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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Apr 08. 2023

성찰

need to be awaken from a sleep of dogma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요즘에 독단의 잠에 빠진 것 같다. 학회에 참석하고, 공식적으로 논문을 투고할 생각에 그리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서 개최된 세미나에 참여했다고 내가 뭐라도 된 듯 개인 공부를 덜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대학원 준비, 논문 작성 등 내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들을 다 해내려면 개인 공부에 지장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하지 않는 건 나답지 못하다. 평소에 100을 했다면 그 절반이라도 해야 하는데, 요새는 바쁘다는 핑계로 30도 하지 못했다. 모든 걸 다 해내려는 것이 내 욕심인가 현타오기도 했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다 해내는 게 정말 힘들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노는 걸 줄이면 될 텐데. 좀 더 효율적인 삶을 살면 될 텐데. 좀 더 적게 자면 될 텐데 나는 왜 그걸 안 하고 있는가. 

  그래서 요새 굉장히 불편했다. 아 공부하고 싶은데. 대체 난 언제 플라톤을 읽지. 솔직히 도덕의 계보학은 한번 더 봐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내게 주어진 현업들을 했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실존적으로 인간의 이데아를 부정하는데, 왜 나 스스로 이상적인 나의 이데아를 형성하는가.

  이데아는 현상계에서 도달할 수 없는 존재다. (도달보단 인지 혹은 감각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그것도 도달이 아닐까?) 그래서 플라톤은 사물의 우위를 따질 때, 얼마나 이데아와 유사한지를 비교해서 판단했다. 이데아와 100% 유사한 존재는 현실세계에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예지계에나 존재하는 것이며, 이데아는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데아란 없다. 

  한 개인의 이상적인 이데아적 자아 또한 마찬가지이다. 완벽하게 자신이 원하는 자아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세상에 대해 무지한 존재라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타자 혹은 사물과 같은 실존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는 불안한 존재이다. 따라서 100%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9시까지 공부만 하기로 마음먹어도, 8시에 친구한테 술 먹자고 연락 오는 게 인생이다. 그러한 친구까지 통제 가능하고, 세상의 모든 일들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신(unmoved mover) 일 것이다. 근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나라는 존재도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게 인간인데 어떻게 인간이 세상을 컨트롤하겠는가. 


덮으세요.

  아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본인은 연구하다가 가족이 놀러 가자고 하면 책을 덮고 바로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또 질문을 드렸다. "그러면 흐름이 끊겨서 되던 것도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교수님은 또 대답하셨다. "해놓은 것을 다시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해놓은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따라서 더 창의적인 사유가 가능해지는 것이죠."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나도 논문 쓰다 너무 막히면 그냥 그만두고 산책하러 나간다. 그리고 다시 집에 와서 논문을 작성하면 이상하게 잘 풀릴 때가 있다. 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덮으세요는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흘러가는 대로 공부하라는 것으로 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 혼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칸트 같은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덮으세요."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말인 것 같다.


우린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교수님은 워라밸 있으세요?"

"아무래도 공부하는 사람이다 보니 워라밸을 지키기 힘들 때가 많아요."


  이 대화는 다른 교수님과 전철에서 나눈 대화인데, 사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답변인 것 같다. 물론 앞에서 "덮으세요."라고 말씀해 주신 교수님의 답변도 타당하다. 아니 무엇보다 누군가가 살아가고, 연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내가 사는 방식에는 두 번째 교수님이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워라밸을 지키는 게 굉장히 힘들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난 친구랑 영화 보고 집에 와서 씻고 자정을 넘긴 새벽이다. 그리고 공부하다 보면 100페이지까지만 공부하려 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150페이지까지 하는 경우도 생기고, 중간에 일이 생겨 그날 할당량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그날 목표치를 다 달성한다. 그러면 굉장히 뿌듯하다. 또한 착실하게 성과가 쌓이게 되어서 지속적인 발전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덮으세요."의 방법은 내가 느끼기에 천재들만 가능한 것 같다. 난 책을 진짜 느리게 읽으며, 이해력도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중간에 끊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제목은 성찰인데 대체 난 무얼 성찰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일까. 나는 최근의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자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제목처럼 성찰을 하니 두 교수님과의 대화도 다시 돌아보고, 최근의 내 활동들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가 굉장히 "덮으세요."의 삶을 살았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덮으세요."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나에겐 맞지 않는 것 같다. 난 그냥 하던 대로 내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달성하는 것을 다시 해야겠다. 세상을 쌩깔 수는 없지만 세상과 타협은 가능하지 않을까. 오늘 약속에 못 가면 다음 주나 다음 달에 약속을 잡으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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