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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Nov 15. 2022

교과목에서 소질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학업과 진로 탐색은 별개

 학창 시절 제가 싫어한 과목을 순서대로 꼽자면 체육, 미술, 사회입니다. 사회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든지 통사 보는 눈이 약해서 사회를 어려워하는 경우야 많겠지만, 체육과 미술은 좀 의외일 수 있죠? 제가 만나는 학생들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꼽는 과목이더라고요.


 21살 때 요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저는 제가 운동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 줄만 알았습니다. 몸은 유연한 편이지만 달리기도 못하고 구기 종목에도 젬병이거든요. 그런데 학교 체육에선 달리기와 구기 종목이 대부분을 차지했어요. 그놈의 발야구, 피구는 단골손님이고 배드민턴, 핸드볼, 농구 등등. 단체로, 승부를 내거나 점수화하기 좋은 거죠. 일과 중 한 시간 땀을 뻘뻘 흘리고는 다시 교실에서 다음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저 제 스타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지금도 땀이 식기 전에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른 일을 하거든요. 성인이 된 뒤 살도 뺄 겸 제가 할 만한 운동을 찾았습니다. 요가, 헬스, 수영, 등산, 필라테스 정도를 찾았어요. 정적이거나 남과 승부를 겨루기보단 저 자신을 단련하는 것들이죠. 학과목에선 이런 다양성까지 다 품을 순 없었던 겁니다.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똥손인데다 순수미술에 대한 감각도 떨어져요. 낙서를 하더라도 글자를 쓰지, 그림을 그리진 않아요. 순수한 장식품보다는 사용하는 물건 중에 디자인이 예쁜 걸 선호합니다. 최근에 코바늘로 가방, 수세미, 가랜드 같은 걸 뜨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만들기’가 재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술사조에 대한 암기 대신 실제로 작품을 감상는 법을 심도 깊게 배웠다면 미술 이론도 덜 끔찍했을 것 같습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보러 갈 생각에 그 부분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말이죠.

 다른 과목들에 대한 분석은 생략하겠습니다. 제가 저에 대해 파악한 것처럼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저 자신에 대해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나서야 안 결과예요. TV를 좋아한다는 다소 단편적인 이유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을 했는데, 고3 때 저에 대해 이만큼 알았다면 다른 진로를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던 자유학년제가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중학교 3학년 2학기 자유학기제로 개편될 예정이라고 하죠? 아일랜드 전환학년제, 영국 갭 이어(gap year), 덴마크 10학년을 꿈꾸며 우리나라에 도입한 지는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자유기제를 다룬 <열네 살의 인턴십>이라는 책을 보면 한결 직접적으로 접근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그저 당장 시험 안 친다는 점을 좋아할 뿐 적극적으로 진로탐색을 하는 모습은 아닌데 말이죠.

 아이들과 진로 수업을 하다 보면 자기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편협합니다. 배운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거예요. 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건 주로 노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잘하거나 못하는 것의 기준은 교과 점수예요. 그런데 교과목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건 앞서 제 사례를 통해 말씀드렸죠.


 목표도 없고 재미는 더 없으니 공부에 상처받는 아이들만 늘어갑니다. 절인 배추 같은 무기력함과 방어적 공격 태세로 무장한 아이들을 '중2병'이라며 웃어넘길 일이 아니에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 시기를, 정작 자신들은 암울하게 버텨나가고만 있으니까요.

 대입 코앞에서 반수, 재수, 삼수를 하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 그 전에는 모두들 한 방향을 보며 전력 질주하게끔 하잖아요.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넘어가더라도 학교 진도보다 선행을 하는 건 가능하지만 1년 정도 되돌아가서 차근차근 다지거나 자신에 대해 알 기회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죠. 잠깐의 검색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을 더 많이 아는 게 과연 중요할까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무엇보다 나에 대해 탐구하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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