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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Aug 14. 2024

11.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납골당

동화 <분홍문의 기적>에서는 하늘로 간 김지나 씨가 손바닥만 한 요정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사흘 동안 식구들 곁에 머뭅니다.

자기가 없는 1년여 동안 엉망진창이 된 집을 대청소하면서 김지나 씨는 본인의 물건을 버리려 하고, 남편 박진정 씨와 아들 박향기는 그걸 막으려 하는 장면이 나와요.

쓸모를 다 한 물건을 잘 품고 있는 편이 아니지만 유품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습니다.


다음 주말에 온 가족이 다시 모였습니다.

작은 아주버님 혼자 정리하기 버겁지 않겠냐고 도울 겸 가보자는 큰 형님의 제안이었어요.

하지만 결국 유품 정리는 작은 아주버님 몫으로, 우리는 함께 밥만 먹고 납골당에 가기로 했습니다.


작은 형님이 없다는 건 여전히 어색하고 다들 평소보다 목소리톤이 낮아지긴 했어도 퍽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어른들도 제쳐두고 막내 혼자만 밥을 두 그릇 먹어서 그 허세를 놀리며 웃기도 했고요.

그런데 밥을 다 먹고 일어설 즈음 작은 아주버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벌써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계십니다.


그 주변에 비구름이 자주 머무는지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납골당 근처에서 비를 만났습니다.

하늘도 같이 울어주나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울고 싶을 때 마침 뺨 맞은 것 같기도 해요.


유골함만 덜렁 넣어놨을 땐 몰랐는데 납골당 칸이 너무 작습니다.

같이 콘서트에 갔을 때 하풍봉 모양 열쇠고리도 샀더라면 그걸 넣어줬을 텐데 큰 형님이랑 셋이서 하나씩 산 실제 하풍봉은 택도 없어요.

다섯 식구가 찍은 스티커 사진 두 개 넣고 작은 꽃다발 모형과 둘째가 그린 가족들의 얼굴까지 넣으니 이미 꽉 찼습니다.

남들은 미니어처 제사상도 차려 놓고 잔뜩 꾸며 놓았던데 남의 떡 대신 남의 칸이 커 보이네요.


작은 아주버님, 큰 형님, 저랑 첫째 조카는 또 눈물바람입니다.

우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더니 커다란 눈물 방울이 바닥에 툭툭 떨어집니다.

어머님이랑 큰 아주버님, 우리 신랑은 땅이 내려앉도록 한숨만 푸욱-푹 쉽니다.

다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허공을 봅니다.

초등학생인 둘째, 셋째 조카는 씩씩한 척 딴청을 부리고 큰 형님네 중딩들은 꿈뻑꿈뻑 눈치를 봅니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엄마! 엄마!" 목놓아 우는 첫째 조카가 더 걱정인지,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는 둘째, 셋째가 더 걱정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마음에 생채기가 안 날 수 있으랴마는 어떻게 해야 곪지 않고 예쁘게 아물 수 있을는지...

자꾸 들춰내서 얘기를 꺼내야 할지, 먼저 말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야 할지 참 어렵습니다.


분홍문 식구들은 사흘 동안 딱히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지나 씨처럼 작은 형님도 잠시 나타나 식구들을 달래주고, 제대로 작별 인사라도 하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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