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지켜보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봄은, 지켜보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봄은 손을 잡아주고, 말을 건네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돌봄이 될 때가 있다. 지켜보는 돌봄. 그것이 내가 아빠를 돌보던 시간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일이었다.
아빠가 힘없이 눈을 감고 있을 때마다, 나는 자꾸만 무력해졌다. 손을 꼭 잡아 드리면서도, 그 손을 통해 아무것도 전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온 힘을 다해 손을 감싸쥐어도 아빠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아팠다.
아빠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아빠는 스스로 양치를 할 수 없으셨다. 우리는 칫솔에 물을 묻혀 조심스레 이를 닦아 드렸다. 늘 깔끔하셨던 우리 아빠. 예전 같았으면 깔끔하게 손수 이를 닦으셨을 텐데, 그마저도 할 수 없는 모습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아빠는 음식을 드실 때도 자꾸만 오래 입 안에 음식을 머금고 계셨다. 한 입 뜨면 삼키지 않고, 입속에 음식을 머금은 채로 계셨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일이었다.
아빠가 천천히 음식을 삼킬 때까지 기다리고, 삼키지 못하면 다시 입 안을 닦아 드리는 일.
어린 시절, 아빠가 내가 음식을 삼키기까지 기다려 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아빠가 삼키기를 기다리는 순서였다.
병실에 앉아 아빠를 지켜보는 동안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창밖의 햇빛이 기울어 가고, 커튼 틈새로 붉은 빛이 들어올 때까지도 아빠는 말이 없었다.
가끔 눈을 감았다가 뜨셨고, 손가락을 약하게 움찔거릴 뿐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을 잡고, 조용히 곁에 있는 일밖에.
아빠가 힘없이 눈을 감고 있을 때마다, 나는 자꾸만 무력해졌다.
손을 꼭 잡아 드리면서도, 그 손을 통해 아무것도 전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너무 하찮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아빠는 늘 말수가 적었다.
잔소리도, 훈계도, 지나친 관심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어릴 때는 그 침묵을 무관심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아빠의 침묵은 곧 아빠의 돌봄이었다.
지켜봐 주는 일. 지나친 간섭도, 불필요한 말도 하지 않고,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일.
아빠는 늘 그렇게 나를 돌봐주셨다.
어쩌면 돌봄은, 지켜보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힘들다고, 외롭다고, 무섭다고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 주는 것.
아빠가 내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아빠에게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지켜보는 돌봄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돌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일은 얼마나 힘겨운 일이었는지 이제 안다.