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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Mar 17. 2023

만 40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절반 왔을똥말똥


 올해 6월부터 나이 세는 방식을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하죠. 향후 2개월 여는 마흔하나로, 다시 10개월가량을 마흔으로 살게 되었어요.‘만 나이’ 도입 얘기를 듣고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던 터라 아직 41세의 감은 전혀 없고, 2년 동안 40세로 지내는 기분이랄까요.

 돌이켜보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거의 없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했던 10대보다는 20대가, 불공정한 현실이 보이고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했던 20대보다는 30대가 나았습니다. 아직 경제적 기반이 약하고 대인관계는 갈수록 어렵게 느껴졌던 30대보다는 40대가 더 낫길 기대합니다.


 처음 방문수업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입 대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방송국을 다니다 왜 '그런 일'을 하려느냐고요. 독서논술 교육 방식을 배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적용해 보겠다는 야무진 계획이 있어서 그랬지만 그때 남들 말에 흔들리지 않은 건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론 미디어 교육엔 얼씬도 못하고 독서 교육에 발을 깊숙하게 담그게 되었지만요.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하는 질문과 조언들이 저의 '내면아이'를 향했거든요. 일을 하면서 제 마음에 나 있던 생채기도 치유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죠. (아이들에겐 그저 잔소리였을지도?)

 10대는 시속 10km, 20대는 시속 20km, 30대는 시속 30km... 이런 식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속도를 빠르게 느낀다는 말이 있죠. 저는 빠른 걸음 시속 7km 정도로 지내려고 오히려 속도를 확 늦췄어요. 남들과의 경쟁 대열에서 벗어나 새로운 트랙을 찾고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하면서요. 어떤 부분을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얻었습니다. 남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면서 명품에 집착하는 대신 제가 직접 코바늘로 뜬 2% 부족한 가방을 들고도 당당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적절한 예시가 될까요? 불혹(不惑)이라기엔 아직도 많은 유혹에 흔들리고 있긴 합니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 사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저와 만나는 학생 수를 60명 선에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정하고 덤비면 100명까지는 늘릴 수 있겠지만 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해요. 더 많은 학생을 만나면 돈은 더 벌 수 있겠지만 수업의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제 경우엔 60명 내외가 적당하더라고요. 한편, 쪼끄만 동네 학원 원장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고 싶지 않아 제2의 진로를 탐색하려고요. 그 일환으로 지난 1월부터 목요일 수업을 빼서 주 4일제 근무를 시작했어요. (수업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학생 어머님들께서 이 글을 보는 우연은 제발 없길!)

 평일 휴일 하루가 주말 효율을 높여준 덕에 올해는 책 200권 읽기에 도전 중입니다. 특별한 새해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닌데 올해 읽은 첫 책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가 영향을 미쳤어요. 도전하는 여성들(최소 40세 이상!)의 이야기인데 당장 뭐라도 시작하고 싶더라고요. 교보문고 장바구니와 밀리의 서재 '내 서재'에 책을 담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빨라서 시작한 나 홀로 미션인데 조금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1월에 열다섯 권, 2월에 열다섯 권을 읽었고, 3월에는 스무 권을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아직 다섯 권밖에 못 읽었거든요. 날씨가 풀리니 약속도 늘고 캠핑도 가야겠고 큰일이네요.

 제가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부모형제에게서 등을 돌렸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제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긴 해요. 사람 귀한 줄 모르고 가족을 하찮게 여겨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일 겁니다. 이에 대해선 따로 말할 기회가 있겠지요.


 10년 전에 제 친구는 회사에서 ‘여자 나이 서른이면 끝났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해요. 여성의 나이를 크리스마스 날짜에 비유해 24, 25에 정점을 찍은 뒤 30, 31쯤 되면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다는 식으로요. 그때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지금은 정말 농담으로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발언이죠. 안타까운 점은 제 친구들이 분개하면서도 그런 말들에 휩쓸리더라는 거예요.

 반면 서른 살 때 저의 직장 동료는 대부분 주부였습니다. 심지어 4, 50대 어른들이 많았죠. 그분들은 “좋겠다~ 내가 서른이면 날아다니겠다!” 하셨어요. 그런 분위기에 있다 보니 전 약간의 기대감 속에 30대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날아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들쑤시며 잘 뛰어다닌 것 같아요. 그리고 40대의 시작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미경의 마흔 수업>과 함께 하게 되었어요. 어쩜 딱 이맘때 베스트셀러에 저런 책들이 올랐는지 운이 좋지 뭐예요.

 한 달쯤 전에 ‘어쩌다 어른’에서 방송인 이금희 씨도 비슷한 경험을 말씀하시더라고요. 41세가 되었을 때 열 살 위 선배가 "앞으로 10년이 진짜 좋아요. 40대 정~말 좋아요." 하시더니, 10년 뒤엔 "지금부터가 진짜인데? 40대 좋은 건 좋은 것도 아니에요. 50대가 진짜로 좋아요." 하셨다고요. 저도 인생 후배들에게 그런 조언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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