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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Mar 06. 2024

일 년에 200권 읽기는 역시 무리였을까?

2023년의 새해 계획은 시원하게 말아먹었지만...

  저는 새해를 거창하게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해가 언제 뜨지 364일 동안 관심 없으면서 1월 1일만큼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춥고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결혼하고 8년 내내 해돋이를 보러 다녔다는 건 대단한 아이러니. 당연히 새해 계획도 따로 세우지 않습니다. 보나 마나 작심삼일, 길어야 작심일주일로 끝날테니 스스로에 대한 실망미연에 방지하는 셈이지요.

  작년 이맘때는 책을 꽤 읽었더랬습니다. 많이 읽으려고 일부러 용을 쓴 것도 아닌데 1, 2월에 읽은 책이 서른 권. '이 정도면 일 년에 200권도 가능하겠는데?'라는 겁 없는 생각을 품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풀리자마자 약속들이 줄기차게 이어지는 바람에 3월에는 여덟 권도 겨우 읽었어요. 벚꽃놀이, 물놀이, 단풍놀이... 계절별로 놀거리가 넘쳐나 결국 대차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200권에서 150권, 100권으로 야무졌던 계획을 자꾸 오므렸지만 92권으로 마무리. 역시 해 계획은, 특히나 연간 계획 따위는 세우지 말아야 했을까요?

  아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패를 했기에 깨달은 바가 더 많은 의미 있는 도전이었습니다.



 1. 짬짬이 책을 읽겠다는 목표가 있으니 허비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이건 전자책을 적극 활용한 덕이 큽니다. 종이책 특유의 질감, 냄새, 분위기를 포기할 없지부피가 문제잖아요. 가볍게 읽어보고 싶어서 산 책이 책장을 차지하는 것도 골치 아프고, 언제든 꺼내 읽기 위해 책을 늘 챙겨 다니는 것도 짐스럽더라고요. 항상 손 닿는 거리에 있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죄책감 안 들고 허탈하지 않은 걸 꼽자면 단연 전자책 읽기죠!

  심심한데 뭐 할까 고민할 것 없고 습관처럼 TV를 켤 것도 없이 자연스레 읽던 책을 집어 들게 되는 마법.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니 뜨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2.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라고 한 까닭을 알겠더라고요. 남에게 내보일 수 있는 완성된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과정에 뿌듯함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생겼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아는 게 한없이 적다는 것에 겸손해지고요. 학생 때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답답했는데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면 지금과 아예 다른 길을 걸었거나 그동안 한 고생을 덜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점이 많~지만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책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꾸 뭔가 일을 벌이고 싶어 진다는 거?


 3.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고, 덜 읽을수록 책을 등한시하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다독다 소독소(多讀多 少讀少). 한 가지 주제에 관해 여러 권을 한꺼번에 장바구니에 담기도 하고, 책에 언급된 다른 책을 찾아 또 담고. 읽어내는 속도보다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게 문제입니다만 이런 앎에 대한 욕심은 좀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다가도 읽기 관성을 잃어버리면 확실히 탄력이 떨어집니다. 위는 좀 줄었다 싶다가도 식욕 폭발하면 잘만 먹어지던데 독서 제로백은 형편없나 봐요. 책 보다 재밌는 다른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글자가 잘 안 읽히더라고요.


 4. 메뉴 고르듯 그때그때 땡기는 책이 따로 있다 

  언젠가 읽으리라 미리 사놓은 책들도 있고, 전자책으로 당장 읽을 수 있는 것들도 넘쳐나는데 '지금' 읽고 싶은 책은 새로 골라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마치 옷장이 옷으로 가득한데도 마땅히 입을 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처럼요. 평소에 즐겨 읽지 않던 책이라도 왠지 자극을 받고 싶은 날에는 자기계발서를, 머리가 복잡한 날에는 에세이나 일상툰 같은 책을 집어 들기도 했습니다.

  무조건 책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요일마다 방영되는 다양한 드라마를 동시에 보듯이 여러 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는 것도 좋습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 사이에서 고민하다 찾은 해결책이었는데 처음엔 어색하더니 이제 제법 익숙해졌어요. 한숨에 읽어내는 게 백미인 책도 있긴 합니다만 어려워서 쭉 읽어내기 버거운 책은 가벼운 읽을거리와 번갈아 읽으면 덜 지치더라고요.


 5. 목표에만 집중하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된다 

  직업엔 귀천이 없고, 쉽다고 무시할 책도 없습니다. 하지만 목표치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 때문에 잘 넘어가는 책만 찾는 제 모습은 싫더라고요. 책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 채 얼마나 남았는지만 뒤적이고 있고... 200권을 읽겠다는 목표가 단지 '200'이라는 숫자를 채우기 위함이었던가! 그래서 사실 가을 즈음에는 막판 스퍼트를 올리기는커녕 아예 목표를 잊어버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야 맹목적으로 읽어치우는 대신 책 읽는 재미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적당히 타협하면서 결과적으로 200권을 채웠던들 만족스러웠겠어요?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해서 목표 수치에만 집착한 것도, 이 슬럼프가 길어지는 바람에 아예 길을 잃은 것도 몹시 안타깝습니다. 

  자발적으로 짠 계획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나 비교를 통해 세운 목표라면 긴 호흡으로 끌고 가기가 당연히 어렵지 않을까요? 


 6. 실패해도 남는 게 있다 

  지난주 유퀴즈에 미루기와 꾸물거림을 연구하는 교수님이 나오셨던데 전 미루는 사람은 확실히 아니더라고요. 미약하게 시작하고, 창대한 끝도 기대하지 않아서일까요? 시작은 잘하거든요! 아예 처음부터 그대로 멈춰있으면 이동거리가 0인데, 일단 시도하면 한 발짝이라도 움직였을 테고 후회가 남을 일도 없으니 해보는 거죠! 실패하는 것보다 시도하지 않는 게 더 별로잖아요.

  목표가 없었으면 도달 지점이 더 낮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올해는 책을 더 적게 읽고 있...




  뿌듯함 대신 약간의 열패감과 씁쓸함으로 연말을 보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둥근 해처럼 올해 계획이 빵긋 떠올라 버렸습니다. 책을 읽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아서 지난가을에 배우기 시작한 악기와 운동을 포기하지 않기. 거창하게 잘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그냥 계속 하자는 건 어쩌면 만만하고도 안일한 계획이죠. 하지만 본인맞춤형 목표랄까요. 손가락 굳은살을 보면 이미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손 쓰고 몸 쓰는 데 둔해빠진 저이기에 언제 그만둬도 전혀 이상하지 않거든요. 아직까지는 재밌는데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제풀에 꺾여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즐겨보려 합니다. 영어랑 그림도 시작은 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가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은 그냥 하려고요. 2024년은 부디 열패감과 씁쓸함 대신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마무리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능숙하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자아낼 수 있겠지만 못하더라도 꾸준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남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들도 뭔가를 배우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굉장히 교육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도가 바뀌는 1월이나 음력 설이 낀 2월이 워밍업이었다면 새 학기가 시작되고 꽃피는 3월이야말로 새로운 목표를 세워 시작하기에 좋은 때가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2024년 여러분의 새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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