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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Jan 13. 2023

[텐트를] 텐트 혼자 치는 거면 난 캠핑 안 가!

혼자 치라고 한 적  없거든요?

우리 부부는 얼리어답터가 아닙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캠핑이 큰 인기를 끌었다지만 전 그다지 관심 없었어요. 풀빌라나 호텔 취향이라는 것도 아니고요. 여행지에서 쓰는 돈 중 가장 아까운 게 숙박비인지라 끽해야 비즈니스호텔, 만만한 건 모텔.


사실 전 집순이입니다.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도 어디에 가서 뭘 보고 싶다는 등의 취향이랄 게 없었죠.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가 여행지를 선정하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여정을 짜면, 회비를 재깍 내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정도였죠. 하지만 신혼 1년을 보내고 나서 마음을 약간 고쳐먹었습니다.

신랑도 의외로 집돌이였던 것. 친구들이랑 놀 때처럼 신랑만 믿고 있다간 이런저런 모임에서 술만 진탕 마시는 여가를 내내 보낼 것 같더라고요. 1년에 한 번은 여행을 가자! 여행은 재밌지만 집에 갇혀 지낸 2020, 2021년이 딱히 괴롭진 않았어요. 놀 땐 제일 신바람 폴폴 풍기는 2인이 만났는데 왜 여행을 즐기지 않을까요?

그런 우리가 2022년에만 아홉 번의 캠핑을 갔어요. 첫 캠핑이 9월 25일이었고 12월에는 송년 모임도 있었던 걸 감안하면 실로 눈부신 실적이죠. 늦바람이 더 무섭네요.


신랑은 ‘풍찬’을 즐기는 편입니다.

(출처: tvN)

날씨만 받쳐준다면 야외 테라스를 선호하고, ‘구해줘 홈즈’를 볼 때도 항상 바베큐장이나 정자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죠. 캠핑을 좋아할 만한데 어쩌면 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말로만 듣던 ‘장비빨’이라는 것도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을 테죠.

친구와 함께 간 캠핑에서는 아예 기대의 싹을 짓밟힌 채 돌아왔지 뭡니까. 하필 옆 텐트 남자가 지지리 고생을 하더라나요. 대강 요약하자면 부인은 애 안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반면, 남편 혼자 텐트 치고 이래저래 분주하더니 밤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까지 오셨더라는……. 남의 집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더욱 상상력이 동원되는 상황이랄까요.


우리 부부에게 불씨를 댕긴 건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tvN 예능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보다 보니 ‘유럽에서 드라이빙’에 가까웠지만.

처음엔 스위스의 풍광에 매료되었다가 캠핑에 제대로 꽂혀버렸어요. 그래, 집에선 실컷 놀았으니 자연 속에서 여유를 좀 즐겨 볼까? (캠핑장 1박 체류 21시간 내에 텐트 치고 세팅하고 최소 2끼를 먹고 치우고 씻고 잠도 자고 다시 짐을 싸려면 여유를 즐길 여유가 없다는 걸 그땐 몰랐다는 것!)

신랑은 지난번에 본 남자를 반면교사 삼아 조건을 내걸더군요. “텐트 혼자 치는 거면 난 안 가!”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건데 웬 걱정?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선언을 한 신랑 덕에 내가 좀 더 적극성을 발휘한 건 인정해야겠네요. 일부러 역할을 분담한 건 아니지만 알아서 척척척 각자의 몫을 잘 해내는 중입니다.)


창대하게 시작해서 미약하게 끝내더라도 부담 없도록 100만 원으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8월 한여름 동안 캠핑에 대한 기대감을 무럭무럭 키웠어요. ‘힌남노’와 ‘난마돌’이라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말썽쟁이 같은 이름의 가을태풍까지 보내고 나서 드디어 캠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첫 캠핑에 부부싸움이라도 했다면 그걸로 끝이었겠지만 다행히 거의 매주 캠핑을 갔고 2022년 가을을 만끽했어요.

낙엽은 쓸쓸함이 아니라 찬란함이었다는!


집돌이와 집순이가 왜 캠핑에 푸욱 빠졌을까요? 생각만으론 모를 일이에요. 해 봐야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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