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로 빠져버린 기억 여행
나는 장미로 태어난 오스칼~
정열과 화려함 속에서 살다 갈 거야.
한때 <보물섬>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것 같다.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싫증을 잘 내서 끝까지 제대로 보지도 않을 거면서'
뭐에 꽂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싫증을 잘 내서 끝까지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난 지극히 아이답게
어른보다는 덜한 집중력과 흥미를 가졌을 뿐
또래에 비해서는 싫증을 덜 내고
엉덩이는 무거운 편에 속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걸 깨닫는 바람에
어릴 땐 나한테 그런 능력이 있는지도 몰랐고
당연히 제대로 발휘할 수도 없었지만.
여러분, 아이에게는 엄마가 내리는 정의가
이렇게 호환마마보다 무섭습니다.
호환마마는 또 뭐냐 하면,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16mm 비디오테이프마다
영화 시작하기 전 안내영상에서
호랑이가 "어흥!" 하면서
호환마마 어쩌고 했더랬다.
아마 불법 복제에 대한 경고가 아니었을까.
모르면 외우라고 배웠지.
호환마마=무서움의 대명사.
홍역 같은 건가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천연두'란다.
<보물섬>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은 건 맞다.
지금은 관심 없어도 여기저기 기웃대곤 하지만
그땐 취향이 확고했던 모양이다.
절대적으로 내가 볼 것만 보고,
관심 없는 건 싹 무시했다.
아마 <아기공룡 둘리>나 <베르사유의 장미>가
내 관심작이지 않았을까.
두 작품이 보물섬에 연재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극강의 사사로운 기억 보유자로 인정받음에도
어떤 시기의 기억은 새까맣다.
이 시기는 완전한 블랙아웃은 아니고
필름이 듬성듬성 끊긴 정도?
거의 베개만 한 두께의 <베르사유의 장미> 3권 시리즈에서
이 기억이 끝나는 걸 보면
1. 어차피 그것만 볼 거면
찔끔찔끔 나오는 <보물섬> 대신 아예 이걸 봐라.
혹은
2. 이거 다 보기 전까진 다른 만화책 없다.
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안타깝게도
싫증을 잘 내는 아이로 오해받았던 나는
당당히 <베르사유의 장미>도 1권 앞부분만 보다 말았다.
<베르사유의 장미>만 제대로 독파했어도
루이 16세와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세계사와 좀 친해졌을 텐데...
첫 문장을 저렇게 써놓은 이유가 이제야 밝혀진 셈.
쓸데없이 서두가 길어서 고치려고 하다가
뜻밖의 추억 여행이 반가워 그냥 두기로 했다.
역시 난 독자에 대한 배려 없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구나, 반성중.
원래 쓰려고 했던 얘기는 다음에 하는 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