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

학원의 졸업장을 기다리며

by 현해

저학년 수업의 고충과 고학년 수업의 고충은 다릅니다. 일단 저학년은 좀 산만하죠. 학습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기가 힘듭니다. 아이 한 명이 코 맹맹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비염이니?" 물었다간 모둠 전체 아이들의 가족은 물론 사촌의 비염 여부까지 알게 되곤 합니다. 굳이 묻지 않아도 학교에서 있었던 행사, 주말에 놀러 갔다 온 얘기, 엄마한테 혼난 얘기(는 물론이고 아빠가 엄마한테 혼난 얘기까지) 줄줄 읊어요.

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말수가 줄어듭니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하기 일쑤예요. 엄마의 입단속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해야 할 것 얼른 끝내고 마치자’는 마음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간혹 자기 마음을 좀 풀어놓고 싶어서 다른 얘기를 꺼내는 친구가 있으면 은근한 눈총을 쏘기도 합니다. (너 때문에 쉬는 시간 까먹잖아!)


제 수업의 모토는 초등학생 때 책 읽기와 글쓰기 기초를 닦아 놓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생 스스로 훈련하도록 돕는 거예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 맞춰 제 수업도 졸업하기를 권유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요. ‘학습’의 ‘학’은 이만 하면 되었으니 하산하고 스스로 ‘습’을 하라는데도 떠나질 않습니다. (처음엔 저학년 때부터 만나 오만 얘기 다 한 사이니 정이 들어서 안 떠나는 줄 알았지만 천만의 말씀!)

누군가가 한 발짝 앞에서 손잡고 이끌어 주는 데 익숙해서 시키는 건 잘하는데 독립하기 두려운 모양이에요. 학생 스스로 숲도 보고 나무도 봐야 하는데 메타인지가 안 되니 자기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뭘 보라고 하면 그제야 쳐다봅니다. 그러고 나서 이 나무는 수종이 뭐고, 나뭇잎은 어떤 모양이고, 뭐에 취약하고 이런 것들을 빼곡하게 채우는 식이죠. 과연 제가 만난 친구들만 그럴까요?


수업을 하는 책은 정해진 날짜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읽습니다. 읽다 보면 재밌는 책도 만나겠지만 '재밌네.' 딱 거기까지. ‘다른 비슷한 책은 뭐가 있을까? 이 작가가 쓴 다른 책도 한 번 찾아볼까?’ 이 정도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잠시 궁금증이 일었더라도 현실 자각을 하는 순간 바로 정지. 다음 수업을 위한 책을 읽고 다른 숙제도 해야 하니까요. 읽는 것도 그럴진대 학교나 학원에서 쓰는 것 외엔 혼자 글을 쓸 일이 더 없겠죠. 그렇다 보니 학부모님은 수업 중단이 불안하시고, 아이들은 불안한 부모님으로부터 쏟아질 잔소리가 두렵고요. 아이들은 '어차피 이 학원 끊으면 다른 학원 가야 할 걸요?'라며 자포자기, 어머님은 '이것마저 안 다니면 아예 놓아버릴까 봐 너무 불안해'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랄까요. 그래서 끝내 학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행여 과감하게 학원 수업을 중단했다가는 우려한 대로 작심삼일. 학원으로 다시 돌아오거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주요과목에 힘쓰겠다며 영어, 수학에 더 목을 맵니다.


습관을 제대로 길러주지 못했나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고작 일주일에 한 번 90분 만나는 제겐 버거운 과제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할 기회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고, 어머님들 말씀에 의하면 유튜브 보고 친구랑 연락할 시간은 넘치더라는데 둘 다 진실은 아니지만 사실이긴 하죠.

<엄마는 학교 매니저> 작가의 말에 ‘틈’이 필요하단 얘기가 나와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고학년이 될수록 말수가 줄어드는 건 어쩌면 틈을 만들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척하는' 가면을 벗고 자기 삶을 살도록 가르치기가 오늘도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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