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돌봄

돌봄은 병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by 김주이

돌봄은 병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돌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가족의 몫이 되었다.

첫 입원 후 아빠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강하게 원하셨다. 병실이 아닌, 가족이 있는 집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전의 아빠 모습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퇴원은 단순한 회복의 과정이 아니라, 집에서의 간병이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아빠는 걷지 못하셨다.
침대에 누워만 계셨고, 휠체어를 대여해 잠시 침대 밖으로 나오셨지만 집 안에서만 이동하셨고 이내 다시 침대로 누우셨다.
밖으로 나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오래 앉아있을 수 없을만큼 아빠의 통증이 심했다.
식사도 혼자 할 수 없어 우리가 보조해 드려야 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예전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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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집에 돌아온 것이 좋다고 하셨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집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예전의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시던 분이 이제는 침대에만 계셨고, 안방 밖을 벗어나지 못하셨다. 아빠의 식사는 침대 곁에서 이루어졌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것이 곧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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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간호사가 환자를 돌봤지만, 집에서는 모든 것이 가족의 몫이었다.
기본적인 생활도 도와야 했고, 약을 챙겨야 했다.
양치, 세발, 목욕, 식사를 보조할 때마다, 문득문득 스치는 현실적인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가족이 함께 돌보는 일이지만, 그것이 결코 가벼운 몫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끝없는 간병 속에서 마음이 어려웠고, 어떤 날은 그마저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집은 원래 아빠가 가장 편안해야 할 곳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무거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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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고 계셨다.
하지만 우리는 아빠를 바깥으로 모실 수 없었다.
몸이 너무 약해지셨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하셨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일들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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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우리는 아빠를 다시 집으로 모셨지만, 예전과 같은 일상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집은 병실과는 달랐다.
돌봄의 방식도, 감정도, 하루하루의 풍경도 달랐다.

병원에서는 환자였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우리 가족이었다.
의료적 돌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을 유지하는 돌봄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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