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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펭귄 Dec 01. 2023

우울한 그림일기-그림 그리기 675일 차

기본기를 다시 해보자

최근 다시 영화 콘티 작업을 그려 보면서, 느낀 점은 생각 보다 실력이 올랐지만, 동시에 생각한 것 만 큰 표현력이 절대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림 자체가 만족이 된 적은 한 번 도 없지만 그래도 그림이 완성되는데 약 5분 정도 걸리고, 어느 구도인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정도가 된 것만으로도 내적인 만족감은 상당히 높은 상태이다. 그래서 느낀 점은 과거 인체 모형을 가지고 100개의 구도를 그린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간단한 형태의 사람들을 100개 정도 그려 보기로 했다.


우선 크로키 사이트들을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이미 예전에 사용했던 사이트들이 대부분이라서 다시 연습하기는 괜한 마음이 들어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구도가 있는 사이트를 찾다가, 영상을 캡처해서 하나의 동작이 완성되는 과정들을 크로키할 수 있게 나눠 놓은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다양한 자세의 사람들을 약 100개 정도 캡처를 해서 그림을 그릴 준비를 했다.


난이도는 확실히 높았다. 사람이 1명만 있는 만큼 기존의 여러 사람이 나온 그림 보다 좀 더 디테일이 있게 그리려고 노력을 해보았으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근육들의 위치는 알지 못하고, 디테일하게 그리면 그릴 수록 오히려 비율이 깨져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과거 인체 모형하고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진짜로 열심히 그려야 하는 수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동안 빠르게 그리는 것만 연습을 해서 인지 한 개의 그림을 꾸준히 그리는 습관이 전혀 생기지 않아 고생을 했다.

요즘 연습하는 크로키

처음에는 디테일을 그리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또다시 초창기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마음을 조금은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다른 사람들이라면 조급함을 내려놓고 다시 선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는 것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조급하면 조급하게 그리고, 짜증이 나면 그냥 대충 그린다. 그 불안한 마음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이란 걸 인정했다. 그래서 그냥 그 마음을 그대로 그리기로 했다. 정말 당연하게도 그렇게라도 그리는 것이 안 그리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하루에 3장의 그림을 그리는데 항상 첫 번째 그림만 제대로 그려지고 나머지 2개는 이상하게 그려진다. 과거에는 이런 사실들에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들었던 말들 ‘너는 왜 일을 끝까지 깔끔하게 하지 못하니, 마지막까지 집중하지 못하니’ 이젠 그 말들이 잘못돼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끝까지 해낸 사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말 간다한 시선의 변경이다. 3번째 그림까지 완벽하지 못한 것인지, 정말 힘든 일을 어떻게든 3번째 그림까지 그려낸 사람인지. 난 전자를 포기하고 후자를 택했다.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우울함은 나를 더 기쁘게 할 뿐이다. 이것이 그림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지금 하는 자기 계발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인 그림 그리기 때문에 다른 자기 계발들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이나 정신이 힘들어도 과거 그림 과의 멘탈 싸움에서 승리한 기억은 많은 동기부여를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우울한 그림일기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림을 잘 그리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참고 나아가며 그것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 가장 크다. 그리고 그것이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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