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말고, 놀이와 정서적 케어가 필요했어요

잉여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더라고요

by 현해

최근에 심심풀이 심리테스트를 하다가 다음과 같은 문항을 봤습니다.

"당신이 가장 스트레스받는 상황은?"

1. 일이 꼬일 때

2. 사람들과 마찰이 생길 때

3. 혼자만의 시간이 없을 때


저는 3번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학창 시절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쓰지 못하고, 해야 할 것들에 매달려 있지만 정작 능률은 안 오르고...


요즘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죠.

오히려 더 바빠졌을 수도 있고요.



언제 그랬나 싶지만 코로나가 한창일 때 2개월 동안 아예 학원 문을 닫은 적이 있어요.

그 뒤 1개월은 온라인 수업을 했고요.

3개월 만에 아이들을 다시 만날 생각에 솔직히 조금 겁이 나더라고요.

학습 태도가 엉망이 되었겠지?

그동안 연습한 것도 다 까먹었으려나?

다행히, 저의 기우였습니다.


아이들은 전보다 웃음이 많아졌고 훨씬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늘 숨이 턱 끝까지 차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드디어 숨 좀 쉬다 온 얼굴들이었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빈틈없이 욱여넣은 지식이 아니라 숨 쉴 틈이었던 거죠.


요즘 아이들에게서 다시 숨이 가빠지는 모습을 봅니다.

어른들의 워라밸은 한물갔다 싶을 정도인데, 아이들의 스라밸(Study-Life Balance)은 과연 누가 고민해 주고 있을까요?



제가 만난 학생 중 입시 결과가 가장 좋았던 친구는 학원을 뺑뺑 도는 것과 거리가 멀었어요.

중 3 때까지도 제 수업과 연산 학습지, 주 3회씩 수학학원이랑 검도 정도.

5학년 때, 다니던 영어학원에 문제가 생겨 중단한 뒤로,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EBS랑 온라인 학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요.

'영어 빼고 다 한 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워낙 다양한 학원들이 많답니다.

한때 유행했던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어요.

어머님은 "전 애 공부에 대해 잘 몰라요. 그냥 간식이나 잘 챙겨주려고 하지..." 하는 분이셨고(호두말이 곶감을 그 댁에서 처음 먹어봤어요;;), 아버님은 다 큰 아들내미와 서로 백허그하고 볼뽀뽀하는 사이였으니까요.

게임도 하긴 했지만 소파에 누워서 책 보며 쉬고, 복습은 꼬박꼬박 열심히 하는 것도 학원에 찌든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

결국, 전국 단위의 자사고를 졸업하고 S대 의대에 합격했습니다.

초등학교 땐 또래 친구들과 비슷했는데, 기본에 충실하면서 조금씩 차이를 벌려간 결과가 그렇더라고요.

그 친구가 학원에 치였으면 의대 입시에 불리한 자사고에서 오히려 추진력을 잃었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쉴 시간을 주세요.

아이들에게 자기 얘기를 떠들 시간을 주세요.

조금은 잉여로웠다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여유를 주세요.


부모님의 기분에 따라 눈치 보며 허락받고 노는 게 아니라,

놀이는 아이들의 권리라는 걸 우리 어른들이 먼저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보다, 정서적 케어를 못 받는 아이를 찾기가 더 힘든 세상.

그런 날이 오면 참 좋겠습니다.


저도 내 시간이 없었다 싶을 만큼 많은 걸 배우며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남은 건 지식보다 기억이더라고요.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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