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대신 씩씩함으로

비워보니, 내가 남았다

by 현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장미나 리시안셔스, 수국처럼 꽃잎이 여리여리한 꽃보다는

들국화류의 풀꽃을 더 좋아합니다.

화병에 꽂았을 때 관리가 쉽고 더 오래 싱싱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제가 살고 싶은 방향과도 같은 결이더라고요.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함은 없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위풍당당함.

주변을 그런 것들로 채우고 저 또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울산에서 원주로 이사를 한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어요.

가전, 가구 등 큰 짐만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나머지는 남편과 둘이 직접 날랐습니다.

비워줘야 하는 기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이참에 묵은 짐 정리를 하자고요.

집과 남편 사무실까지 동시에 옮기는데 어디서 그런 무모한 용기를 냈는지 이제와 돌이켜보면 아찔합니다.

아는 맛이라 더 무서운 거겠죠?


차 한대에 실리는 캠핑 짐 정도로도 웬만한 생활은 가능한데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물건들이 어찌나 많은지요.

집에서 나온 자잘한 짐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습니다.

싱크대 구석구석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제 삶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들.

'혹시 몰라 챙겨뒀는데 버리기엔 아까워', '언젠가 쓸지도 몰라'

그런 것들은 과감하게 처분했는데도 여전히 물건이 적진 않더라고요.

이삿짐 정리가 끝나고 보니 다시 구석구석 제자리를 찾아 그 많은 짐들이 어디로 갔나 싶습니다.

이래서 제가 그동안 미니멀리스트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나 봅니다.


사무실은 더 가관이었어요.

8년을 한 곳에서 지냈는데 3분의 1 분할임대로 시작해서 나중엔 그 층을 전부 썼거든요.

꼭 필요해서 넓힌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남아도는 공간은 편리함과 쓰레기가 채웠더라고요.

정말 양심에 찔릴 정도로 많은 물건을 버렸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정리하지 않은 죄죠.


새로운 공간은 번지르르함 없이, 들국화처럼 씩씩한 모습입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실용성 있게 꾸몄어요.

정리하는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후회한 적도 있는데 막상 끝내놓고 보니 또 후련하지 않겠어요?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거다!

그래서 휴대폰 속 사진들, 임시저장 해놓은 글들, 덕지덕지 붙은 군살들까지 끊임없이 정리해 나가는 중입니다.

워낙 멀리 이사오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인간 관계도 한바탕 정리가 될 판이고요.

다행히, 멀어져서 오히려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관계도 있으니 아쉬워하지만은 않으려 합니다.


물건도, 시간도, 마음도

겉치레 없이 꼭 필요한 데 유용하게 쓰며 잘 지내는 중입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이미 나답다

오래 볼수록
더 자랑스럽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