고 2권을 읽은 지금 나는 그 단절이 새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후기(윤리의 계보학)의 푸코는 그 전과 다르게 고대 그리스 철학을 주로 연구했다. 그 이전에 푸코가 서양의 르네상스부터 근현대까지의 사료들을 통해 연구한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광기의 역사(1961)', '말과 사물(1966)', '감시와 처벌(1975)' 등은 푸코가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 고전주의 시대, 근현대 시대를 한정하여 연구를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계보학을 연구하던 푸코가 단절을 겪은 후에는 그의 작품세계가 이전과는 아주 상이하다. 분명 지식의 고고학시기에서 권력의 계보학 시기로의 이전은 그렇게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비록 연구의 방식이 고고학적 방법에서 니체적 계보학적 방법으로 바뀌었지만, 푸코가 사례로 드는 작품이나 문헌들은 르네상스부터 근현대까지의 자료들이었다기 때문일까? 


  뿐만 아니라 후기의 푸코는 그가 이전에 부정하던 실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푸코 본인은 부정했지만, 그는 구조주의자 혹은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유명하다. 그는 사회를 굉장히 구조적으로 봤으며, 개인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닌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후기의 푸코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예술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등 존재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푸코는 권력의 계보학으로 넘어가면서 이전에 비해 미학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무튼 푸코의 후기는 전기와 중기를 뒤집는 크나큰 단절을 겪어서 형성된 사상임이 크게 느껴진다.


그리스 성문화와 양생술

  푸코는 성의 역사 2권에서는 1권과 다르게 고대 그리스의 성문화를 이야기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혹은 소년애에 대한 당시의 풍습을 이야기한다. 성의 역사라는 제목답게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성 문화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나는 이 부분을 상당히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푸코의 허를 찌르는 문장을 수집하기 위해서 참고 읽었다. 참고 참다 보니 여러 문장들을 수집하긴 했으나, 다른 책들과 달리 크게 영양가 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성 간의 동성애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 관계들에 대한 당시의 담론이다. 그리고 푸코는 성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담론들을 이야기하면서 중간에 절제와 능동성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한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성행위의 당사자는 능동성을 가져야 하며, 이런 성격을 당시에는 '남성적인' 면모로 규정했다. 그리고 반대로 수동적인 면모는 '여성적인' 면모로 규정했으며, 남자가 여성스러운 면모를 갖는 것은 죄악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죄악시된 것은 아니다. 여성들도 능동성(남성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여성 자체가 천시된 것은 아니다. 


  푸코가 말하길 고대 그리스에서는 능동성과 자기 절제가 존재의 미학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래서 쾌락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절제하는 자가 진정한 남성성을 가진 자로써,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양생술이 중시된 것이다. 양생술은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고 알려진 활동의 조절을 목표로 하는 관리법인데, 이는 자기 절제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성생활에서 자신들을 절제하면서 자기의 형성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를 푸코는 존재의 미학이라고 정의한 것 같다. 자기 자신을 형성하기 위해선 쾌락이나 욕망에 예속되어 수동적인 존재가 되지 말고, 그것을 절제하고 유혹을 뿌리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유혹을 이겨냈듯이.


현대적 의의

  솔직히 푸코가 고대 그리스 성문화 얘기를 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너무 생소한 정보가 머리에 들어오다 보니 적응이 되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푸코의 의도는 이해가 가능한 것 같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자기 절제와 양생술을 통해서 자기 형성을 하는 고대인들의 면모를 통해서 인간의 실존에 대한 미학을 추구했다. 푸코는 한 인터뷰에서 "왜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는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푸코를 처음 공부할 때는 저게 뭔 개소리인가 했다. 나라는 존재는 피투체인데 어떻게 날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철학이 해야 할 모든 역할을 관통하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수많은 담론의 집합체로서 형성된다. 그것은 원하는 담론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즉, 규정하느냐 혹은 규정되느냐로 우리 자신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능동적으로 자신을 만드느냐 혹은 틀에 짜여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존재의 미학'이 정해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규정되는 존재는 존재의 미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공업적 존재인 것 같다. 스스로 무엇이 아름다운지, 올바른지 가치관을 형성하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해 스스로를 규정하고 만들어가야 자신만의 미학을 갖춘 미학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한 줄 요약 : 자기 절제(쾌락의 활용)를 통해 자기 자신을 형성하는 존재의 미학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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