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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Mar 06. 2023

성의 역사 4 : 육체의 고백

L'Histoire de la sexualité 4

미셸 푸코(1926~1984) - "성의 역사 4 : 육체의 고백(2018)"

  성의 역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육체의 고백'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1,2,3 모두 어려웠지만, 4권은 남다르게 어려웠다. 1권은 얇고, 권력의 계보학 시기의 푸코라서 좀 더 친숙했는고, 2권은 1년 만에 다시 읽었는데 뭔가 익숙 혹은 친숙했고, 3권은 대놓고 '자기 배려'라는 장이 있었다. 하지만 4권 육체의 고백은 제목부터 감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읽을수록 내가 뭘 읽는지 자꾸 현타가 왔다. 바로 '하느님'이라는 단어와 지독하게 교부적인 내용들 때문에.


무신론자 푸코?

  나는 왠지 푸코가 무신론자일 것 같다. 아니 무신론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색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이며, 당연한 모든 것을 부정한 푸코가 유신론 자라면 왠지 실망할 것 같다. (개인의 종교적 자유는 존중하지만, 푸코가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경배했다면 뭔가 그의 사상의 정합성이 떨어질 것 같다.) 디디에 에리봉의 푸코 전기를 보면 푸코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고는 한다. 하지만 흔히들 사춘기 때가 오면 교회에 안 가기 시작하지 않는가. 왠지 푸코도 그랬을 것 같다. 그리고 푸코가 종교를 믿었다면 과연 그런 사상을 사유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난 푸코가 무신론자일 것이라 확신한다. 왠지 유신론 자거나 불가지론자면 실망할 것 같다. 니체의 계보학을 계승한 철학자 푸코가 신을 믿는다니...


종교와 고백

  이 책은 1장 새로운 경험의 출현 (1절 창조 생식, 2절 세례의 힘든 과정, 3절 두 번째 속죄), 2장 동정에 대하여 (1절 동정과 금욕, 2절 동정의 기술, 3절 동정과 자기 인식), 3장 결혼 (1절 부부의 의무, 2절 결혼의 좋은 점과 이로운 점, 3절 성욕의 리비도) 그리고 부록 4개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교회에서의 세례와 속죄에 대해, 2장에서는 순수한 존재? 인 동정에 대해서, 3장은 부부와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현자와 목자 (나카야마 겐 지음)


  내가 많이 인용하는 책인 나가야마 겐의 '현자의 목자'를 읽지 않고 '육체의 고백'을 읽었다면 난 아마 성의 역사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크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수줍게) 말할 수 있다. 저 책을 빌려주신 김대영 교수님께 이번 독서를 계기로 더 큰 빚을 지게 된 것 같다.  만약 내가 나카야마 겐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4권에서 나오는 종교적인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했을뿐더러 읽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결국 4권 육체의 고백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고백'과 '고해'다. "고백하는 개인과 고백을 듣는 개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제도적으로 고착화되기 마련이다. 이 권력관계에서 권력을 갖는 사람은 당연히 고백을 청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백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고백은 무엇보다 죄를 인정하고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백하는 주체는 죄를 어떻게 고백하고, 진실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를 숙고해야 하고, 권력자는 최대한으로 진실의 고백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성의 역사: 육체의 고백 中, 오생근 역)"


  이는 내가 맨날 말하는 파레시아가 아닌가? 소크라테스의 파레시아는 자신이 가진 진실을 능동적으로 말하는 파레시아이지만, 종교에서의 파레시아는 제자가 스승에게 자신의 진실을 고백하는 형태로서 발현된다, 이때 스승은 진실을 듣는 자가 아니라, 진실을 이끌어내는 존재이다. 기울어진 권력관계에서의 진실을 말하기라는 점은 전자나 후자나 같다. 


  "그러나 고백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고 육체이고, 그 육체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푸코는 ‘육체의 고백’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진실을 고백해야 하는 ‘슬픈’ 육체의 ‘변호인’ 역할을 통해 ‘육체의 진실’을 밝히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성의 역사: 육체의 고백 中, 오생근 역)"


  아 뭔가 이 인용문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인 것 같은데 글로 쓰려니 너무 힘들다. 푸코는 결국 말년에 주체의 형성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 1권 이후로 연구의 범위를 더 넓히고, 기존에 쓰인 2권 '육체와 신체' 대신에 '지식의 의지'를 내놓는 등 원래의 계획과 다르게 성의 역사 시리즈를 내놓는다. 푸코는 성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닌 성과 권력의 관계, 고대 그리스의 자기 테크닉을 통해서 주체의 형성을 파고자 했다.


  "주체에 대한 관심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에 대한 인식과 통치, 자기에 대한 배려와 ‘자기 테크닉’의 문제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가꾸려는 노력,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성찰을 통해서 주체화를 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성숙한 객체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주체에 대한 이러한 문제에서 푸코는 자연스럽게 그리스, 로마시대에 발전한 자기 성찰의 테크닉을 탐구하고 분석하면서, 자기에 대한 통치기술이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주체적인 성의 윤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성의 역사: 육체의 고백 中, 오생근 역)"


  위의 인용문이면 푸코의 말기(윤리의 계보학) 시기를 모두 관통하는 설명을 할 수 있겠다. 성의 역사 4권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중간에 생략도 많이 했다. 대강 알던 내용이라 대충 보기도 했지만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지금 쓰는 이 글을 통해서 내가 아는 바를 어느 정도 체화하려고 했는데 쓰고 나니까 개판인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성의 역사 4권을 읽고서 그때는 더 제대로 이 책에 대해 글을 써봐야겠다.


성의 역사 시리즈 후기

  마침내 성의 역사 시리즈를 끝내긴 끝냈다. 1권과 2권은 작년에 한 번씩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이게 뭔 소리인가..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로다... 하며 읽었다. 유일하게 얻은 것이 있었다면 섹스를 '아프로디지아(aphrodisia)'라고 멋스럽게 말할 수 있는 어휘정도? 그때는 독서를 할 때 메모도 하지 않았고, 사유도 지금보다 턱없이 모자랐다. 물론 아직도 나는 멀었지만. 하지만 1년이 지난 후에 이 시리즈를 다시 보니 내가 성장한 것을 체감하기도 하고, 이 책들을 통해 내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뿌듯한 계기였다. 그리고 내가 설명을 무진장 못한다는 것도 이 시리즈를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자극도 받고, 나의 성장도 깨닫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인 '주체의 해석학'만 보고 당분간 푸코 말고 하이데거와 같은 다른 철학자를 공부하려 한다.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좋은데, 나는 푸코 전문가가 아니라 서양철학전문가가 되고 싶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는 여러 우물을 깊게 파고 싶다. 아 물론 내가 재밌어서 하는 것이다. 왜 이러한 쾌를 왜 이제야 알았을까.


'성의 역사 4 : 육체의 고백' 읽기는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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