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하루를 묻는 '좋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수업이 재미있었다고 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신규 학생이 첫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간 뒤, 어머님께서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시면 전 두 가지 마음이 듭니다. 하나는 첫인상이 괜찮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앞으로도 계속 재미를 선사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운 마음이죠. 놀이터도, 키즈카페도 아닌데 재미라뇨? ("간식을 주셔서 좋았대요."라는 말을 들으면 더 고민스럽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먹을 걸 좀 준 건데 주객전도되고 말았으니...)
하물며 어린이집에서도 재미만 따지기엔 부족한 노릇이지 않나요? 어린이집에서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고, 울며 떼쓰는 대신 규칙을 따르는 것을 배워야죠. 다만 아이와 그런 깊이 있는 대화가 어렵다고 생각해 그것들을 뭉뚱그려 재밌었냐고 묻고, 아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별 문제없겠거니 안심하는 게 아닐까 해요.
저는 어렵더라도 나이에 맞게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생각하는 법과 규칙이나 절차를 배우는 거지 재미를 배우는 건 아니거든요. ‘네, 아니오’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 게 제 수업이에요. 어려서부터 집에서 이런 훈련이 된다면 사실 논술학원은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재밌어?”하고 묻다가 아이가 크면 “어땠어?”로 한 단어만 바꿔 막연하고 큰 질문을 던지는 것도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취조하듯 꼬치꼬치 캐물으면 또 사춘기 즈음엔 입을 닫을테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도 연구하셔야겠죠. (현장학습을 다녀온 아이들에게 무심코 "어땠어? 오늘 재밌었니?"라고 묻는 제 스스로에게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너무 말이 길어지면 곤란하니까 방어적으로 최소한의 관심 표현을 한 셈입니다만 사실 좋은 질문이 아니니까요.)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학원이 방과 후에 아이를 맡아주기만 해도 좋다는 게 아니라면 학원이 재밌었는지 말고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셔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가 말하는 단편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부모님께서 어디(가령 어떤 학원)에 보내고 마는 일을 판단하시는 게 아니라, 함께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 스스로 고민하게 해 주세요. 부모님이 “영어는 중요하니까 절대 중단할 수 없다.”라고 나오면, 아이가 “피아노는 시간도 없고 지겨우니까 그만할래.”로 응수해 버리지 않도록요.
제가 학생들에게 종종 하는 잔소리가 있습니다. 학원에 하루 빠지는 것에 대해 엄마 허락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요. 체험학습을 다녀왔으니까, 체육대회를 했으니까, 시험이 끝났으니까, 몸이 좀 안 좋으니까, 친척이 놀러 왔으니까 등 학원에 빠질 만한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때마다 빠질 순 없고 아이들도 눈치껏 하루쯤 쉴 수 있을지 부모님께 여쭤 보죠. 이때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 부모님의 기분에 따라 결정하시는 게 최악입니다. 학원에 빠지는 건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부모님이 결정하실 문제는 아니에요.
수업을 하는 제 입장에선 학원 선생님과 상의해 주시면 감사하더라고요. 혹시 하루 빠지더라도 학습진도에 차질이 없거나 집에서 보충할 수 있다면 억지로 와서 분위기를 흐리는 것보다 낫기도 하니까요.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부모님 연락과 별개로 직접 저한테 연락하라고도 당부합니다. 못 먹는 감 찔러보듯이 호시탐탐 하루 쉴 기회를 엿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책임감을 배우게 하려고요.
학원의 본질은 재미가 아니라 배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