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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Jul 25. 2024

6. 시누이의 죽음이 이렇게 슬픈 일일 줄이야

"이모는 누구예요? 삼촌 친구예요?"

지금은 중학생인 첫째 조카가 일곱 살 적에 동생 돌잔치에 나타난 저를 보고 한 질문입니다.

그 말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외할머니 하고도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자기는 처음 보는 여자가 외삼촌이랑 같이 다니니 나름의 추론을 했나 봐요.

외숙모로 정식 승격되기 전엔 그렇게 한동안 이모로 불렸습니다.


돌쟁이였던 막내 조카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설, 추석, 어버이날, 어머님 생신, 아버님 제사, 어쩌다 여행 이렇게 1년에 대여섯 번 만나는 정도고 그 사이에 코로나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함께 한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시댁 3남매는 만나면 더없이 사이가 좋은데도 평소엔 시시콜콜 전화, 문자를 주고받는 일이 없고요.

하지만 저보다 어린 시누이의 죽음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기에 민망하리만큼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이제 꼬맹이들도 제법 컸고, 저희도 자리를 좀 잡았으니 같이 놀러 다니면 되겠다 싶건만 함께 할 미래가 사라졌다는 것은 그렇게 슬픈 일이었습니다.

시집살이를 겪지 않은 데 먼저 결혼한 시누이들 덕도 다 생각하는데 작은 시누에게는 이제 보답할 길이 없네요.


"김ㅇㅇ님의 발인이 시작됩니다."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영정사진을 마주했을 때, 입관을 할 때, 사촌 등 아는 얼굴이 속속 올 때마다 눈물 버튼이 눌러져 1박 2일 동안 울만큼 운 줄 알았더니 화장장 입장 방송에서 작은 형님의 이름을 듣자마자 또 격한 눈물이 시작되었습니다.

화장 시설로 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떠났구나 싶어 맥이 탁 풀리더군요.

예전에는 활활 타는 불구덩이에 관이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였다는데 그랬으면 정말 실신했을 것 같아요.

커다란 엘리베이터로 관을 옮기고 그 문이 채 닫히기 전에 바깥 출입구가 먼저 닫혔지만 그래도 조카들의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기실에 앉아서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더니 100분가량 기다리는 사이에 약간의 포기가 되었나 봅니다.

음료수도 마시고, 거짓말처럼 잠깐씩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유골함을 보고서는 회복한 줄 알았던 게 무색하게도 다시 오열을 시작했지만요.


아이폰 비밀번호를 못 풀어 작은 형님의 지인들에게 비보를 전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4자리 숫자일 땐 알았는데 6자리로 바뀐 뒤에는 아무도 모른다더라고요.

다행히 아주버님이 애플워치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친한 친구들에게는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친구들이 깜깜 모르고 있다가 만나기로 했다는 2주 뒤 약속 즈음에야 알게 되었다면, 그래서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보냈다면 얼마나 허망했을까요.


서로 눈물범벅인 채로 처음 만났고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이지만, 상복 입은 저 여성은 누구길래 저렇게 울어대나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눈물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시'자가 붙는다고 해서 정말 시금치까지 싫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죽은 뒤에 누가 와서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슬퍼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은 저처럼 남은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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