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해 Jul 31. 2024

9. 가족의 죽음을 실감하는 순간

장례를 치르고 와서 집에 들러 씻고는 다시 어머님 댁으로 갔습니다. 

월요병을 걱정할 틈 없이, 당장 일요일 저녁을 잘 보내고 싶었거든요.

저희 부부와 큰 형님네 네 식구, 작은 이모님과 이모부, 외삼촌과 외숙모까지 모였습니다.

또 한바탕 눈물바람이면 어쩌나 했는데 평소에도 웃음 많고 유쾌한 작은 이모님이 분위기를 잘 이끌어 주셨어요.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모이실 때 가끔 끼곤 했는데도 저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한 보따리더라고요.

저희가 따라가지 않은 여행에서 도킹텐트를 설치할 줄 몰라 어른들끼리 낑낑대셨던 비교적 최근 얘기, 언니 두 명을 제치고 먼저 연애하다 걸려 몽둥이 들고 쫓아오시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 다녔던 옛날 얘기 같은 걸 들으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금방 장례를 치르고 와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양심에 찔리거나 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좋더라고요.


사실은 온 가족이 모였을 때 펴는 그 커다란 을 보자마자 형님 생각이 났거든요.

매번 자리가 비좁은데도 모서리에 앉지 말고 조금씩 당겨서 앉자고 어깨를 움츠리곤 했었지...

실컷 잘 먹고 놀다 설거지를 할 때 또 생각이 났어요.

작은 형님이 설거지를 끝내고 개수대 수챗구멍까지 말끔하게 씻어내던 모습, 요리 잘하는 작은 아주버님이 하이볼이나 별미를 만들고 설거지까지 책임지셨던 일도요.

자려고 누웠더니 이번엔 벽에 걸린 액자가 문제입니다.

제 결혼식 사진에서 작은 형님 얼굴이 제일 크게 보이네요.

형님과 함께 보낸 대부분의 시간이 어머님 댁에서였기 때문에 이제야 문득문득 실감이 납니다.


그리고 월요일.

평소처럼 오후에 출근을 했습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책상에 놓인 물건을 보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향이 좋다고 했더니 작은 형님이 어머님, 큰 형님, 제 것까지 3개를 똑같이 사서 보내준 고체 향수 때문에요.

평소에도 떡하니 올려져 있던 건데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당했어요.

웃으며 추억하고 싶은데 아직은 울음이 먼저입니다.


형님을 보낸 게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와 서울시청역 역주행 사고 즈음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얼굴을 잔뜩 꾸기며 딱해서 어쩌나 했을 텐데 이번엔 마음을 나눠줄 여유가 덜했어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브레이크 고장 난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려 한 사람을 희생하는 대신 다섯 명의 인부를 구하는 게 정당하냐 했던 게 떠오릅니다.

머리로만 이해했던 '한 사람의 죽음이 다섯 사람의 죽음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 다시금 와닿습니다.

무고한 다수의 죽음이 다시 있어선 안 될 안타까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더 아픕니다.


이제 명절에도 커다란 상이 비좁을 일 없고, 씻을 때 수건이 모자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게 벌써부터 서운합니다.




<아몬드>에서 윤재의 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명의 희생자를 낸 칼부림 사건이 열흘 만에 잊혔습니다.

허구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도 여러 끔찍한 사건들이 당시에만 잠시 떠들썩할 뿐 금세 기억에서 증발해 버리곤 합니다.

그러곤 또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점점 더 심한 사건이 발생하죠.

관련 없는 사람들은 잊고 말겠지만 유족들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아파하고 바뀌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지 않을까요.

이번 사고 희생자 개개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재난, 범죄 말고 훈훈한 미담이 뉴스의 'New'를 갱신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작가의 이전글 8. 감 놔라 배 놔라, 말은 쉽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