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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Aug 21. 2024

12.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중입니다


"형 엄마 죽었다메?"

할머니와 놀이터에 갔던 막내 조카는 이 말을 듣고 씩씩거리며 집에 가자 했다고 합니다.

기껏해야 초2, 어쩌면 어린 꼬마가 악의 없이 말이지만 조카는 이제 엄마를 떠올리지 않고 잊겠다 걸요.

막지 못했습니다.

겉보기에 가장 씩씩한 녀석은 뭘 모르고 아직 어려서 그런 게 아니라, 여리디 여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딱딱한 껍데기를 만들었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뭘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막막합니다.


둘째 조카가 학원에 갈 때 친구 어머니께서 차를 태워주셨다고 합니다.

5학년 짜리 입에서 나온 '어머니'라는 단어가 귀에 콱 박혔요.

원래 '친구 엄마'가 아니라 '친구 어머니'라고 했었나?

지 못했습니다.

제 엄마 어린 시절을 판에 박은 것 같다는 이 아이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했어요.

드라마에선 최면을 걸어 일부 기억을 지우기도 하던데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싶어 검색해 봤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믿되 필요할 내밀면 잡아주고 싶지만 그 역할도 잘 못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면 그동안도 마음이 없어서 자주 만나지 않은 게 아니었지.

대구 동성로 나들이도 가고, 여름방학에 워터파크도 가야지 했는데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에 밀고 들어가다시피 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자꾸 미뤄집니다.


(통화하던 둘째가 동생에게) "난 계란 들어있는 거!"

(문득 허기를 느끼며 제가) "저녁 먹는 거야?"

(통통 튀는 목소리로) "네! 오늘 메뉴는 라면입니당~"

(반면 괜히 머쓱한 듯한 작은 아주버님의 웃음소리)

 이후로 밥은 뭐 먹었냐고 묻는 것조차 작은 아주버님한텐 신경 쓰이는 질문일까 눈치 보이는 판국인데...

아이들이 이런 사정까지 이해해 주고 섭섭해하지 않길 바라지만 그건 제 욕심이겠죠.


"매형, 위령제 잘 지냈어요?"

"어? 장모님 오신 것 같아서 처남도 같이 왔냐고 물으려고 전화한 건데?"

작은 아주버님 출근하신 틈에 어머님과 안사돈이 스님이라는 분을 모시고 집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대강 언질을 들었는데 정작 아주버님은 몰랐던 모양이에요.

작은 형님 좋은 데 가라는 좋은 뜻으로 하신 일이라지만, 저도 풍수 인테리어 같은 것엔 관심이 있지만 이번엔 흔쾌히 지지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대로 이겨내고 계신 거라고 이해하기로-


남편은 작은 누나 얘기를 자주 꺼내고 싶않은가 봐요.

크게 애틋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마음의 빚도 없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루는 지인 따님의 결혼식에 갔다가 같이 간 분들과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고 왔는데 눈이 빨갛더군요.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속얘기를 나누다 누나 얘기를 하고 울었다더라고요.

굳이 먼저 끄집어내지 않고 이렇게 남편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애도하는 중입니다.

작은 형님에 대한 마음을 새삼스레 깨달을 만큼 힘든 주말을 보내고 와서 자도 자도 졸리고 나도 모르게 한숨만 내쉬던 일주일 사이에 얼개를 고 생각나는 틈틈이 메모를 추가했습니다.

관심 끌 만한 자극적 소재라 이 글을 쓰고 싶은 건지, 이 글을 공개해도 괜찮을지 첫 글을 발행하기 전에 여러 번 자문했어요.

기억은 금세 흐려질 테니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고 싶은 개인적 욕심으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글에서 조회수가 터졌는데 라이킷 알람이 토닥토닥, 여러분의 위로처럼 느껴졌어요.

아직 식구들은 이 글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데 혹시 나중에 읽고 '맞아, 그때 그랬지' 함께 떠올릴 날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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